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직장인의 치열한 은퇴고민

ㅇㄱ, 난 너만 잡는다!

by 이제 Primary

There is no stupid question. Only a stupid answer.




모르는 것에 대한 물음은 잘못된 게 아니고, 질문 자체는 항상 정당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하는 질문, 즉 우문(愚問)이 꽤 자주 발생합니다 (혹여 제 경우만 그런 건 아니길....). 때론 현 상황을 넘어 해당 국가나 사회제도, 구성원들의 국민성, 라이프스타일까지 이해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프랑스 직장인들에게 은퇴 걱정에 대한 질문이 그렇습니다.


2017년 주재원 첫 해 어느 정도 업무에 익숙해진 저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당시 한국사회 (지금은 더 심각하지만...) 화두였던, 노인빈곤, 은퇴 후 삶에 관해 프랑스 직장인들은 어떻게 준비를 하고, 어떤 걱정거리가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3년이란 기간 동안 업무 외에 유럽에 대한 나만의 잡학사전을 만들고자 한 만큼, 일종의 네트워크 설문 인터뷰이자, 투자나 저축에 대한 유럽인들의 새로운 시각을 접해 볼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직장과는 달리, 충분한 식사 시간과 그 후 커피 마시며 잡담하는 여유까지 보장(?) 되기에, 좋은 기회였죠.


''어떤 식으로 노후 준비를 하고 있나요?' '요즘 프랑스인들 사이 돈 굴리는 노하우나 유행하는 투자 방식이 있나요?' 예를 들어 한국에는 '예금에는 통장 풍차 돌리기, 주식에는 장단기투자, 테마주, 가치투자.... 부동산에는 월세 천만 원 벌기 등등 다양한 재테크 및 투자 이야기들이 있는데요.... 서점에는 각종 재테크 관련 서적이 넘쳐 나고, 요즘 30-40대 한국 직장인들은 틈만 나면 하는 얘기가, 은퇴 후의 삶이죠. ''


'...............' (프랑스 사람에게 안 어울리는 몇 초간의 침묵)


대부분의 40대 초중반 동료들(거의 90% 이상 기혼자이며, 맞벌이에 이직경력이 적고 한 회사에 10년 이상 몸담은 일반 대기업 직장인이라 보면 되겠습니다.)은 즉답을 피하거나, 일단 생각부터 하기 시작합니다. 재테크란 개념에 대해 큰 반응도 없고, 그저 시큰둥한 표정들입니다. 어려운 질문도 아닐 텐데... 물어본 제가 의아해집니다


''펀드 같은 건 안 하고, 자가로 집이 있고, 노르망디에 우리 가족 공동 맨션이 있지요.''


''난 파리 외곽에 사는데 파리에 조그마한 하녀방 (오스만풍 건물 꼭대기층 스튜디오)이 있어, 월세를 받고 있어요.''


''주식투자는 절대 안 믿어요. 2008년 위기 때 시장 휘청하는 거 보면 더 그렇더라고요. 내 성향에 맞지도 않고.... 그나저나, 이번 여름휴가는 일본에서 보낼 건데, 서울에 잠깐 들르면 어디를 가야 할까요?''


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여전히 터부시 (그렇다. 프랑스인들에게 여전히 그렇다) 여기는 민족답게 투자나 노후는 그리 다루고 싶은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대화는 결국 휴가에 진심인 나라답게 자연스레 다음 휴가얘기 쪽으로 흘러갑니다. 7-8주에 한 번씩 아이들 방학이 있고, 7-8월 여름휴가는 최소 3주는 회사 정책상 휴가를 써야 하니, 게다가 프랑스인들에게 휴가는 그야말로 삶의 최우선 순위라 할 만큼 큰 의미이니, 아마 어떤 주제의 얘기를 해도, '기승전 바캉스' 였을 겁니다.


