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기술 봉건주의]
이 글은 아래 책에 대한 서평이다.
: 세드릭 뒤랑. (2025 [2020]). 기술 봉건주의: 빅데이터 제국에 포획된 현대 경제와 민주주의. 주명철 옮김. 여문책
1.
<기술 봉건주의>는 세드릭 뒤랑(Cédric Durand)의 책 <Techno-féodalisme Critique de l'économie numérique>(2020, La Découverte)의 번역서이다. 뒤랑은 제네바대학교 정치경제학 교수로 현대 자본주의의 변형을 연구하는 학자이다. 뒤랑은 마르크스주의와 프랑스 조절학파 전통 안에서, 세계화의 맥락에서 불평등한 개발, 경제 금융화, 지적 독점화의 과정, 계획과 에코사회주의의 분기 등을 연구하고 있다.1)
이 책을 통해, 뒤랑은 현시대의 디지털 경제가 갖고 있는 봉건주의적 요소를 밝혀내고자 한다. 책의 번역은 읽기 쉽게 되어 있으며, 특히 역자 주가 잘 되어 있어, 핵심 개념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내용을 압축적으로 구성해 책의 분량은 길지 않은 편이다. 다만, 그만큼 기존 논의에 생소한 독자들은 책을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듯하다(물론 나의 이야기다).
2.
뒤랑은 워싱턴 합의를 넘어선 실리콘밸리 합의를 설명하고, 그 기반이 되는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2)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책을 시작한다.3) 뒤랑에 따르면, “이 교리[실리콘밸리 합의 – 필자]는 시장을 통한 자원 배분의 정적 효율성보다 창조적 파괴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동적 효율성에 더 중점을 둔다. 이를 통해 교리는 안정화-자유화-민영화라는 삼중 구도를 넘어 인센티브 문제를 중심에 두며 그 처방의 범위를 확장한다. 따라서 공공 개입의 절제, 기업가적 에너지의 해방, 상품‧노동‧자본 시장의 유연성, 혁신가의 재산권 보호라는 원칙들이 실리콘 밸리 합의의 특징적인 공공 정책 방향을 이끈다.”(50) 말하자면, 실리콘밸리 합의는 “워싱턴 합의를 계승하면서도 기술 낙관주의라는 질적 요소를 추가적으로 결합”한다(47).
뒤랑은 실리콘밸리 합의가 다섯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①스타트업 창업자들의 모험 정신이 경제구조를 지속적으로 재활성화한다는 믿음, ②작업의 자율성과 창의성 찬양, ③개방성과 이동성을 강조하는 문화, ④모두가 누리는 번영의 약속, ⑤국가의 소멸이라는 이상. 그러나 뒤랑에 따르면, “새로운 자본주의의 실제 발전 방향은 각각의 핵심 요소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51)
첫째, 대기업으로 성장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독점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①). 둘째, 정보‧감시 시스템의 도입으로 노동자들은 오히려 자율성을 빼앗기고 있다(↔②). 셋째, 개방과 자유로운 이동의 이미지 이면에는 분리와 차별의 역동성이 있다(↔③). 넷째, 풍요로운 혁신에도 불구하고 생산성과 성장은 계속 둔화되고 있다(↔④). 공공 개입이 기술 발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⑤). 이 같은 상황에서 뒤랑은 하버마스의 “공적 영역의 재봉건화” 개념을 끌고 와 자본주의 발전이 ‘디지털 봉건주의’로 퇴행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뒤랑은 “디지털 지배”의 등장을 설명하기 위해 이른바 ‘감시자본주의’ 개념으로부터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소위 ‘빅테크’ 기업들은 빅데이터를 통해 소비자들의 행동을 예측할 뿐 아니라 나아가 원하는 행동(즉, 소비)을 끌어낸다. 이를 위해서 소비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감시 기술들이 작동한다. 그러나 뒤랑은 이 같은 감시 자본주의 논리가 “사람들을 통제하는 측면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그 시스템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방식은 간과할 위험이 있다”라고 지적한다(152). 즉, 감시 자본주의가 작동하려면, 어떤 정치경제학적 변화가 함께 일어나야 하는가?
뒤랑은 플랫폼의 영지화를 지적한다. 즉,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들이 플랫폼에 의존하게 만들고 그들로부터 데이터를 채굴한다. 이 디지털 영지에서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도 달라진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상당한 자율성을 가진 듯 보이지만,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여전히 플랫폼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즉, 플랫폼은 사실상 중개자를 넘어서 고용주가 된다). 다시 말해서, 플랫폼 노동에서는 전통 노동에서와는 달리 종속성과 경제적 의존 관계가 분리된다.
