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이 기계의 롤러에 말려 들어갔다. 그때 나는 회사 정문을 빠져나와 작은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부장님, 빨리 오세요. 태일이가 다쳤어요."
현장 작업자의 다급한 전화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나는 가속페달을 세게 밟았다. 회사 앞에서 피에 젖은 수건으로 손을 감싸고 나오는 그를 보는 순간 혹시나 하는 나의 기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신음소리를 목구멍 속으로 삼키며 몸을 뒤틀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 고통의 무게가 뒤통수를 타고 등줄기로 흘러내렸다. 퇴근시간에 맞닥뜨린 도로는 브레이크 등으로 붉은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한동안 잘 나가던 자동차가 분기점에 가까워지자 거북이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어떤 위안이 될 만한 말도 찾지 못했다. 내 말이 그의 고통을 덜어 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주차장으로 변한 그곳을 빠져나가 빨리 병원의 응급실로 그를 데려가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퇴근길의 차들은 나를 비웃듯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시간은 더디게 가는 듯했지만 그래도 흐르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응급실의 침대에 누워 검사를 마쳤다.
미세접합수술에 들어가는 그에게 괜찮다며 안심을 시키고 수술실 앞에서 대기했다. 문득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나는 이 수술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보내고 또 맞이했던가?
지난 20여 년, 산재로 다친 동료들을 수없이 이송하고 입원시켰던 시간이 떠올랐다. 다친 직원들을 이송해 수술실로 보내고, 나는 그들을 기다렸다. 그들이 얼마나 아팠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솔직히 오늘 그를 태워 오면서도 나는 때때로 토요일에 떠날 여행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고통과 공감하지 못하는 내가 속물처럼 느껴졌다.
9시 넘어서 수술실에 들어간 태일이는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나왔다. 다행히 밖으로 노출된 손가락은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나는 이 병원을 거쳐간 많은 동료들과 나의 가족들을 기억한다. 손목의 물혹을 제거한 큰딸, 고관절 수술을 한 아버지, 그리고 산행 중 추락하여 쇄골을 수술한 아내까지. 나의 40대 이후의 삶은 이 병원과 무관하지 않다.
대구에서 내로라하는 수부 미세접합술의 전문병원인 W로 시작하는 이곳은 내 가족과 나의 직장동료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해 왔다. 감사의 인사라도 드리고 싶지만 내 아픈 기억의 흔적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다.
아직 그의 전성기도 도래하지 않은 젊은 친구의 산재사고를 마주한 오늘 나는 사고 없는 하루를 바라며 수술실 앞에 서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대문사진은 AI가 만들어 낸 가상의 이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