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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군사화의 역설: 탈군사화는 비군사화가 아니다.

[서평: 무기가 사라진 DMZ]

by 무순

이 글은 아래 책에 대한 서평이다.

: 데이비드 하블릭. (2020). 무기가 사라진 DMZ: 탈군사의 흔적 그리고 생태복원. 박수철 옮김. 이상준‧박종길 감수. 북스힐



1.


무기가 사라진 DMZ: 탈군사의 흔적 그리고 생태복원은 데이비드 하블릭(David G. Havlick)의 책 <Bombs Away: Militarization, Conservation, and Ecological Restoration>(2018, University of Chicago Press)의 번역서이다. 제목과 관련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원서 제목에는 DMZ가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의 DMZ는 실제로도 단지 한 사례로서밖에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용 면에서도 지나치게 직역을 고집하여 가독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저자 데이비드 하블릭은 UCCS(University of Colorado Colorado Springs)의 지리학 교수이다. 주요 관심 분야는 생태 복원, 생태 윤리, 생태 철학, 보전과 공유지, 군사지리학, 정치생태학 등이다. 국내 번역서는 <Bombs Away> 한 권이며, 다른 주요 저서로는 <No Place Distant: Roads and Motorized Recreation on America's Public Lands>(2002, 공저, Island Press), <Restoring Layered Landscapes: History, Ecology, and Culture>(2015, 공저, OUP USA) 등이 있다. 특히 <Bombs Away>는 미국지리학회에서 수여하는 존 잭슨 상을 받기도 하였다.



2.


이 책은 “탈군사적 야생동물보호지구화의 현장”이라고 부르는 “현장에서 나타나는 군사화, 보전, 생태복원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새로운 결합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숙고”한다(9). 여기에서 “탈군사적 야생동물보호지구화의 현장”은 “단순한 자연적 공간이나 사회적 공간이 아니라 자연적, 사회적, 기술적 요소가 혼재된 복합정 성격의 현장”으로 정의되는 데, 이 책은 “이와 같은 장소들이 지금 어떤 상태이고, 또 어떤 식으로 표현되고 있는지” 밝히고자 한다(5).


탈군사적 현장이란 “군사화 지형”에서 비군사적 용도로 용도 변경된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 군사화 지형이란 “군사 활동이나 국방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받아온 장소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훈련장, 기지 방어시설, 병기시험장, 그리고 군사력을 바탕으로 강화되거나 보강된 보안구역이나 국경지대 등이다. 군사 활동으로 인해 오염된 지하수나 토양도 군사화 지형에 속한다.”(8) 그중에서도 보전구역으로 용도변경된 지역을 아마도 “탈군사적 야생동물보호지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보전과 군사화 사이, 훨씬 더 넓게 보자면, 자연과 정치 사이의 중요한 연결점에 더 주목”한다(9).


작가는 탈군사적 야생동물보호지구화에 내재된 긴장들, 즉 “군사적 환경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군사적 환경주의란 “군사 활동이 환경적 특성과 생태적 조건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26). 군사 활동이 남긴 흔적들(예를 들어, 제거되지 않은 지뢰, 폭발물, 심각한 오염)은 특히 복원 계획을 복잡하게 만든다. 작가에 따르면, 군사적 환경주의는 오히려 그 환경적 영향을 왜곡할 수도 있다. 요컨대, 군사적 환경은 복원 활동을 필연적으로 제약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복원이란 무엇인가?


전통적인 생태복원관에 따르면, 복원이란 생태계를 교란 이전으로 되돌리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의는 실용적, 생태적, 철학적 문제를 갖고 있다. 요컨대, 이 같은 생태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며(실용적), 동적인 생태계를 정적으로 정의하며(생태적), 인간을 단지 파괴적인 존재로 전락시킨다(철학적). 따라서 “‘질이 떨어졌거나 훼손되었거나 파괴된’ 생태계의 회복을 도와주는 과정”이라는 새로운 정의가 제안된다.

그러나 새로운 정의는 새로운 질문을 가져온다. 이 정의를 받아들일 때, 역사가 차지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복원을 단지 ‘자의적인’ 재야생화치유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더욱이 중요한 역사가 망각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최고의 생태복원 사례로 손꼽히는 로키산 군수공장 국립야생동물 보호지구를 예로 든다. 이곳의 생태복원은 군수공장의 위험 요인을 제거한 생태적으로 성공한 복원 사례이지만, 그 문화적 의미는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곳이 한때 군수공장이었고, 또 한때는 농장 터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망각된 채 단지 보전 구역으로만 기억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한다. 작가는 이런 부지들이 “군사화적 성격과 자연적(혹은 자연화적)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고, 덕분에 우리는 이 두 가지 성격을 별개의 영역으로 나눌 위험성을 더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98).