다음으로 뒤랑이 다루는 주제는 ‘사회적 통제’이다. 여기에서 주로 다뤄지는 사례는 중국의 사례로서 자동 감시 기술을 통해 어떻게 사회적 통제를 자동화하고자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들(감시자본주의, 플랫폼의 영지화, 사회적 통제의 자동화)을 통해서 뒤랑은 디지털 시대에 “지배”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뒤랑은 볼드윈의 논리를 끌고 와서, 정보 시스템의 발전으로 무형 자산의 비경합성이 충분히 발휘되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 후반 이후 “두 번째 분리”4)에 의해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수익이 양극화”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스마일 곡선”5)은 작금의 현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뒤랑은 그 결과 “배버지의 원리”6)가 극대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지적 독점화된 결과 “경제적 권력이 소수의 핵심 거점에 집중”되고 있다.
이들 경제 권력은 소위 “지적 독점 자본주의”(“지식에 대한 법적” 독점으로 확산된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를 형성한다(203). 그렇다면 무엇이 지적 독점 자본주의를 촉진하는가? 표준‧기술‧브랜드의 강화 외에도 뒤랑은 세 가지 메커니즘을 더 발견한다. 첫째, 글로벌 가치사슬에서도 자연 독점 현상(“네트워크 상호 보완성, 규모의 경제, 회수 불가능한 투자의 세 요소에서 비롯된 시장구조”)이 나타난다(205). 둘째, 무형 자산은 유형 자산에 비해 복제‧확장하는 비용이 월등히 적기 때문에 훨씬 높은 규모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셋째, 이런 통합을 통해 기업은 더 많은 데이터를 획득하고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데이터는 물론 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거대한 지대 경제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뒤랑은 그 이유가 “정보가 새로운 가치의 원천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보와 지식의 통제, 즉 지적 독점화가 가치를 확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214).
뒤랑은 특히 “수직적 합병은 너무 19세기적”이라고 말한 앤마리 슬로터를 비판하면서, 소위 빅테크 기업들의 플랫폼이 일종의 지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뒤랑은 이 새로운 경제가 역설적으로 봉건화(즉, 기술 봉건주의)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뒤랑은 봉건주의의 재등장을 확인하기에 앞서 “봉건주의란 무엇인가?”를 먼저 다룬다. 봉건주의와 관련된 여러 학자의 논의를 다양하게 다루지만, 그 결론은 하나의 표로 압축될 수 있다(표1).
그렇다면 뒤랑이 말하는 “기술 봉건주의”란 무엇인가? 뒤랑은 우선 자본주의 역동성과 현시대의 포획 관계를 대립시킨다. 즉, 자본주의는 “경쟁과 시장 의존성에 기반을 둔 투자라는 핵심 원칙”에 따라 그 역동성을 유지하지만, 무형 자산의 급성장과 더불어 “디지털 자산과 그 사용자들이 한 몸처럼 연결됨에 따라 개인과 조직은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서로 얽혀 있어서 경쟁의 역동성은 깨지고, 무형 자산을 통제하는 이들은 진정으로 생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가치를 독점”할 수 있게 된다(260). 따라서 뒤랑은 “이러한 구성에서는 투자가 생산력 개발이 아니라 포식력 개발에 방향이 맞춰진다.”라고 말한다(261; 강조는 저자).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를 띠는가?
먼저, 뒤랑은 ‘원본 데이터에 대한 독점’과 규모의 경제 및 네트워크의 상호 보완성을 지적한다. 즉, 원본 데이터가 아주 값진 희소성을 갖기 때문에 새로 시장에 들어오려는 신규 경쟁자는 비싼 값을 치르고서 원본 데이터를 획득해야 한다. 한편으로, 원본 데이터는 적은 비용으로 복제‧확장될 수 있는데, 기존 기업들은 이미 확보한 네트워크를 통해 손쉽게 이득을 확대할 수 있는 반면, 신규 경쟁자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따라서 “디지털의 독특함은 데이터 포착을 위한 중요한 위치의 희소성과 무한히 증가하는 수익을 결합하는 데 있다. … 이러한 새로운 구성은 자본주의의 원동력이 되는 실제 경쟁과정을 방해한다.”라고 뒤랑은 주장한다(264-5).
이 같은 구조에서 “상호 의존적인 사용자 네트워크의 존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266). 즉, 이용자들은 플랫폼을 이용하기 위해 플랫폼 기업에 기꺼이 자기 데이터를 제공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플랫폼에 대한 이용자들의 “의존관계”가 커진다는 점이다. 즉, 이용자들(특히 플랫폼을 이용하는 생산자)은 점점 더 주요 플랫폼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이 같은 현실은 봉건주의 사회에서 농노들이 영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의존관계에 얽매여 있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 뒤랑의 주장이다. 즉, 뒤랑이 주장하는 대로 “포식의 모델”이 작동한다.
