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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Jul 27. 2023

[세계여행] D+24 쿠스코

가성비 여행은 귀찮고 힘들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카에서 쿠스코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직선거리는 약 500km 밖에 되지 않지만 안데스 산맥을 타고 넘어가는 구간이라 도로 상태도 좋지 않고 속도도 나지 않는다. 출발은 밤 9시였고 도착 예정시각은 일단은 다음날 오후 1시였는데 정시도착에 대한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도 않았다. 남미 와서 한 가지 늘어가는 게 있다면 움직이는 차 안에서 자는 것이다. 워낙 도시 간 이동시간이 길다 보니 야간버스 좌석들이 편해서 그런지 걱정했던 것처럼 버스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은 없었다. 물론 버스 안에서 아무리 오래 잔다고 해도 다음날 엄청난 피로가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거의 출발하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도 뭔가 길이 심상치 않음은 느꼈다. 아침에 슬슬 잠이 깨 가면서 몸이 마치 놀이기구를 탄 듯이 계속 양쪽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산을 타는 도로이다 보니 몇 백 킬로미터동안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여행에서 버스 안에서 핸드폰을 봐도 딱히 차멀미가 없었는데 이번 버스는 정말 1분 이상 저장해 놓은 동영상을 볼 수조차 없었다. 낮이 되고서도 그냥 가만히 눈을 감고 나는 그냥 물 위에 떠다니는 해파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무념무상의 상태로 안 가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번 버스는 출발할 때 간식을 줬는데 처음에 쓸데없이 많이 준다고 생각했지만 다음날 아침,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도착하지 않는 버스를 보며 그제야 비로소 간식의 양을 이해했다. 막판에는 정말 지루하고 힘들어서 평소에는 아껴 쓰던 데이터로 인터넷 서핑이나 실컷 하면서 최후의 발악을 했다. 결국 버스는 20시간 만인 오후 5시에 쿠스코에 도착했다. 아마 승객도, 버스기사도 극한의 힘듦을 느꼈을 것이다. 쿠스코는 웬만하면 비행기 타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첫날 시내구경은 몸상태를 봐서도, 시간을 봐서도 불가능했기에 천천히 호스텔로 걸어가 체크인부터 했다. 가격도 하루에 미화 5달러밖에 되지 않았고 위치도 나쁘지 않았지만 숙소에서 대마초 냄새가 너무 났다. 거기에 더해 도미토리로 들어가니 웬 남미인 한 명이 스피커로 비트를 틀어놓고 랩을 하고 있었다.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대충 숙소 근처에서 기로스로 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와 잠에 들었다.


와카치나 숙소에서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서 쿠스코에 대한 조사를 거의 하지 못 한 채로 넘어왔다. 그래서 첫날에는 어차피 언젠가는 받아야 하는 볼리비아 입국 비자를 받고, 그 후 투어사들이나 돌아다니면서 마추픽추 가는 교통편을 예약할 계획을 세웠다. 도착한 날에 부랴부랴 후기들을 찾아가면서 비자에 필요한 서류를 업로드하고 다음날 아침에 서류들을 출력해 볼리비아 영사관으로 향했다. 볼리비아 영사관은 쿠스코 구시가지에서 도시 바깥쪽으로 조금 걸어 나가야 하는데 가는 길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먼저 관공서 밀집지역을 지나고, 그 후 근처에 면허시험장이 있는지 몇 블록동안 면허학원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역시 면허학원 앞에서는 활발한 호객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몇몇 분들은 나에게까지 호객행위를 했다. 그중 한 분은 처음에 진지하게 말을 걸다가 내가 피식 웃으니 본인도 어이가 없었는지 같이 웃어버렸다. 그다음은 대학교 앞을 지나 복사, 인쇄 가게들이 가득 들어서 있었고 마지막으로는 병원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지나가는데 이 나라는 병원에서까지 호객행위를 한다. 


비자 발급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영사관 앞에서 비자 발급을 기다리고 있던 한국분께 들으니 다른 사람들은 서류를 꽤나 꼼꼼히 검토하고 다시 준비해 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는데 내 서류는 하자가 없었는지 그냥 제출하자마자 통과되었다. 근처 은행에서 비자 수수료를 내고 돌아와서 잠시 대기하니 발급이 완료되었다. 



숙소에서 쉬려다 정전 때문에 와이파이가 작동하지 않아서 그냥 도시를 돌아보기로 했다. 쿠스코는 단연 지금까지 이번 여행에서 들른 도시 중에서 가장 예쁜 도시이다. 시내의 건물들이 대부분 비슷하게 갈색 기와를 가지고 있고 새로 지어진 건물도 도시의 컨셉에 맞춰서 튀지 않게 지은 듯 한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다운로드 받아 놓은 공짜 가이드 앱을 틀어놓고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 역사에는 딱히 관심이 가지 않아 나중에는 좁은 골목들과 광장을 돌아다니며 그냥 도시 자체를 느꼈다.

