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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Aug 23. 2023

[세계여행] D+51 아타카마, 안토파가스타

자연이 만든 지질학 박물관

칠레 아타카마에서 5일 차가 되었다. 원래 영국 친구와 저번에 실패한 달의 계곡을 다시 시도하려고 했으나 그 친구는 전 날 화산투어의 여파로 너무 피곤하다고 해서 혼자 가게 되었다. 시내에서 자전거를 빌리는데 직원이 내 여권 국적란을 이름칸으로 잘못 봐서 졸지에 이름이 축구선수도 아니고 조 콜(cho kor)이 되었다. 어차피 나한테는 아무 상관없는 자기들 서류에 그렇게 적은 거라서 귀찮게 따로 고치지 않고 놔뒀다. 간식까지 충분히 사고 달의 계곡으로 향하는데 이틀 전 비포장도로의 여파로 페달을 밟을 때마다 엉덩이뼈가 아팠다. 그래도 달의 계곡 입장권을 파는 곳 까지는 포장도로라 어느 정도는 견딜만했지만 그 이후 비포장도로에서는 참고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 



달의 계곡은 곳곳에 특이한 지형들이 가득했다. 입구부터 오른쪽으로 돌산이 계속되고 조금 들어가다 보면 사구, 퇴적암 지형, 다양한 모양의 돌산, 소금밭,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기암괴석 등 비교적 좁은 지역 안에 다양한 지형이 이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걷는 길이 오르막, 내리막도 많고 상당히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라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좋았던 점은 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 잠시 자전거를 세우면 완벽한 고요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약 4시간 정도 달의 계곡 곳곳을 돌아다닌 후 마을로 돌아오는 길은 경사는 급하지 않지만 오르막이 계속되는 지형으로 막판에는 체력이 다 떨어져 꽤 오랫동안 자전거를 끌고 와야 했다. 그래도 마을로 쭉 펼쳐진 길 뒤로 보이는 화산은 정말 아름다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과일가게에서 파인애플을 샀다. 당장 오늘 먹어야 하는데 완전히 익은 과일은 없는 것 같아서 그나마 가장 색깔이 노란 녀석으로 골랐다. 그런데 귀가하는 길에 들른 집 앞 슈퍼에는 익은 파인애플들이 쭉 깔려있었다. 어쨌거나 저녁으로 몇 끼째 해 먹고 있는 파스타와 함께 파인애플을 까서 먹었는데 가뜩이나 조금 덜 익은 상태에서 거의 반 통을 먹으니 혀가 얼얼해지며 막판에는 피맛까지 났다.


다음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예약해 놓은 Cerro Toco 화산 트래킹 픽업을 기다렸다. 출발하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빵에 남은 고기와 잘라놓은 파인애플을 껴 먹었다. 혀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많은 파인애플을 먹으니 당연히 많이 따가웠다. Cerro Toco 화산 트래킹은 비교적 무난한 난이도를 갖고 있다. 굉장히 오래전부터 활동을 하지 않은 화산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흔한 분화구는 없지만 정상에서 다른 화산들과 고원 지형을 감상할 수 있다기에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3000미터 이하인 산페드로에서 꽤 오래 지내다 5000미터 이상으로 갑자기 올라가려니 조금은 걱정도 되었지만 비니쿤카에서 고산병 약의 이뇨작용으로 고생했던 기억이 너무 강렬해 약은 먹지 않았다. 트래킹 시작 지점에 도착해서 가이드에게 주의사항을 듣고 올라가는데 트래킹 폴까지 받은 상태에서 할아버지 산보하는 속도로 올라갔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투어 그룹이 비슷하게 굉장히 느린 속도로 전진했다. 아무리 고산이고 경사도 꽤 급하다지만 너무 느리게 가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가다 보니 금방 숨이 차며 힘들어졌다. 그래도 다른 심각한 고산병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의외로 가장 고생스러웠던 건 추위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해서 가용 가능한 옷은 모두 껴 입었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어 얼굴이 많이 시렸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5000미터 이상이라 온도도 낮아 등산로 주변으로는 얼음이 얼어있거나 눈이 쌓여있는 곳도 많았다. 올라갈 때는 힘들어서 쉬고 싶어 지지만 막상 서 있으면 너무 추워서 걷고 싶어졌다. 