진정한 복원이란 문제를 넘어선다 치더라도, 이렇게 탄생한 보호지구가 “진정한 공공적 부지의 역할을 얼마나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물어볼 수 있다(103). 일반인의 출입이 상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물론 탈군사화 보호지구의 실천적 평가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하지만 보전 측면에서 보면, 일반인의 출입 제한은 그 사명과 일치하는 방침처럼 보인다. 문제는 탈군사화 야생동물보호지구에서 보전에 대한 강조는 일반인들이 그 훼손의 역사는 간과하고 그 현장을 “야생동물의 안식처”로 받아들이게끔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110). 다시 말해서, 탈군사화 보호지구의 군사적 속성을 잊게끔 한다.


작가는 한국의 비무장지대, 오스트렐리아의 몬테벨로 군도, 비키니 환초 사례를 통해 탈군사화 보호지구의 군사적 속성이 어떻게 잊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즉, 이런 장소에서 복원된 “새로운 자연은 그간의 충격을 완화하고 역사적 교훈의 힘을 약화”할 수 있다(173). 반면, 작가는 철의 장막 지역을 교육적 모범을 제시한다. 작가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는 보전뿐만 아니라 기념과 기억을 중시함으로써 관광객들이 과거의 군사적 속성을 예리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럼에도 ‘탈군사화’는 과연 ‘비군사화’의 동의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조차도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작가의 의견이다. 그는 ‘탈군사화’, 즉 “기지 폐쇄와 용도 전환은 결코 비군사화 과정”이 아니라고 말한다(210). 왜냐하면 그것은 군사적 관점에서 중앙집권적으로 이뤄지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 판단에 생태적 목적이 포함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탈군사화된 장소는 위험이 공존하는 장소가 될 뿐이다(물론 위험은 사람의 접근을 막고 결과적으로 생태를 복원시키는 듯 보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탈군사화 장소의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일본을 예시로 들면서, 작가는 사실상 많은 장소가 한때 군사 작전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제 우리는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작가의 대안은 명확하지 않지만, 기억과 기념이 이뤄지고 있는 여러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책을 마무리한다.



3.


생태 복원과 관련된 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일독을 권할 만한 책(그렇지만 내용을 한 번에 꿰기에는 다소 어려운 책)이다. 더욱이 앞서 지적한 것처럼 번역서의 제목은 굉장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만약 DMZ에 관련된 글을 읽기 위해 이 책을 집어 든 독자라면, 원하는 바를 사실상 이룰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군사적 환경주의’의 양가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주된 주장에 따르면, 다소 우연적인 결과 또는 부수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는 복원은 그 장소의 ‘군사적 역사성’을 강력하게 은폐한다. 우리가 그동안 주목하지 못한 듯하지만, 한국만큼 이 문제가 강력하게 드러나는 곳도 없을 것이다. 동네 뒷산에만 올라도 군부대가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 아닌가? 비록 70년이 넘는 분단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그 군사적 요소들을 꽤 망각한 채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한편으로, 이 책이 정말로 많은 장소를 오간다. 그만큼 이 주제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노력, 그리고 박식함을 볼 수 있지만, 그 반대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독자로서 내용이 잘 안 와닿기도 했다. 물론 그만큼 발걸음을 팔지 못한 나의 잘못이지만.


또한,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내용들이 다소 흩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싶을 정도이다. 물론 읽을수록 작가의 일관된 주장이 계속해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내용이 조금 난해해질 수 있더라도, 첫 장에서 관련된 논의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갔으면 책 전반을 조금 더 명확하게 꿰뚫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든다. 한편으로 책이 다소 어려운 길을 가게 된 이유도 이해가 된다. 다소 난해한 학술적 내용을 다 버리고 쉬운 에세이로 머물기에는 그 함의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술적 포화도를 다소 낮추면서도 그 내용을 유지하기 위한 고민이 들어갔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책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이 다소 흩어져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그럼에도 갈수록 하나의 실로 꿰어져 있다고 느끼게 하는 책이다. 물론 다른 책보다는 조금 더 독자들이 바느질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점은 있지만. 하나의 실로 꿸 수만 있다면, 생각보다 많은 교훈을 가져갈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4.


발췌

“울려 퍼지는 대포와 자동화기의 소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기묘하게 뒤섞인 특징을 감안하면, 탈군사적 야생동물보호지구는 일종의 혼종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혼종적 공간은 군사기술과 군사적 충격에 의해 형성되었지만 얼핏 자연적인 장소이다. 여러 탈군사적 야생동물보호지구와 그 특성에 비춰볼 때, 더 심각한 문제는 특정 장소가 군사적 영향과 충격을 완전히 숨길 것이라는 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장소에서 폭넓은 군사화 과정이 자연화된다는 점일지 모른다.”(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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