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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Aug 22. 2023

[세계여행] D+47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

물가지옥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갇히다

우유니 투어차량은 우리를 국경에 내려줬고 형식적인 볼리비아 출국심사를 마친 뒤 칠레 쪽 버스로 갈아탔다. 세관 및 입국심사대까지 5분여의 짧은 거리를 달려가는데 국경을 넘자마자 볼리비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던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근데 버스는 포장도로를 놔두고 굳이 옆 흙길로 달려간다. 칠레 국경은 짐검사를 엄격하게 하기로 유명하다. 인접국이 세계 최대 마약 생산지인 볼리비아와 페루이다 보니 특히 식물류 반입에 민감하다. 여행사, 투어가이드, 칠레 버스기사까지 계속 강조한 사항이다. 또 칠레 국경에서는 짐도 일일이 까뒤집으며 검사한다는 후기가 많았다. 그런데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버스기사가 건물 안에 들어갔다 오더니 좋은 소식이 있다며 새로 엑스레이 검사대가 설치되어 수작업으로 까뒤집는 검사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긴 검문소 직원들도 무지하게 귀찮았을 거다. 덕분에 입국심사와 짐검사 모두 순식간에 끝났다.


칠레로 공식적으로 넘어오자마자 버스기사가 칠레에 온 걸 환영한다며 모두 안전벨트를 매달라고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모르겠지만 칠레에서는 전좌석 안전벨트가 의무라고 한다. 선진국의 향기가 물씬 난다. 또 다른 점은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와는 달리 공중화장실 이용료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화장실 이용료는 대부분 500원 이하로 사실 얼마 안 되는 푼돈이지만 늘 동전을 어느 정도 준비해야 해서 상당히 귀찮은 상황을 유발했었다. 입장료를 받는 국립공원이나 관광지 내의 화장실에서도 꼬박꼬박 이용료를 받았고 우유니같이 유명하고 사람 많은 곳은 이용료가 다른 곳의 2-3배였다. 이것 때문에 짜증 내는 여행자들도 상당히 많았다. 내 기억으로 칠레에서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아타카마 사막 관광의 거점이 되는 마을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까지는 약 40분을 더 가야 하는데 국경을 넘은 순간부터 내리막이 계속된다. 4000미터 정도의 고원에서 2700미터까지 내려오며 기온도 많이 올라간다. 산 페드로는 사막이라 밤에는 쌀쌀하지만 낮에는 25도까지 올라가는 따뜻한 날씨다. 우유니에서 추위에 시달리며 따뜻한 곳으로 도망치기만을 바랐던 나에게는 날씨에 있어서만큼은 딱 맞는 곳인 듯했다. 마을에 내리니 볼리비아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흙바닥 위에 1층짜리 낮은 건물들이 쭉 이어지는 모습은 마치 아프리카 어딘가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일단 환전을 하고 동행분들과는 나중에 저녁을 먹기로 하고 헤어졌다. 산페드로는 호스텔 숙소비가 전체적으로 볼리비아보다는 1박에 3-4달러 정도씩 비쌌는데 그나마 외곽에 제일 싼 곳으로 예약했다. 그런데 마을이 워낙 작다 보니 외곽이라고 해봐야 시내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호스텔에 체크인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공용공간에서 핸드폰이나 하다 주인이 도착해서 체크인을 했다. 특이하게 주인 사무실로 들어가서 체크인을 하는데 젊은 남자가 곱슬머리, 선글라스,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굉장히 친절하게 말하는 게 누가 봐도 사기꾼 느낌이었다. 본인이 직접 진행하는 투어도 설명해 줬는데 밤에 별 보는 투어를 소개하면서는 코로나 때 정부 지원으로 망원경을 공짜로 받았다고 자랑했다. 뭐 결론적으로 사기꾼은 아니었지만 여러모로 정말 특이한 사람은 맞았다.


