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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까지 나를 사랑할 남자가 나타났다.

시작도 못하고 끝난 결혼 1

by 임선민

남편과의 인연의 끈은 질기고 길었다.


김현재는 내가 스물한 살 때,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스물여섯의 나이로 대학에 복학했다. 내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호감 그 이상인 본인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무모함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의 불도저 같은 일방적 마음과 다섯 살이란 나이차이는 어린 내겐 그저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 뒤 나는 공무원이 되었고, 현재는 다시 군에 입대해 조종사가 되어있었다. 대학 졸업 후 7년이 흘러 우리는 우연히 다시 만났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만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마음 한 구석에 콩알만큼이라도 나의 자리가 계속 존재했던 거라면. 생일에만 주고받는 연락이 결국 “얼굴 한 번 보자!”가 되어 서로 어색함을 무릅쓰고 몇 년 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그 한 번의 만남 이후 우리는 연인으로 발전했다. 스물한 살이 아닌 스물여덟의 나에겐 나이 차이도 더 이상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린 그 만남을 두고 여러 번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게 너무 묘해. “

당시 남에게 차마 말 못 할 이상한 일들을 겪은 직후인 터라 더 쉽게 그에게 의지했고, 놀랍게도 그는 본인이 마치 우리 엄마나 아빠라도 되는 것처럼 내 모든 허물과 치부를 감싸고 이해하며 나를 보듬었다. 그건 엄마의 사랑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말도 안 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상처가 많은 사람이고, 일을 하면서부터는 그것을 혼자 치유할 능력이 부족해 병원에 다녔다. 약에 의존해 왔던 나를 정신과로부터 해방시켜 준 것도 바로 현재였다. 나의 심신은 그의 곁에서 안정감을 찾았고, 이 사람이라면 불안한 나를 평생 다독이며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생겼다.


그렇게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나도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현재에게 주었다. 3년 동안 만나면서 단 한 번도 언성 높이거나 싸운 적이 없다고 말하면 주위에서는 그게 가능하냐며 반문하곤 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관계가 가능한 사람이 존재하더라. 일방적으로 누군가가 참아주는 게 아닌, 모든 방면에서 완벽하게 잘 맞는 사람이.


그래서 만나는 순간마다 결혼을 생각했다. 우리는 서울-강원도 장거리 연애를 했지만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라도 단 세네 시간 얼굴을 보러 왕복 세 시간이 넘는 거리 고속도로를 달려오던 현재를 보며 주말부부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3년을 한결같이 나에게 달려와 주던 그였기에 물리적 거리 따위는 우리의 사랑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현재가 그간 내게 보여준 무한한 애정과 신뢰는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나로 하여금 세상을 조금 더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나에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말 뿐이라고 해도 “내가 죽어서도 사랑할 선민이. “라는 그의 말에 진심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연애 초부터 현재가 지겹도록 묻는 말이 있다.

“나 사랑해? “

당연히 너무나 사랑하는데, 물론 자기가 더 잘 알 텐데 그럼에도 항상 확인받고 싶어 하는 그 질문 자체가 왠지 슬프게 들렸다. 그리고 내 대답은 항상 같았다.

“평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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