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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Jul 21. 2023

[세계여행] D+21 와카치나, 파라카스

산을 벗어나 즐기는 사막과 바다

와라즈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순간에 파라카스가 아닌 와카치나로 향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파라카스 마을이 워낙 작고 예쁘지 않다는 말들도 많았고 와카치나에서 데이투어가 가능한 만큼 굳이 숙박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밤버스를 타고 리마에 새벽에 도착하고 바로 와카치나 옆 도시인 이카로 이동할 수 있는 터미널로 향했다. 페루로 들어온 순간부터 리마에 얼마나 머무를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페루의 수도이기에 뭔가 시간을 두고 둘러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다녀온 사람들에게 들은 평이 워낙 별로였다. 치안도 그다지 좋지 않아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고 볼거리도 많지 않아서 스킵해도 크게 상관없을 거라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이 한 가지 공통적으로 말하는 장점이 있다면 음식이 맛있다는 것인데 사실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고 길거리 아무 데서나 현지인 식당에서만 먹는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그다지 큰 매력이 되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리마에는 머무르지 않기로 했다.


이카로 향하는 버스에서도 몸이 별로 좋지 않았고 전날 밤버스의 여파까지 더해져 골골대며 이동했다. 지금까지 줄곧 대부분 산간지역에서 이동했기 때문에 리마를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창 밖으로 바다를 보았다. 이카 도시 자체는 딱히 볼 게 없었기에 와카치나 마을로 들어가기 전 출금이나 하려 근처 몰로 향했다. 여전히 속은 좋지 않았지만 이틀 동안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파파존스에 들어가 1인피자를 시켰다. 남미 소도시에는 파파존스나 피자헛, KFC 같은 브랜드가 시내보다는 대형 몰에만 위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서서히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어서 오랜만에 배부르게 피자를 먹고 와카치나로 향했다.



와카치나는 사막 가운데 인공 오아시스를 호스텔과 식당들이 둘러싸고 있는 정말 작은 마을이다. 바뇨스가 아무리 관광객들만 가득한 마을이라지만 그래도 현지 교통에 중요한 길목에 있기도 하고 원래부터 에콰도르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관광지라 현지인들도 많이 보이는 것에 반해 와카치나는 그야말로 관광객, 관광업 종사자 말고는 아무도 없는 마을이다. 그마저도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사막에서 버기투어를 위해 당일치기나 1박만 하기 때문에 오후부터 저녁까지만 붐비는 느낌이었다. 나는 몸상태도 몸상태고 처리할 일도 있어서 2박을 예약했고, 첫날에는 무리해서 버기투어는 하지 않고 여행사나 돌면서 투어 가격을 알아보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투어는 잃어버린 계곡, 사막 버기, 파라카스 이렇게 3개였는데 처음으로 들어갔던 투어사에서보다 마지막 투어사에서 모두 합쳐 50솔도 넘게 깎은 것 같다. 마지막 투어사에서 그냥 얘기 들으면서 가만히 앉아있으니 자기들이 마음이 급했는지 계속 깎기 시작하더니 가격이 65+30+65까지 내려가 그냥 3개 다 한 여행사에서 예약했다. 사실 이것도 마음만 먹으면 더 깎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나쁘지 않은 가격인 것 같다.


와카치나는 관광객용 마을이기에 가성비 식당도 찾을 수 없어서 그냥 숙소 자체 식당에서 32솔주고 또 피자를 사 먹었다. 누구 말로는 와카치나에서 제일 맛있는 피자집이라는데 치즈가 맛이 없었고 결정적으로 너무 짰다. 입이 얼얼해질 정도로 짰다. 결국 반밖에 먹지 못하고 나머지 반은 나중을 위해 호스텔 냉장고에 처박아놨다.


