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을 줄여야 오래 산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 장모님은 당뇨로 오랫동안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드립커피 향을 맡으며 설탕을 먹지 않은 지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오래 살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래도 여전히 부엌 수납장에는 갈색 설탕 한 봉지가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김치찌개나 채소 버무릴 때 한 숟가락씩 주저하지 않고 퍼 넣는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린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자갈치 근방의 아버지가 근무하던 공장을 갔었다. 야근하던 아버지의 속옷을 챙겨다 드리던 길이었다. 작업복 차림의 아버지가 거대한 설탕 산 앞에서 삽질하는 모습을 보았다. 백열등 불빛 아래 눈처럼 하얀 설탕의 숲에는 하얀 결정들이 떠다니고 달큼한 향이 번져 나왔다. 그때 처음 아버지가 설탕공장에 다니신다는 걸 설핏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지금은 대기업이 되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왜 그 좋은 회사를 그만두었는지 안타깝다고 생각했었다.
집에는 늘 아버지가 가져오시는 설탕으로 넘쳐났다. 종종 설탕물을 음료수처럼 타서 마시기도 했고 명절날 시골에 갈 때마다 선물로 설탕을 한 봉지씩 들고 갔다.
아버지가 설탕공장을 그만두고 조선소에 다니면서 집에는 설탕이 귀했다. 더 이상 설탕은 나의 군것질거리가 아니었다. 시골에 가면 큰어머니가 사카린 물을 타주셨다. 설탕처럼 단맛이 나기는 하지만 설탕 특유의 맛이 안 났다. 달싹한 맛이 더 강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설탕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설탕 공장에 다니던 시절이 그리웠다.
나는 여전히 단맛에 길들어 있었다. 처음 원두커피가 나왔을 때 항상 시럽을 넣어 마셨다. 장모님이 당뇨합병증으로 돌아가시고 나서는 설탕을 멀리했다. 그렇다고 단 것을 싫어한다는 말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익숙한 단맛, 큰어머니가 타 주시던 달콤한 사카린의 단맛을 내 머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내는 내가 너무 단것만 좋아한다고 타박한다. 그러면 나는 우리 집에는 당뇨 병력이 없다며 근거 없는 반박을 했다. 어쩌면 내 머리는 어릴 적 익숙해진 설탕의 습관으로 면역이 엉뚱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오늘 아침에 내려 마신 드립백 커피에 한 톨의 설탕도 들어가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마침내 내게도 설탕 없는 삶이 시작되었다. 단맛에 익숙했던 습관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제 본격적인 설탕의 수난 시대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