약 두 시간여를 걸으며 정상에 올라가니 우유니 투어 마지막 날에 지나온 Laguna Blanca와 리칸카부르 화산, 그리고 볼리비아 쪽 고원 지형이 한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평화로운 풍경이다. 반대의 아타카마 사막 쪽을 바라보면 평야에 하얀 물체들이 흩어져 있는데 전파망원경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유럽연합이나 일본 대학교들에서 만들어 놓은 천문대들도 많이 보였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비니쿤카보다도 훨씬 추웠는데 산 정상의 돌 뒤에서 바람을 피하고 간식을 먹으며 풍경을 바라보니 올라온 보람이 느껴졌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원래는 투어 그룹이 하나 정도밖에는 없다고 하는데 이 날따라 관광객이 유난히 많았다고 한다. 다른 그룹의 관광객 하나가 촬영을 위해 드론을 띄워 한참 동안 이리저리 날려대며 소음을 만들어 우리 가이드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풍경을 망친다며 짜증을 냈다. 실제로 사람들이 정상에서 드론을 날리기 시작한 이후로 이곳에 서식하던 새들이 떠났다고 한다.


30분 정도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고 모래길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올라가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우리가 천천히 폴대를 짚으며 내려오는 동안 가이드는 모래밭에서 스키 없이 스키를 타듯 미끄러지며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이번에 함께한 가이드는 굉장히 젠틀하고 프로페셔널했다. 아타카마 근방의 고산 트래킹 가이드를 전문적으로 한다는데 이 산을 비롯한 여러 화산들을 지금까지 몇백 번씩 올랐다고 한다. 지겨울 법도 한데 본인 직업을 정말 좋아하는 것이 느껴지고 투어 참가자들을 일일이 챙기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본인은 몸이 고산에 적응되어 버려서 저지대에 있다가 바로 다음 날에 고산을 올라가는 것도 무리가 없는데 오히려 저지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만 자게 된다고 한다. 1시간도 안 걸려 산에서 내려온 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산페드로 마을로 돌아왔다. 아마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 고산 트래킹일 Cerro Toco 트래킹은 엄청나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고도와 추위로 인해 마냥 쉽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위에서 보는 풍경이 너무 좋았던 것과는 별개로 여기 하나 오는데 10만 원이라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돈이면 비니쿤카를 세 번 갈 수 있는 비용이다. 마을로 돌아와 다음 날 이동할 버스표를 사고 터미널 앞에서 콤플레토를 사 먹었다. 콤플레토는 칠레에서 핫도그를 부르는 이름으로 이름이 다르니 맛도 뭔가 다를까 궁금했는데 그냥 핫도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산페드로에서의 마지막 날은 오전에 반나절짜리 간헐천 투어를 진행하고 오후에 안토파가스타로 넘어가는 일정을 계획했다. 아침 4시 반 픽업이라 일찍 일어나 짐을 다 챙겨 기다리는데 한 시간을 기다려도 픽업이 오지 않았다. 쿠스코에서 성스러운 계곡 투어 픽업이 오지 않은 것이 떠올라 또 버려졌나 생각했는데 5시 반이 되어서야 차량이 도착했다. 늦게 올 거면 일찍 깨우지를 말던가 이놈의 남미는 시간약속을 지키는 법이 없다. 한 시간이 조금 넘게 달려 El Tatio 간헐천에 도착했다. 이곳은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다른 한 곳에 이어 세 번째로 넓은 간헐천 지대라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넓지는 않았다. 오늘 역시도 나름 고지대에 아침 일찍이라 무지하게 추웠다. 영하 2~3도 되는 날씨였는데 가이드가 이 정도면 그래도 양호하다며 2주 전에는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간헐천은 우유니 투어에서 봤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 물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조금이나마 보여서 신기했다. 지표면 아래 큰 호수같이 존재하는 물이 주변 화산 마그마의 열기에 의해 끓고 압력에 의해 지표면으로 솟는 것이라고 했다. 간헐천 주변 곳곳에 색깔이 있는 흙이 보이는데 이는 박테리아가 내는 색이고 이들은 황을 산소로 분해하는 능력이 있어서 과학자들이 많이 연구하는 종이라고 한다. 20분 정도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화산 뒤로 해가 떠올랐고 금방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간헐천 사이로 뜬금없이 위치한 기계가 하나 보여 무엇인지 물어보니 민간기업에서 불법으로 지열발전을 하려고 정부의 허가 없이 만든 기계라고 한다. 곧 철거 예정이라고는 하는데 칠레도 다른 남미 국가들보다는 덜 하지만 부패한 시스템이라 이런 일이 흔하다고 했다. 남미 투어는 가이드들의 자조적인 자국 디스가 빠지지 않는다. 


실제로 간헐천을 둘러본 시간은 40분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고 사이즈가 그다지 크지 않아 사실 더 볼만한 것도 없었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가이드가 싸 온 아침을 먹고 산페드로로 돌아가는 길에 호수 몇 곳과 마추카라는 이름의 로컬 마을에 정차했다. 호수들은 나름 예뻤는데 이미 볼리비아에서 멋진 풍경을 너무 많이 봤고 마을은 투어 정차 마을이 늘 그렇듯 기념품과 간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들를 곳을 다 들르고도 예정 시간보다 훨씬 빠른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산페드로로 돌아왔다. 전체적인 투어의 느낌은 어제 투어와 비슷했다. 신기하긴 한데 이게 입장료 포함 7만 원짜리 투어라니 극악의 가성비다. 


