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서 있는 사람

by 석담

아버지는 늘 내게 다가가기 힘든 먼 존재였다. 살갑게 아버지를 대하는 동생을 보며 때로는 나도 착한 아들이 되리라 다짐도 해보았지만 직접 마주하면 버릇처럼 불쑥 튀어나오는 반발심은 내 안의 또 다른 나였다. “약 드세요, 약 드시면 됩니다” 내 목소리는 건조하고 퉁명스러웠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그저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 말만 끝내면 그 자리를 피했다. 그는 그저 내가 돌봐야 할 아픈 아버지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건 작년 가을 고관절 골절 이후부터였다. 의사는 고령자의 고관절골절 사망률이 최고 30퍼센트에 이른다고 경고했다. 수술과 재활로 간신히 다시 걷게는 되었지만 그 사이 드러난 초기 치매증세는 또 다른 문제였다. 퇴원하고 집으로 온 날부터 막무가내인 아버지를 달래는 어머니의 잔소리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주간보호센터는 가족들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본가에 갈 때마다 아버지는 내가 의사라도 되는 양 아픈 데를 토로하며 선처를 부탁했다. 귀에 익숙한 반복되는 병증이야기를 매번 똑같이 되풀이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경제활동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통장을 정리 해오라며 돈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


평생을 가난과 싸우며 한 번도 부자로 살아보지 못한 아버지의 미련이 그런 집착을 만든 것은 아닐까?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호인이었다. 조선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노동자였지만, 어린 내게 아버지는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분의 눈빛과 목소리는 내가 감히 어쩔 수 없는, 위압적이고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 앞에만 서면 항상 손을 떨었다. 무서운 아버지가 싫었다. 그때부터 아버지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아버지가 내 인생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다. 어머니는 늘 왜 그렇게 아버지와 정이 없냐며 안타까워하셨지만 그때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미워한 이유가 또 있었다. 아버지는 젊어서 바람을 피웠다고 했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일로 엄마를 통해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다른 여자하고 살림을 차렸단다. 엄마는 신혼 때 많이 힘들었다며 그 시절의 아버지를 원망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증오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아버지에게 그 문제로 대들지 못했다. 왜 엄마를 힘들게 했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런 아버지에게 딱 한번 고마운 기억이 있다. 아주 오래전 일인데도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집에 손님이 선물로 사 온 찐빵을 먹던 날이었다. 어둠이 내린 저녁시간, 나는 부지불식간에 까무룩 의식을 잃고 스러지고 말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놀라서 나를 주무르고 물을 먹이곤 했지만 깨어날 조짐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등에 업고 버스 정류장 앞으로 내달렸다. 마치 결승선을 앞에 둔 달리기 선수처럼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산동네에 있던 우리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한참이나 내려가야 했다. 아버지의 등에서 땀 냄새가 났다. 나는 의식이 돌아왔지만 잠든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등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해서야 내 발로 걸어 들어갔다. 급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업어주겠다고 했지만 사양하고 걸어서 왔다. 그날의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선명하게, 마치 어제 일처럼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지난 주말, 나는 부모님 댁 거실에 있었다. 방 안에서 비틀비틀 걸어 나온 아버지는 나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내게 친밀감을 드러내 반감을 사지 않으려는 어설픈 아버지의 노력에 얼굴이 붉어졌다. 매번 내가 가는 날에는 ‘얘, 밥주라’하며 엄마에게 말하고 소파에 힘들게 앉아 허공을 응시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수없이 보아 왔다. 사색을 즐기듯 허공을 보기를 좋아했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언젠가 아버지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아버지는 입꼬리를 올리며 ‘무슨 생각?’하시며 어색하게 웃으셨다. 나는 문득 아버지에게 한 번이라도 관대해 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평생 미워하며 멀리했던, 꼰대라며 밀어내고 절대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겠다던 내 모습은 어느새 그를 닮아가고 있었다. 어쨌든 아버지는 평생 우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기름에 쩐 작업복도 감내하고 디스크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며 온 동네에 자랑하신 아버지는 내가 수술받던 날 끝내 눈물을 보이셨다. 아버지에게도 눈물이 있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당장 필요한 몇 가지 약들을 사드리고 돌아서는데 아버지가 안방에서 나와 작은 방으로 힘겹게 들어가셨다. 그리고 홍삼음료 한 박스를 힘겹게 들고 나와 내게 건넸다. “이거 갖고 가서 먹어라.” “아뇨, 저는 괜찮아요. 아버지 드세요.” 나는 못 이기는 척 건강음료를 들고 나섰다. 아버지도 현관 앞으로 다시 주춤주춤 나아갔다. 나는 서둘러 현관 앞으로 달려가 아버지의 신발을 신기 좋게 놔 드렸다. 그리고 지팡이도 챙겨 드렸다. 아버지는 넘어질 듯 비슬비슬 쉬지 않고 걸어서 저만치에 서서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나를 향해 웃었다. 한때 나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던 아버지는 이제 약해진 노인이 되어, 저만치 서 있었다. 그 모습 앞에서 오래된 묵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때 한 자락의 바람이 천변에 줄지어 선 벚꽃 가지를 흔들고 지나갔다. 벚꽃 잎들이 나비처럼 아버지의 등 뒤에서 하나둘 흩날렸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도 무엇인가가 떠나갔다. 아버지의 흐릿한 모습이 안경 속에서 점점 물들어가며, 그는 내가 찾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었다.


☆ 제미나이가 만든 이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