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테스팅 후기
“그게 그렇게 말하면 괜히 좀 더 멋져 보여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 상황이 떠올랐다.
그래서 지난번에 포스팅한 글을 쓴 이후로 나 역시 백 프로 확신이 사라짐을 자각하고 어제 맘먹고 비교 테스팅을 해 보았다.
아래 사진 둘은 어제 오후 늦게 마켓에서 시장을 보고 나오면서 보았던 어둑해지는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주홍빛의 불이 들어온 마켓의 가로등을 찍은 것이다.
왼쪽 사진은 초점이 잘 맞은 것, 오른쪽 사진은 일부러 초점을 맞추지 않은 것. 여러분은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으신가? 아니 그보다 어느 것이 그 상황에 더 어울린다 생각하시나?
나의 선택은 단연코 오른쪽의 가로등이 뿌옇게 보이는 사진이다. 이유는 어제 그 시각, 비 오는 주차장에서 보았던 가로등의 모습은 약간은 스산했고 축축했으며 주위가 어두워지면서 가로등의 윤곽이 사라져 가며 조금은 멜랑꼴리 하게 보였다. 뭔가 이야기가 있을만한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쌈빡하게 핀이 맞은 왼쪽의 가로등에서는 한마디로 비 오는 모습을 느낄 수 없다. 그때의 느슨해진 주위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이 사진 둘을 일대일로 비교를 하고 나니 이제는 내가 했던 말 - 초점이 안 맞은 사진을 좋아해요 - 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진이 초점이 안 맞아야 더 멋져 보인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모든 것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때와 장소에 맞추어서 상황도 변해야 하니 그 결과물도 다르게 표현되어야 한다. 어떤 것은 초점이 맞아야 하고 (예를 들어 회사의 건물사진일 경우 뿌옇게 나오면 회사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CEO의 인물 사진 역시 쌈빡해야 한다.) 어떤 것을 더 강조하고 싶을 때는 주위를 뿌옇게 해서 주인공을 부각시켜야 한다 등이다. 좋은 사진사는 이런 모든 경우의 수를 잘 계산하고 판단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나에게는 이런 상황의 수를 어떤 경우 1/4000초 안에 맞추는 게 젤 어렵다. 게다가 내 사진기는 오토포커스가 안 되는 물건이라… (일부러 그 점이 좋아서 고른 제품이라 후회는 1도 없지만...) 방법은 많이 연습해 보는 것 밖에는 없다 생각한다. - 내가 깜깜한 밤중에 가래떡을 앞에 놓고 아들과 글쓰기, 떡 썰기 경연을 했던 한석봉의 어머니는 아니라도 그녀를 본받는 심정으로 연습이라도 열심히 해서 비슷하게라도 초점의 벽을 넘어보고자 한다.
그러나 사진의 경우는 필연을 가장한 우연에 기대어 볼 수도 있다.
아래의 사진은 지난 연말, 남편과 파리에서 점심을 먹으며 창밖의 행인들을 찍고 있던 중 갑자기 지나가던 어린 소녀 하나가 사진 찍는 나를 발견하곤 (왼쪽사진) 지나가던 걸음을 돌려 갑자기 내 앞 유리창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던 순간에 내가 화들짝 놀라 생각 없이 셔터를 누른 이미지가 찍힌 것이다 (오른쪽 사진.) 개인적으로 내가 계산하지 못했던 순간에 찍힌 이사진을 꽤나 좋아한다. 전혀 예상밖의 상황에서 흐릿한 초점이 잘 어울리는 사진이 되었기 때문이고 이 사진에는 깜짝 놀란 사진사의 모습이 스며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