뒤랑은 포식의 모델을 성공하기 위해 자본주의에서 ‘경쟁의 역설’을 먼저 말한다. 즉, 자본주의에서 기업은 이익을 얻기 위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정작 기업가들이 피하고 싶은 그것은 바로 경쟁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경쟁하기보다 오히려 잉여가치를 포획하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일부는 포식자가 되고, 일부는 희생자가 된다. 즉, 포식은 “포획을 통한 자원 배분의 경제적 메커니즘”이며, 경제 발전은 오히려 포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276).
이 같은 포식자-먹이 관계는 “포식자와 먹이 간의 사전 비대칭성”을 핵심으로 하며, “포식자만이 공격자이자 보호자로서 행동할 수 있지만, 먹이는 탈출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뿐 공격에 맞서 반격할 수는 없다.”(278) 이런 기반 위에서, 뒤랑은 디지털 경제의 역동성을 이해하기 위해 “포획 비용,” “지배,” “탈출 비용,” 세 가지 카테고리를 중요 요소로 제기한다. 즉, 포획 비용은 “하이퍼스케일 성장의 동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초기 투자”를, 지배는 “알고리즘적 통치에 고유한 구조와 그 정치적 차원”을, 탈출 비용은 “디지털 토지에 대한 의존성”을 말한다(279). 결론적으로, 이 같은 요소들은 “새로운 생산방식의 본질에 내재된 반동적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낸다(279).
3.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 세드릭 뒤랑의 풍부한 지식과 역자 주명철의 상세한 역자 주이다. 저자와 역자의 역량 덕분에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다양한 개념과 이론, 사례들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어떤 측면에서, 그 장점은 단점이 될 수도 있는 듯하다. 내용을 압축적으로 다루면서 너무 많은 논의를 함께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 것인지 파악이 잘 안될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책을 덮은 지금도 ‘그래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책은 ‘기술 봉건주의’에 대한 논의인데, 그래서 ‘기술 봉건주의’가 정확히 무엇인가를 책을 덮은 후에도 잘 잡히지 않는다. 물론, 책 전체를 통해 뒤랑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흐릿한 형체로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 만질 수 있는 형태로서 내 손에 딱 쥐어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테크노퓨달리즘>(2024, 21세기북스)와 비교해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사실상, 같은 제목을 하고 있는 두 책이지만, 두 책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뉘앙스를 갖는 듯하다. 만약 두 책 중 어느 책이 더 읽기 편했냐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는 바루파키스의 책이 더 쉽게 읽혔던 듯하다.
한줄평: 굉장히 얇지만, 논의의 밀도가 상당한 책이다.
4.
인상적인 문구들
“무형 자산과 유형 자산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들이 결합해야만 유용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다.” (197)
1) https://thenew.institute/en/people/cedric-durand
2)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Richard Barbrook & Andy Cameron. (1996). “The Californian Ideology”, Science as Culture, 6(1), pp. 44-72. 이 글에서 바브룩과 카메론은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를 “기술결정론과 자유시장주의적 개인주의가 이렇게 모순적으로 결합”된 “정보시대의 혼성교배적 전통”으로 정의하고 있다.
3)
4) Richard Baldwin의 개념. 첫 번째 분리: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어 1960년대부터 더욱 강화된 현상. 운송 비용이 감소하면서 소비자 근처에서 상품을 생산할 필요성이 사라지게 된 현상을 의미. 두 번째 분리: 1980년대 후반 이후 통신 비용이 감소하면서 제조과정의 모든 단계를 서로 근접한 곳에서 수행할 필요가 사라진 현상을 의미.
5)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가치 분배를 나타내는 곡선. “곡선의 중앙에는 가장 표준화되어 있고 지식 집약도가 낮은 활동 분야가 위치하며, 이는 1990년대 이후 대규모로 해외 이전된 활동이다. 이 부분에서는 경쟁이 가장 치열하며, 그 결과 가치 창출 능력이 가장 낮다. 곡선의 양 끝에는 생산의 초기 단계인 설계와 최종 단계인 고객 제공과 관련된 활동들이 자리 잡는다. 이들은 지식 집약도가 가장 높은 부분으로, 가치 창출 능력이 최대화되는 영역이다.” (200)
6) Charles Babbage의 개념. “작업을 세분화해서 단순한 작업은 저숙련 노동자가, 복잡한 작업은 고숙련 노동자가 수행하도록 조직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원리” (201, 각주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