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올스톱' vs. 영국식 '눈치껏 잔잔히'
여름휴가 시즌입니다.
서울보다 위도상 15도 높은 영국 맨체스터는 올해 유난히 맑고 청량한 여름 날씨라고 합니다. 워낙 비가 잦고 흐린 날씨로 유명한 지역인데, 폭염과 폭우로 혹독한 여름을 나고 있는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이상기온 현상에 나름 수혜를 받고 있다 볼 수 있겠네요. 햇볕도 좋고, 선선한 여름 바람에 휴가 떠나기 좋은 시기입니다.
직장인에게 여름휴가는 단순한 휴식 그 이상이죠. 소중한 재충전의 시간이자, 특히 유럽권의 경우 어디나 손쉽게 이동이 가능해, 여행을 통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시기죠. 저 역시 지금 2주간의 달콤한 휴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 특히 "휴가에 진심인 나라" 프랑스에서 10여 년을 지내다 보니, 영국에서의 2주의 휴가가 마치 본 경기에 앞서 몸만 풀다 끝나버리는 워밍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최소 4주의 여름휴가가 흔한데요, 어느새 저도 그런 문화를 체화한 ‘Spoiled child’가 돼버렸네요.
휴가에 진심인 나라 vs. 현실주의적 나라: 휴가를 맞이하는 프랑스와 영국 직장인들
영국에서 2025년 기준 연간 휴일은 공휴일 포함 28일, 프랑스는 거기에 8일을 더 얹은 넉넉한 36일. 숫자만 봐도 프랑스의 ‘휴가에 진심인 태도’가 느껴지지만, 진짜 차이는 회사문화에서 나옵니다.
프랑스에선 7월 중순이 되면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휴가 쓰세요~”라는 메시지를 날립니다. 사내 방침이자 대부분의 기업들의 관행이죠. 이전 다녔던 프랑스 회사 역시 8월 한 달은 올스톱 모드로 들어갑니다. 특히, 7월 14일 혁명기념일을 기점으로 대출발(Grand Départ)이 시작됩니다. 기본 4주 길게는 5주씩 장기휴가를 떠납니다.
게다가 프랑스 회사들은 복지 차원에서 여행을 장려합니다. 직급에 따라 바우처나 여행비를 지원해 주는데, 캠핑장부터 호텔, 클럽리조트, 항공, 철도까지 다 커버 가능하죠. 많게는 백만 원대 이상의 바캉스 자금이 지급되며, 정해진 휴가비를 지급받고 사용여부는 본인의 판단에 맡기는 한국의 휴가제도와는 달리, 프랑스는 휴가기간 여행을 떠나는 만큼 비용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인 셈이죠. 긴 기간 동안 특히, 학교 방학 역시 6주는 기본이라, 바캉스를 안 떠날 이유가 없게 만들어 버리죠.
'바캉스(Vacance)'라는 말 자체가 '비우다'에서 왔다죠. 일을 비우고, 도시를 비우고, 생각까지 비우는 것. 프랑스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아주 충실히 실천합니다. 국민적 공감대, 법적 보장, 그리고 누구나 부담 없이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이 모든 게 “충분히 쉰 사람이 더 잘 일한다”는 철학을 바탕인, 프랑스적 휴가 문화의 핵심이죠. 실질적으로 시간당 생산성을 보면 프랑스가 의외로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영국에선 그런 고지나 휴가비 지원 시스템은 딱히 없더군요. (회사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7~8월이 대체적으로 휴가 시즌이긴 하지만, 대부분 일주일씩 짧게 나눠서 쓰는 분위기입니다. 분산형이고,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죠.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대신 ‘장기간의 보장’도 없습니다. 몇몇 직원들은 빠르게는 7월 초에 미리 다녀온 경우도 있고, 9월 즈음 몇 주 쉰다는 직원도 있습니다. 또는 7월 말에 2주, 8월 중순에 1주, 이렇게 나눠서 쉬기도 합니다.