 


어느 순간 중앙 광장으로 파란색 츄리닝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쏟아져 나와 그 방향으로 올라가 보니 학교가 있었다. 학교 뒤 골목으로 계속 올라가서 파란색 화분으로 장식된 길을 지나 올라가니 전망대가 나타났다. 사진으로는 잘 담기지 않지만 비슷한 형태의 건물들이 빽빽하게 평지를 지나 산 중턱까지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그 후에는 근처 스페인 식민지 시절 지어졌다는 수로를 구경하고 언덕을 내려와 그 유명하다는 12각 돌을 지났다. 사실 이런 유명한 포인트보다는 그냥 도시를 돌아다니며 마주하는 이름 모를 골목들의 모습이 훨씬 좋았다. 사실 날씨가 좋으니 어느 골목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보기 좋은 사진이 담긴다.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마추픽추를 어떻게 갈지 알아보려 투어사들을 돌아다녔다. 마추픽추를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1박 2일 일정으로 근처 마을까지 가는 버스를 예매하는 방법과 3박 4일 일정으로 이런저런 액티비티도 하고 트래킹도 하며 가는 잉카 정글 트레일을 하는 방법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여행사들을 들쑤시고 다니다 보니 그냥 마추픽추만을 위해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정글 트레일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가격도 교통, 가이드, 숙소, 마추픽추 입장권, 액티비티를 포함한 상태로 평균 200달러를 불러서 나쁘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냥 보이는 여행사는 거의 다 들어가다 보니 185달러까지 가격이 내려갔고 한 군데만 더 보자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호객에 이끌려 마지막 여행사로 들어갔다. 직원이 자기들 투어가 얼마나 믿을만하고 값어치가 있는지 굉장히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와라즈에서도 그랬고 여기에서도 사실 투어는 여행사들이 직접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여행사들이 묶어서 하청을 주기 때문에 별 의미 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가격이 가장 중요했다. 여기도 역시 처음에는 아주 좋은 가격이라며 200달러를 불렀지만 이미 훨씬 낮은 가격을 보고 온 터라 그냥 가만히 앉아서 가격이 내려가기를 기다렸다. 조금 지나니 알아서 190달러를 부르기에 그냥 여기서 계약하기로 했다. 영수증도 다 썼는데 다른 직원이 190은 너무 적다며 나를 상대한 직원과 언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상당히 뿌듯했다.


달러를 가지러 숙소에 갔다 오니 갑자기 무슨 문제가 생겼다며 값을 더 받지는 않을 테니 마추픽추 마을에서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를 제외해야겠다고 했다. 이미 영수증까지 다 작성한 상태에서 말을 바꾸니 상당히 기분이 나빴지만 시간도 늦었고 귀찮아서 그냥 그러자고 했다. 실제 당일에는 버스를 타지 않고 동행들과 걸어 올라가서 따지고 보면 그냥 불필요한 옵션을 제외한 꼴이었고 버스를 빼도 190은 싼 가격은 맞았지만 이런 식으로 말을 바꾸니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투어를 예약한 후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파스타와 고기가 같이 나오는 메뉴를 시키려고 보니 밖에 간판에서는 10솔이었던 메뉴가 메뉴판에서는 15솔이었다. 직원에게 차이가 뭐냐고 물으니 양이 차이가 난다고 했다. 배가 고팠기에 그냥 15솔짜리를 시켰다. 주문을 받고 직원이 뭐라고 했는데 못 알아들어서 그냥 알았다고 하고 보냈는데 나중에 벽에 붙어있는 안내를 보니 직접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지 않으면 서비스 비용이 붙는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영수증을 보니 실제로 서비스 비용 3솔이 붙었는데 그 와중에 시켜 먹은 콜라는 또 영수증에 없었다. 메뉴에 음료가 원래 포함일리는 없는데 직원의 실수인 것 같았다. 투어도 그렇고 식당에서도 그렇고 돈 아끼며 하는 여행은 참 귀찮고 힘들고 맘대로 되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길 맞은편에서 누가 봐도 한국사람이 걸어오길래 유심히 봤더니 내가 평소에 보던 여행유튜버였다. 그렇게 유명한 유튜버는 아니었기에 내가 영상 봤다고 하니 자기를 봤냐고 하며 놀란 모습이었다. 뭐 딱히 할 말도 없고 불편하실까봐 여행 잘하시라고 하며 보내드렸다. 뭔가 많은 일들이 휙휙 지나가는 이상한 하루였다.


다음 날에는 아침부터 숙소를 옮겼다. 전 숙소가 가격도 싸고 이불도 두꺼워서 나쁘지 않았지만 대마초 냄새가 너무 났고 가뜩이나 추운 쿠스코인데 화장실이 건물 밖에 있어서 불편했기에 같은 가격대에 위치가 좀 더 좋은 숙소를 당일 아침에 예약했다. 체크인 후 숙소 바로 옆에 시장이 있어 밥을 먹었다.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교복을 입고 그대로 와서 장사하는 부모님을 도와드리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이 날은 투어 전 날이라 딱히 일정을 생각하지 않아서 그냥 골목, 광장, 전망대를 돌며 앉아서 멍하니 있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시간을 보냈다. 물론 여행이 점점 길어지고 장거리 버스 이동의 여파로 체력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앉아 있는데 학생 하나가 쿠스코의 관광에 대한 숙제를 한다고 인터뷰를 따도 되냐기에 그러라고 했다. 쿠스코에서 로컬을 만난 적이 있는지, 뭐 할 계획인지, 역사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봤는데 아는 게 거의 없어서 좋은 대답은 못 해준 것 같다. 저녁때는 투어사에서 간단한 일정 설명을 듣고 다시 전망대로 올라가 야경을 구경했다. 밤거리도 지금까지 다녔던 도시 중 가장 예뻤고 밤에 도시 전경을 본 것도 처음이라 날이 좀 추웠는데도 전망대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숙소 옆 햄버거집에서 기대도 안 했던 맛있는 햄버거를 먹고 숙소로 돌아와 마추픽추로 갈 짐을 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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