수술대에 누워 있을 때, 계속 그 여자를 떠올렸다. 그 선생님이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그 여자 때문이라고 믿어 왔다. 그렇게 가혹한 체벌로 내 삶을 망가뜨린 그녀를 원망하며 깊은 잠에 빠졌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생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배어 있었다. 수술대에 오르기 전 지긋지긋한 두통은 더 자주, 더 강하게 쥐어짜듯 나를 괴롭혔다. MRI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뇌하수체 종양.’ 내 삶이 끝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왜 내게만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날까 하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수술실에 가기 전 몰래 아내에게 유언 같은 예약문자를 보냈다. 시간은 덧없이 지나갔다. 나는 그저 자고 먹고 배설하는 일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떠먹여 주었고, 나는 온종일 잠에 빠져 지냈다. 어느 날, 나의 뇌척수액이 새는 걸 발견하고 급히 의사를 데려왔다. 청천벽력 같은 재수술 소식을 접하고 다시 가슴이 내려앉았다.
재수술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병실 창문에 노란 산수유 꽃이 한들거렸다. 장모가 데려온 딸은 병문안 와서 울기만 하고 갔다. 그렇게, 두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지며, 나는 그 선생님을 여전히 떠올렸다.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난 건 퇴원하고 10년이 지난 후였다. 그 담임을 동창회에 은사로 모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그 뻔뻔한 얼굴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선생님의 몰락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가죽장갑을 선물로 준비해 동창회에 갔다. 어두운 회색의 낡은 스웨터를 걸친 노인이 된 담임을 보자, 연민이 잠깐 일었다. 그 순간 나는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눈길을 돌려 버렸다. 가죽장갑을 건네며 가면 쓴 미소를 지었고, 그때의 기억이 잠시 떠올랐다. ‘선생님은 그때 일을 기억할까?’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한없이 작아져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담임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돌아서 오면서 다짐했다. 이제 세월의 힘을 빌려 잊어 보기로 했다. 나는 반세기 전 초등학교로 돌아가 떠올리기 싫었던 사라진 기억의 조각들을 다시 맞추기 시작했다. 6학년 담임선생님은 평범한 얼굴에 온순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젊은 여선생님이었다. 그녀는 여드름 자국이 가득했고, 두꺼비처럼 눈이 붉어져 있었다. 개학 이튿날, 나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탁 앞으로 불려 나갔다. 반에서 가장 개구쟁이 재원이가 나와 함께 서 있었다. 나는 부끄러움에 온몸이 떨렸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허공 중을 떠돌았다. 그때 선생님이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너희 둘은 복도에서 원산폭격을 하고 있어!”우리는 복도로 쫓겨났다.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재원이는 곧장 복도 바닥에 엎드려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원산폭격 자세를 나도 그것을 따라 해 보았지만 잘 되질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한 끝에 간신히 자세는 만들었지만, 채 일 분도 되지 않아 머리에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우리의 원산폭격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었다. 재원이는 칠판지우개를 머리에 받쳐 놓고 벌서기를 계속했다. 친구들이 내게도 칠판지우개를 건넸지만,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어머니는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내게 먹였다. 그러나 그 일은 졸업할 때까지 나를 괴롭혔다.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나면 나는 묻고 싶었다. “왜 어린 제게 그런 가혹한 벌을 내렸나요? 그 체벌이 제 인생을 얼마나 망가뜨렸는지 아시나요?”그 선생님을 향한 분노와 고통, 그리고 내가 겪었던 그 잔혹한 경험은 지금도 내 안에서 삶의 어두운 기억의 단편으로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 졸업했던 초등학교 근처에 갔다가 학교를 가보았다.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커 보이던 학교 건물이 너무 작아 보였다. 세월이 흘러 그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벌을 받던 그 복도가 어디인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속에는 그 끝나지 않는 복도가 끝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