다음날, 잃어버린 협곡 (Cañón de los perdidos) 투어를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픽업 온 밴에 몸을 실었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이곳은 10여 년 전만 해도 관광지가 아니었고 어떤 사람들이 바다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2011년 정도에 시장이 수행단과 차 2대를 가지고 방문했는데 그중 뒤에 오던 차가 사막에서 길을 잃어 같이 동행했던 기자가 저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 후로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많이 찾아오다가도 사막에서 길을 많이 잃었고 약 2017년이 되어서야 투어가 다니는 관광지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정말 사람들이 왜 그렇게 길을 잃었는지 이해될 만큼 가는 길이 험했다. 멀쩡한 도로로 달리다 갑자기 사막에서 오프로드로 들어서더니 그 상태로 2시간이 넘게 느리고 무지하게 흔들리며 협곡으로 향했다. 옆에 한 영국인 관광객은 이걸 다시 하느니 차라리 12시간 야간버스를 타겠다고 했다. 협곡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은 '겨우 이거야?'였다. 생각보다 스케일도 크지 않았고 뭔가 특이하긴 한데 느낌이 안 왔다. 협곡 아래로 내려가면서도 지형은 참 특이한 것은 맞는데 겨우 이걸 보려고 4시간을 그 고생을 하고 왔다는 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협곡에 대한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아마 이곳이 아직 해저에 있을 때 지진에 의해서 갈라졌고 그 후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른 뒤 산발적으로 강이 흐르게 되면서 계속 깊어지고 있는 상태일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협곡 안에서 화석도 많이 발견되고 제대로 관리되기 전 관광객들이 개별적으로 왔을 때는 많이 가져가기도 했다고 한다. 1시간 30분 정도 짧은 관광을 마치고 와카치나로 돌아가는 길에는 구름이 걷혀 사막이 훨씬 황량해 보여서 창 밖 뷰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굳이 하루를 투자해서 찾아올만한 관광지는 아닌 듯하다.


2시 30분이면 도착한다더니 3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와카치나에 복귀해서 4시에 시작하는 버기투어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같은 투어 그룹에 한국 중년 부부분이 계셔서 기다리면서 오래간만에 한국어로 떠들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예전부터 처음 만나는 사람은 또래보다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 편하다. 



버기투어는 확실히 매력 있었다. 대부분 여행자들이 이것 하나만을 위해 리마에서 이카까지 넘어오는 것이 충분히 납득할만한 재미와 경치였다. 놀이기구 타는 걸 싫어하는 나도 즐겁게 탈 수 있는 정도의 속도감이었고 처음 보는 사막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중간중간에 하는 샌드보딩도 별 건 아니지만 나쁘지 않았다. 해가 질 즈음이면 모래가 모두 주황색으로 보이고 순식간에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해를 아쉬운 시선으로 계속 뒤쫓게 된다. 와카치나는 뭔가 낮에도 사막치고는 긴팔을 입어도 될 정도로 덥지 않은 느낌인데 해가 지는 순간 바로 냉기가 느껴졌다. 비교적 스케일이 작은 와카치나도 이 정도로 멋있는데 사하라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지, 다시 한번 아마 마지막 여행지가 될 이집트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버기투어가 끝나고 한국인 부부분이 식사초대를 해 주셔서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깊은 얘기들을 너무 재미있게 했다. 나는 원래 남들에게 내 얘기를 하는 걸 많이 민망해하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런 부분이 사라지는 것 같다. 영국생활이 시작이었는지, 군대가 시작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반 강제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 얘기를 하는 것에 대한 거리낌도 많이 없어지는 것 같다. 이렇게 사회화가 되나 보다. 내 식사도 사 주시고 본인들 음식도 양이 너무 많다고 계속 양보해 주셔서 오랜만에 맛있고 다양한 식사를 했다. 들어갔던 식당이 내 호스텔 팔찌로 10% 할인이 되던 곳이었는데 계산할 때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생각나서 괜히 식사 사주신 부부분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저나 숙소 와이파이가 이틀째 말썽이다. 첫날에는 방에서 안 됐고, 둘째 날에는 숙소 전체가 되지 않아서 다음 행선지인 쿠스코 정보도 많이 알아보지 못하고 밀린 글도 쓰지 못했다. 최악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파라카스행 투어 차량에 탑승했다. 우연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번 투어에는 거의 대부분이 페루 현지인들이었고 나머지 외국인들도 다 근처 남미국가들 출신이었다. 얼마 크지 않은 밴에 좌석은 무지하게 많이 설치해 놓아서 좁고 답답하게 이동했다. 파라카스의 첫인상은 도착하고 조식을 먹는 식당의 파인애플 주스가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바닷가 마을은 전 세계 어디든 정신없는 것은 공통인 것 같다. 정말 작은 마을인데도 보트 입장하는 곳부터 각종 호객행위가 벌어지고 별 것 없는데도 분위기 자체가 산만하다. 길거리에서는 아저씨들이 펠리컨을 길들였는지 먹이를 주며 사진을 찍게 하고 돈을 요구하고, 보트를 탄 순간부터 사방에서 물개들이 뻐끔뻐끔 거리며 모습을 보인다.



