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석 달 너머 태어나서 처음으로 매주 글을 연재하고 드디어 스무 개의 글을 브런치 북으로 발간한 지 2주일이 되어간다. 한주만 쉬고 두 주째는 새 연재를 하겠다 호언장담을 하였는데 영… 다시 자판을 두드리려니 쉽지 않다. 이래서 버릇이 중요한 것이리라. 우선은 시간이 너무 흐른 듯 한 파리 얘기를 더 해? 하는 생각과, 그래도 기억을 저장해 두려면 마저 해야지. 또는, 그것 말고 다른 주제는? 그럼 뭘 할 건데?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그래도 한주만이라도 마감의 스트레스 벗어나니 엄청 느긋해지고 좋았다. 그러면서도 이제까지 찍어온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하며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나를 발견했다. 한국사람의 DNA에 박혀있는 뭔가 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배냇병이 또 도진 것일까?
지난 십여 년 동안에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사실은 아이클라우드의 2GB 스페이스가 넘쳐나기 일보직전이라 6GB로 용량을 올려 매달 돈을 더 내던지 필요 없는 사진들을 버리던지 선택을 해야 했으므로) 필요 없는 파일은 버리고 오래된 이미지들은 내 개인 서버로 옮기고 하면서 이제까지 모아놓은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하나 둘 에디팅을 하면서 갑자기 나의 시각에 많은 변화가 왔음을 깨달았다.
“오 마이 갓! 그 이삼 년 사이에 나의 보는 눈이 달라졌네. 이게 웬일?“ (영어 많이 쓴다고 꾸짖지 마시기를… 미국에서 살아온 날이 사십 년을 너머 갑니다.)
확실히 달랐다. 하다못해 삼 년 전 친구랑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있는 포인트레이 국립해변공원 (Pt Reyes National Seashore)에 갔을 때 찍어 두었던 등대 옆 건물의 사진도 왼쪽의 밍밍하던 것을 오른쪽의 콘트라스트가 훨씬 더 있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 무슨 굉장한 것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더 분위기 나는 사진을 보니 괜히 찍은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예전에 나의 인스타에 올렸던 이미지들이나 선생에게 보여준다고 만들었던 포트폴리오에 들어갔던 파일들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진들이 하나, 둘, 셋, 넷…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아래 두 장은 팔 개월쯤 전, 포르토에서 찍은 것인데 당시는 전혀 좋은 줄 몰랐던 사진들이다. 대신 그 아래의 넉장의 사진들을 내 포트폴리오에 자랑스럽게 넣어두었다. 근데 이젠 포트폴리오에 들어간 사진들은 별로라는 생각이 들고 대신 아래 두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서 이 사진의 주인공인 카타리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녀를 찍었던 당시는 촬영이 마음에 안 들어서 실망이었는데 이제 보니 내 눈이 모자랐던 탓이었다.
“왜 그럴까?”
이 년 전에는 못 보았지만 두 주 전에 새로 눈에 뜨인 사진들
이 년 전 선생에게 제출했던 4장의 사진들은 (마크의 주문이 각각의 씬마다 2-5장의 이미지를 스토리로 엮어 제출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보신 두 장과 같은 세션에서 찍은 것 들이다. 지금 보니 콘트라스가 별로 없어서인지 흐리멍덩해 보인다.
아래는 당시 골랐던 것과 이번에 고른 것을 일대일로 비교해 보았다. 그땐 왜 그녀의 팔의 곡선만 보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왼쪽의 사진이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과 함께 오른쪽의 이미지는 그녀의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스토리도 있어 보이며 나름 정리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 또 하나의 예는 같은 시기에 포르토 기차역에서 찍은 에두와르다의 사진이다.
지금 보니 위 왼쪽의 사진을 타이트하게 크롭 한 오른쪽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왼쪽은 그녀의 등과 앞모습으로 포커스가 분산되어 보이지만 오른쪽은 모델의 얼굴에 초점이 맞추어지며 그녀의 흐트러진 마음을 뚫어지게 바라보게 된다.
아래 4장은 당시 내가 같은 장소에서 찍고 에디팅 했던 사진들인데 왜 골랐는지 너무 잘 안다. 간단한 스토리 라인에 구도를 중심으로 고른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 셀렉트한 위 오른쪽 이미지는 그때의 내가 보지 못했던 기차 창에 비친 그녀의 약간은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당시는 이런 그림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채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보일뿐만 아니라 더 멋지게 보인다. 감정을 품은 얼굴에 포커스를 맞추니 어떤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마저 든다. 4장이지만 일직선으로 늘어놓은 일차원 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한 장의 사진에도 풍부한 감정이 들어가 있는 입체적인 스토리 라인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런 것이 시와 산문의 차이가 아닐까?
어찌 보면 당시 찍은 사진들을 에디팅 했을 때 내가 보았던 사진들이 라인드로잉으로 연필 스케치를 한 단순한 흐름을 지녔다면 지난주에 내 눈에 들어온 사진은 당시는 몰랐지만 그 속에 내재된 좀 더 농축된 채색화 같이 보였다면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이래서 복습이 중요한 것 같다. 지나간 사진들을 다시 보니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이는 것 같다.
다음엔 좀 더 찰진 스토리 라인을 사진을 찍기 전부터 생각해 봐야겠다. 이에 더해서 이제까지 보다 더 멋진 사진을 찍고 싶다는 희망을 또다시 가져본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