이렇듯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휴가를 계획합니다. 덕분에 회사는 인력 배치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고, 팀 전체보다는 개별 성과 중심의 운영에 집중할 수 있죠. 업무는 돌아가고, 사람은 교대로 숨을 돌리는 식입니다. 또한 자율권에 의해 휴가기간과 시기를 정하면 소위 피크 시즌을 피해 자체적으로 휴가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아서 일하는 직원들의 경우, 동시다발로 우르르 쉬었다가 복귀하는 문화가 아니다 보니, 업무 진행차원에서 오히려 효율과 생산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누가 언제 휴가를 떠나고, 언제 복귀하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시간적 소요가 크고, 업무 진척상황도 사실상 그리 영속성을 덜 느낍니다. 한국과 프랑스처럼 일괄적인 휴가기간에 익숙해진 저로써는 영국의 자율적인 휴가문화가 조금 어색하게 다가옵니다.
유럽의 양대 경제권역이자 문화를 선도하는 국가인 프랑스와 영국 직장에서의 휴가문화 차이는 역사적으로도 이해가 됩니다.
프랑스는 1936년 인민전선 정부 시절부터 유급휴가를 노동자의 권리로 보장해 왔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한다”는 가치관이 강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Emily in Paris에 그런 표현이 나오는데요. (아래 사진)... 대화 속에서 말하는 살기 위해 일한다 (We work to live)는 것은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며, 열심히 일하지만 일에 자신의 전부를 내던지지 않으며, 일에 집중하고 남은 시간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온전히 사용하는 삶을 추구하는 거죠.
영국의 경우는 전통적으로 시장 중심의 노동 정책을 유지해 왔고, 국가의 휴가 개입은 최소 수준이었다고 하네요. 근면을 미덕으로 삼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산업혁명 이후 자리 잡은 ‘일=존재 가치’ 문화는 지금도 직장 곳곳에 스며 있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긴 휴가를 간다고 하면 눈치가 조금 보입니다. 최근에 스웨덴 출신의 경력사원의 경우, 5주간의 여름휴가를 쓰려했는데, 결국 반려되어 3주간만 휴가를 쓰게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몇 달간 경험한 바로는 영국의 기업문화는 프랑스에 비해 근무 시간 중심의 평가가 강한 편입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이번 주 업무시간수를 기입하고 제출하는 시스템이 있는데요. 노동의 시간적 가치를 중시하는 제도인 건가요? 약간 어처구니없는 시스템입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영국의 여름휴가는 잠깐의 휴식정도이며, 어디까지나 구성원의 권리로 여겨집니다. 마치 “일을 쉬면 뒤처진다... (아니, 뒤진다?)”라는 정서가 은근히 존재하는 느낌. 재충전이라기보단, 업무의 연속성을 끊지 않는 방식의 짧은 휴가가 일반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데요, 프랑스의 아우구스트 셧다운(August shutdown)에 익숙해진 입장에서 보면..... 진짜 휴가는 뚜렷한 off가 있어야죠.
여기에 지리적 요소도 한몫합니다. 프랑스에선 흔히 가는 휴양지인 남부 해안, 북유럽, 스페인까지—편도 10시간 이상의 로드트립도 흔한 풍경입니다. 이런 일정엔 자연히 충분한 휴가 기간이 필수죠. 실제로 많은 직원들이 최소 2주씩 파리에서 스페인으로 그리고 스위스로 캠핑카를 빌려 여름휴가를 다녀왔었습니다. 반면, 영국은 주요 도시에서 대다수 지역이 4시간 이내로 닿을 수 있어, 휴가가 ‘짧고 간편한’ 형태로 굳어진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 와중에 한국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폭염, 열대야, 폭우… 날씨 뉴스만 봐도 여름이 철저히 ‘기후 재난 시즌’으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이렇게 혹독한 날씨 속에서도 바캉스를 떠날 수 있다면—그 자체가 하나의 큰 기쁨일 텐데요. 여러분은 프랑스식 '올스톱' 아니면 영국식 '눈치껏 잔잔히', 어느 쪽이 맘에 드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