Ballestas 섬으로 가는 길목에서부터 각종 동물들을 마주했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돌고래들도 해안 가까이에서 보였고 절벽 위의 펭귄과 바위에서 쉬고 있는 바다사자와 물개들이 가득했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물개와 새의 시체도 보였다.



섬의 지형도 너무 아름다웠고 실제로 노동자들이 구아노를 채취하는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것 다 떠나서 그냥 시원하게 바닷바람 맞으면서 보트를 타는 것 자체가 산에만 너무 오래 있던 내게 약간의 해방감 같은 것을 주었나 보다. 바예스타섬 행 보트에서는 가이드가 영어로도 열정적인 설명을 해주지만 맨 뒤 엔진 앞에 앉았던 내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하나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 지역도 아타카마라고 한다. 사람들은 아타카마가 칠레에만 있는 줄 아는데 사실 칠레와 페루의 해안 사막지형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고 차가운 해류덕에 늘 건조한 날씨가 유지된다고 한다. 실제로 이 지역에 내린 비는 1998년이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날씨가 이렇게 흐린데 역시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나름 길었지만 짧게만 느껴졌던 보트투어가 끝난 후 근처 국립공원으로 향해 붉은 해변을 구경한다. 해가 나오면 훨씬 붉은색이 되어 멋지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구름이 많이 낀 날씨였다. 그래도 선명하게 들리는 파도소리가 너무 좋았고 야생 펠리컨과 플라밍고도 볼 수 있었다.


점심을 위해 들린 국립공원 내 식당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지금까지 최고가 메뉴를 먹었다. 해물튀김이었는데 음료수와 함께 55솔이라는 사악한 가격을 자랑했다. 이것도 짰다. 무지막지하게 짰다. 옆에서 같이 다니던 페루인 여행객이 가이드에게 같이 먹자고 계속 부르는데 가이드는 끝까지 오지 않았다. 나 같아도 여기서 안 먹는다.


투어에서 복귀해 호스텔에 가서 짐을 찾고 뻔뻔하게 거실에 앉아서 남겼던 피자까지 데워먹으며 버스시간을 기다렸다. 밤에 와카치나에서 이카로 이동하려니 모토택시도 몇 대 서 있지 않아서 험난한 흥정이 될 것을 직감했다. 처음부터 10솔을 부르더니 내가 이틀 전에 8에 왔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실패하고 10에 가기로 했다. 가면서 모토택시 기사와 스몰토크를 하는데 본인은 22살이고 4년 전에 베네수엘라에서 여기로 일하러 왔으며 고국에 아이가 2명이나 있다고 한다. 아마 경제위기가 시작되고 넘어온 듯한데 나중에는 꼭 베네수엘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슬픈 이야기다. 10솔 비싼 건 맞는데 괜히 깎으려고 했던 나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나한텐 8솔이나 10솔이나 겨우 몇백 원 차이인데 그 친구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일 수 있어서 마음이 착잡했다. 그래도 이제 내 스페인어가 이 정도의 스몰토크는 가능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와카치나는 생각보다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리마에서 조금 일찍 출발해 첫날에 버기투어를 하고 둘째 날에 파라카스 투어 하면 딱 좋을 여행지인 것 같다. 나는 오랜만에 산에서 내려와 사막과 바다를 보니 신선해서 좋았다. 문제는 이 이후에 갈 곳이 마땅히 없기에 다시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페루 여행의 중심 쿠스코로 향한다.


여담으로 자꾸 글이 밀린다. 여행포스트 하나 작성하는데 2시간씩은 걸리고 [생각] 에세이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니 여행을 다니면서 글 쓰는 일도 쉽지 않다. 또 세 번째 [생각] 글이 교사, 경찰, 군인에 대한 좀 수위가 높은 비판적인 내용이었는데 최근에 벌어진 일들로 이 글을 계속 쓰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아마 결국은 포스팅하겠지만 아직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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