그나마 꽤 많은 경우 부동산 투자가 1순위로 느껴졌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양식이자, 그리 다른 투자 분야에는 믿을 구석이 없는 건지, 아니면 저에게 자신만의 투자 방식을 공유하고 싶지 않은 거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역시나, 가장 믿을만한 녀석은.... 연금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굉장히 복잡한 체계이나 (Chat GPT도 제대로 답을 못하는 주제!!!), 프랑스 연금제도는 연금 그 이상의.... 노후에 대한 보장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2023년 OECD에서 발표한, 임금의 연금전환율 계산표를 보면 (아래), 프랑스의 경우 평균 65%를 넘는다고 합니다. OECD 상위권이네요. 실질적으로 저 또한 얼마 전, 연금 예상금액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순간 프랑스에 아예 뿌리를 내릴까 할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은 40%에도 못 미치고 있네요.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Pension at a Glance 2023: 2022년 22세로 노동시장 진입 후, 의무제도에 따른 순 연금전환율

OECD & G20 Indicator (13 Dec. 2023)

프랑스인들에게 은퇴에 대한 고민과 준비는 한국과는 조금 다르게 귀결됩니다. 한국의 40대 직장인들에게 재테크 공부가 퇴근 후와 주말 주요한 숙제가 되었듯, 프랑스인들은 여유 있는 노후를 위해 '연금, 난 너만 잡는다' 식으로 치열하게 오늘도 정부와 사투를 벌입니다.


2년 전 프랑스 엠마누엘 마르롱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엄청난 시위가 있었는데, 당시 파리 공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교통체계가 마비되어, 스웨덴 출장 중이던 제가 귀국이 힘들어, 며칠간 강제 관광모드를 즐겼던(?) 기억이 있네요. (고맙다 Air France 파업!!) 여전히 연금개혁에 대한 정부와의 첨예한 대립은 프랑스인들에겐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인 거 같습니다. 하나, 국가 성장동력 약화, 재정결핍 차원에서 이미 비준된 연금개혁은 돌이킬 수 없는 입장이랍니다.

화면 캡처 2025-05-10 075006.png

프랑스 직장에서 한국의 직장인들의 고민거리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없게 되었네요.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준비 중이며, 아래표를 봐도 연금에 진심인 이유가 보입니다.


OECD에서 발행한 같은 자료에서 보듯이, 가처분 중위소득의 50% 미만에 해당되는 연령대가 현저히 낮은 경우가 프랑스입니다 (<5%). 넘사벽 북유럽국가들 바로 다음이네요. WOW!

가구 가처분 중위값의 50% 미만.png OECD & G20 Indicator (13 Dec. 2023)

안타깝게도 한국은 또 일등입니다. (위 표에 나와있는 국가들 중)


은퇴 연령 (66-75세) 인구의 30% 가까운 분들이 너무나도 낮은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76세 이상으로 가면 상황 (52%)은 더 심각하네요.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직장인들보다 치열하게 경쟁적으로 살고 있는 대한민국 직장인, 답은 각자가 찾아야 하는 현실이지만, 그리 많은 옵션이 존재하지 않아 보입니다. 각자도생이라는 대세 흐름이 우리 사회를 지속적으로 관통하게 되었습니다.


There is no stupid question. Only a stupid answer. 결국 어리석다기보다는, 상황에 맞지 않는 질문이었네요. 프랑스인들도 물가상승, 부동산 비용 등으로 생활비 부족이나, 양극화로 인한 불안한 미래를 토로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큰 그림으로 봐서는 국가가 운영하는 제도가 기본 이상은 한다는 게 부러울 따름입니다.


얼마 전 제가 살던 아파트의 care taker (관리인) 아주머니가, 손자도 돌보고, 영어도 배우고, 여행도 많이 다닐 생각에 곧 하게 될 퇴직이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말씀하신 게 생각납니다. 그야말로 즐거운 은퇴 (은혜로운 퇴직)이네요.


우리도 지속가능한 복지제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겠지만, 결국 국가차원의 성장활로가 먼저이며, 연금개혁 전에, 각자 호흡을 길게 가지고 넓은 안목의 인생 로드맵을 만들어 가보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희망을 가지고 출근길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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