볼리비아 들어오고 나서는 나름 계속 강행군이었던지라 이틀 정도는 밀린 여행기도 쓸 겸 쉬기로 결정했다. 누워서 뒹굴대다 저녁약속 조금 전에 마을구경이나 할 겸 밖으로 나갔다. 15분이면 다 돌아보는 마을을 걸어 다니다 홍콩 친구를 만나 자기는 저녁을 먹을 거라길래 옆에서 망고주스나 시켜놓고 얘기하는데 3500페소라는 사악한 가격에도 감동적인 양과 맛이었다. 그 후 동행분들과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도 휴식일로 정해서 일어나 밥 먹을 때 잠깐씩 나간 걸 제외하고는 숙소에서 보냈다. 그 와중에 시내 어디서나 보이는 리칸카부르 화산은 볼 때마다 절경이다. 점심때 여행기를 쓰고 있는데 라파즈에서 워킹투어를 같이 했던 영국 친구가 같은 숙소에 있어 떠들고 다음날 같이 달의 계곡으로 자전거를 빌려 가기로 했다. 호스텔을 연장하려고 물어보니 하루만 가능하고 그 이후로는 풀부킹이라 불가능하다고 했다. 조금 더 비싸고 시내에서 더 먼 다른 호스텔을 알아보고 여기서는 다음날 밤에 별 보는 투어를 예약했다. 이 날이 지나면 남쪽으로 내려가시는 한국 부부분과는 여행 동선이 한동안 달라서 마지막으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식당에서 모둠 고기구이 요리를 시켰는데 동양인 셋이 먹기는 양이 너무 많아서 남은 고기를 다 싸왔다. 칠레는 나름 선진국이라고 외식물가가 지금까지 여행했던 나라에 비해 최소 두세 배는 되는데 이때 포장해 온 고기로 매 끼니 파스타를 해 먹으며 물가지옥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동행분들과는 같이 대여섯 번 식사를 했는데 너무 편하게 해 주셔서 같이 재미있는 얘기도 많이 하고, 또 만날 때마다 식사를 사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덕분에 최저가 로컬 식당만 돌다가 여러 차례 팔자에도 없는 좋은 식당에서도 밥을 먹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나보다도 훨씬 열정적으로,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여행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영국 친구를 비롯해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과 철학 얘기를 하며 밤늦게까지 떠들었다. 프랑스에서 정치철학을 공부하는 독일 친구가 프랑스 철학 특유의 형이상학적인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해 대는 터에 유물론자인 나와는 의견이 많이 갈렸다. 특히 또 경제와 환경문제를 이야기하며 탈성장 얘기를 하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탈성장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많다고 본다. 이 내용은 언젠가 따로 에세이로 엮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관점과 접근방식이 아예 달라서 라파즈에서처럼 엄청 재밌는 논쟁으로 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가끔씩 이런 얘기를 하며 떠드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쉴 만큼 쉬었으니 3일 차에는 다시 여행자 모드로 들어섰다. 아타카마 하면 가장 유명한 달의 계곡을 가기로 했는데 여행사를 통한 투어는 이제 지긋지긋해서 자전거를 빌려서 가기로 했다. 남미여행의 최대 단점은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는 여행지가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투어를 이용해야 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기 위해 신청하는 도시 워킹투어 같으면 그 필요성을 느끼겠지만 교통수단을 위한 투어는 이제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디선가 자전거로 입장은 오후 1시 전에만 가능하다는 글을 읽어서 10시쯤 슬슬 나가서 자전거를 빌리고 간식도 사서 달의 계곡으로 향했다. 구글지도가 뱉어내는 길을 따라 가는데 비포장 모래길이라 도저히 자전거로 지나갈 수가 없어서 인접한 도로까지 끌고 가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그래도 도로는 얕은 내리막이라 오랜만에 라이딩을 즐겼고 달의 계곡 입장료 판매소에 도착했을 때는 11시 15분이었다. 그런데 매표소로 들어가니 직원이 자전거 입장은 11시까지만 가능하다며 못 들어간다고 퇴짜를 놓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후가 되면 투어차량이 많이 몰려와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뭐 제대로 안 알아보고 온 내 잘못이다. 그 와중에 아타카마에서 자전거 많이 타겠다고 악마의 목구멍이라 불리는 지형으로 가는 다른 루트를 알아놓은 건 있어서 영국 친구와 그쪽으로 선회하기로 했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 흙길에 중간중간에 오르막도 있고 개울도 건너는 등 자전거로 가기에 그렇게 좋은 길은 아니었다. 길이 울퉁불퉁한 탓에 어느 순간부터는 엉덩이뼈가 많이 아팠고 체력도 많이 소진되었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 한 시간여를 더 달려 도착한 악마의 목구멍은 추측건대 많은 곳에서 봤듯이 바닷속에서 형성된 협곡이 육지로 솟아오른 지형인 듯했다. 엄청난 절경은 아니어도 충분히 감탄이 나오는 곳이었다. 자전거로도 들어갈 수 있는데 둘 다 힘들어서 그냥 입구에서부터 걸어 들어갔다.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아서 20분 정도 걸으니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사실 내내 영국 친구와 정치얘기로 떠드느라 풍경이 그렇게까지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는 붙잡혀서 방송국인지 유튜브인지 모를 인터뷰를 당했고 나는 눈치 보고 쓱 빠졌다.