산페드로에서 마지막 점심을 먹고 1시 버스로 인접도시 칼라마로 이동했다. 안토파가스타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다른 터미널로 도보이동을 하고 차표를 구입했다. 전에 앱으로 봤을 때 있었던 표가 칼라마에서 다시 확인했을 때 없어져서 살짝 걱정을 했지만 창구에서 5분 후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살 수 있었다. 4시간여를 사막을 가로질러 버스는 안토파가스타에 도착했다. 도시 앞으로는 바닷가가, 뒤로는 돌산으로 이루어진 산맥이 자리해 있었고 해가 수평선으로 막 넘어갈 때 들어선 터라 뭔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름 선진국이라고 안토파가스타에서는 시내버스 노선이 구글지도에 뜬다. 첫 여행지였던 키토 이후로 처음이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이동하는 버스는 바닷가 도시라 그런지 기사님 운전이 상당히 거칠었다. 시내구경을 할 시간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바로 숙소로 향했다. 대안이 없어 지금까지 최고가인 1박에 30달러짜리 싱글룸 체크인을 하고 튀긴 엠빠나다로 저녁을 해결했다.



다음날 아침 콜롬비아 칼리로 향하는 9시 50분 비행기를 탑승해야 했고 안내 이메일에 국제선은 출발 3시간 전까지 공항에 도착하라고 쓰여 있었는데 대충 가도 별 문제없겠지 생각하고 7시부터 여유롭게 호텔에서 조식을 먹었다. 그래도 바닷가 도시에 왔는데 가기 전에 바다는 가야겠지 싶어서 짐을 챙겨 빠르게 바닷가 산책을 했다. 안토파가스타가 칠레인들 사이에서는 못생긴 도시로 유명하고 치안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데 이른 아침이라 나에게는 조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져 나쁘지 않았다. 7시 50분까지 여유를 부리다가 우버를 잡아 타려고 하는데 다른 데서는 잘 되던 연동된 하나은행 카드가 계속 결제를 거부했다. 약간은 당황했지만 금세 페이팔로 우회해서 우버를 부를 수 있었다. 생각보다 해안도로는 정체가 있었고 비행 1시간 10분 전인 8시 40분에 공항에 도착했다. 사실 이때도 약간은 초조했지만 별 걱정은 안 되었다. 원래 시간강박이 좀 있었는데 이번 여행을 워낙 무계획으로 다니고 시간개념 없는 남미에서 오래 있다 보니 그냥 대충 정시 조금 전에만 도착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나 보다. 카운터에 가서 짐을 맡기려고 하니 시간이 없다며 빨리 하라고, 국제선은 3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고 한 소리를 들었다. 예전 같으면 많이 민망했을 텐데 이제는 아무 생각도 없다. 안토파가스타 공항은 국내선 게이트 3개, 국제선 게이트가 1개밖에 없을 정도로 작은 데다가 늦게 와서 줄도 한 번도 서지 않아서 카운터부터 출국심사, 게이트까지 5분 만에 뚫을 수 있었다. 비상금으로 남겨놨던 15000페소는 음료수를 사 먹고도 13000페소가 남아서 끝까지 사용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마지막 날에 현금을 다 쓰고 우버는 카드결제, 비상금은 소지하지 않는 쪽으로 해야겠다.


이렇게 8일간의 칠레 여행이 끝났다. 칠레여행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게 아타카마에서만 7일, 나머지 1일은 이동일정이라 도시 하나 본 게 전부다. 남북으로 너무 길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에 너무 힘든 나라기도 하고 가 보고 싶었던 남쪽 파타고니아는 지금 한겨울이라 애초에 계획에서 제외했다. 남미치고는 극악의 물가라 타격이 컸지만 돈만 많으면 훨씬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돈이 없는 나는 그냥 그랬다. 다음 여행지는 콜롬비아인데 별로 관심 없는 나라지만 런던에서 공부할 때 친구가 살고 있어 일정에 넣었다. 근데 이 친구가 지금 미국에 가서 내가 멕시코로 떠나는 다음 날 콜롬비아로 돌아온다고 한다. 이럴 거면 건너뛰고 멕시코나 과테말라로 갔지. 그래도 콜롬비아는 남미에서 물가가 가장 싼 편에 속하고 여기저기서 만난 여행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너무 좋다고 칭찬하니 입국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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