악마의 목구멍에서 북쪽으로 더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둘 다 비포장도로에 지쳐서 마을로 돌아가기로 하고 중간에 있는 전망대가 있는 푸카라라는 곳에 들르기로 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며 나이를 적는데 영국 친구가 스무 살이라 좀 충격이었다. 뭐 나도 아직 스물다섯이라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스물이라는 나이와 그렇게 일찍 먼 곳에서 혼자 여행하며 돌아다니는 게 부러웠다. 이럴 때마다 군대에 내다 버린 시간이 아까워진다. 아직 대학교에 정식 입학도 안 한 이 친구는 입학예정서를 보여주고 학생요금으로 할인을 받았는데 그다음으로 표를 산 나는 같이 학교를 다니는 친구라 생각했는지 학생증을 보여달라고 묻지도 않고 학생요금으로 계산해 주었다. 당연히 굳이 학생 아니라고 얘기 안 하고 날름 받아먹었다. 푸카라는 몇백 년 전 지어졌을 마을의 흔적도 있는데 지금은 보수공사로 인해 닫혀있었서 곧바로 전망대로 향했다. 매표소 직원이 40분 정도 올라간다고 했는데 들을 때는 둘 다 당연히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경사는 그다지 심하지 않지만 올라가는 길이 꽤 길어서 정말 그 정도 걸린 것 같다. 위에서 보는 아타카마 사막의 경치는 대단했다. 한쪽으로는 우리가 악마의 목구멍이 있던 협곡지형이 보였다. 강을 따라가다 보면 산페드로 마을 쪽에는 사막에서 유일하게 나무가 밀집되어 있으면서 멀리 뒤에는 수많은 화산들이 펼쳐졌다. 그리고 반대쪽으로는 무슨 이유인지 지금은 탐방이 제한되어 있는 화성계곡과 죽음의 계곡이 보였다. 다양한 지형을 감상하다 마을로 돌아오는데 마지막에는 지긋지긋한 비포장도로 때문에 체력이 다 떨어지고 엉덩이뼈가 너무 아팠다. 마을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그제 먹었던 망고주스를 다시 먹으러 갔다. 너무 맛있어서 밥집에 두 번 찾아가서 밥은 한 번도 안 먹고 주스만 두 번 마셨다.



밤에는 예약해 놨던 별 투어에 참여했다. 이 날이 유성우가 많이 떨어지기로 예정되어 있는 날이라 호스텔 자체 투어인데도 거의 20명 정도가 같이 갔던 것 같다. 아타카마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곳인 만큼 빛의 산란이 적어 별이 잘 보이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정말 많은 별들과 은하수까지 보였지만 솔직히 사방이 탁 트인 우유니에서의 첫 경험의 임팩트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 날 투어의 다른 점이라면 작긴 했지만 망원경이 있었다는 점이다. 망원경으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알파 센타우리, 성단, 토성등을 관찰했는데 개인용 망원경인 만큼 엄청나게 잘 보이는 건 아니지만 나름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다만 그룹이 너무 커서 모두가 한 번씩 보고 카메라로 기념사진까지 남기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 시간 동안 기다리기에 사막의 밤은 너무 추웠다. 발부터 얼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몸이 덜덜 떨릴 정도가 되었는데 다들 추워서 기념사진도 대충 찍고 차로 도망갔다. 그래도 나중에 받아본 사진들은 나름 괜찮았다. 특히 우유니에서는 없던 나나 다른 사람 없이 밤하늘만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산페드로에서 4일 차에는 호스텔을 옮기는 김에 쉬면서 남은 기간 참가할 투어를 알아보았다. 여기서 총 7일을 머물렀는데 원래 이럴 계획은 아니었다. 아타카마까지만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근처 칼라마 공항보다 조금 떨어진 안토파가스타라는 곳에서 콜롬비아로 가는 비행기가 훨씬 저렴해서 그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런데 나중에 안토파가스타에 대해 알아보니 비싼 칠레에서도 특히 비싼 도시로 유명했고, 숙소를 알아보니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여행지가 아니라 저가 호스텔이 없어 가장 싼 방이 1박에 30달러에 육박했다. 도저히 이 도시에서는 비행 전 1박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 근처 다른 도시로 이동하려고 해도 근처에 정말 여행할만한 도시가 전무했다. 조금 멀리 떨어진 아르헨티나 살타로 버스를 타고 가거나 산티아고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짧게 여행하는 방법도 생각했는데 비용이나 일정상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볼리비아에서 최대한 오래 버티다 내려오는 것이었을 텐데 동행분들과 우유니 일정을 맞추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어차피 칠레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안 해 놨던 터라 가면 근처에 뭐라도 있겠지 하고 실제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결국 체감상 볼리비아 물가의 3배는 되는 것 같은 산페드로에 일주일 동안 꼼짝없이 갇히게 되었다.


옮긴 호스텔은 기존 호스텔보다 마을 중심에서 조금 더 떨어진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있었는데 보통 20대 여행자들이 가득한 일반적인 호스텔과는 달리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가득했다. 아마 이 기간이 칠레 연휴 기간이라 가족단위 현지인 여행객이 많았던 게 이유인 것 같다. 남은 기간 무슨 투어를 할지 고민하다 우유니에서 본 풍경과 비슷한 투어를 제외하다 보니 6일 차에 cerro toco라는 화산 등반, 안토파가스타로 이동하는 7일 차 오전에 간헐천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어찌 됐든 산페드로에 갇힌 나는 남는 게 시간이라 역시 또 시내 여행사들을 다 돌며 가격을 비교했고 가장 괜찮은 가격을 제시한 여행사에서 두 가지 투어를 합쳐 약 15만 원에 결재했다. 정말 지금까지 여행했던 다른 곳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높은 가격이지만 여기 시세가 그런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당연히 들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돈 아끼겠다고 대중교통이나 택시 대신 걸어 다니고, 현지인 식당과 최저가 호스텔만 돌았던 게 비싼 나라 한번 오니 순식간에 털린다고 생각이 들어서 찝찝한 마음으로 투어비를 결재했다. 아끼면서 하는 여행에 피로감이 느껴져 8000원 하는 세 스쿱짜리 아이스크림을 두 번이나 충동구매해서 먹었다. 그 정도로 먹으니 배가 불러서 저녁을 건너뛰었지만 어쨌든 싼 나라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비싼 나라 와서 충동구매하는 머저리 같은 짓을 한 꼴이다. 착잡한 마음으로 칠레 일정의 절반이 마무리되었다. 나머지 4일 동안은 다시 힘을 내 휴식일 없이 열심히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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