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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Aug 26. 2023

[세계여행] D+53 칼리, 살렌토

알록달록 노잼 콜롬비아

나는 비행기를 타면 밖을 보기 위해 가능하면 창가 쪽을 선택하는 편이지만 이번 칼리행 비행기는 저가항공이라 추가요금을 내지 않으면 랜덤으로 자리배정이 되는 탓에 복도도 창가도 아닌 중간좌석에 앉게 되었다. 남아메리카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는 노선이라 밖의 풍경을 보는 맛이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착륙 전에 비행기가 좀 흔들렸는데 주변에 비행기를 처음 타는 사람들인 건지 원래 리액션이 좋은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놀이기구 타는 소리를 냈다. 착륙 후에는 다 같이 박수까지 쳤다.


콜롬비아 입국심사는 입국 목적, 체류 기간도 묻지 않고 여권 도장만 찍어주고 끝났다. 2만 원 정도 남은 칠레 페소를 공항에서라도 환전하고 싶었는데 환율이 심하게 쓰레기라 아까워서 가지고 있다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달러환전도 하지 않고 당장 필요한 현금을 위해 atm을 이용했다. 후기들에서 해외카드 수수료가 없다는 두 은행 중 하나를 이용했는데 뭐가 바뀌었는지 10만 원도 안 뽑는데 수수료가 6천 원이 들었다. 그래도 공항 환전소보다는 선방했다.



공항 밖으로 나와서 느끼는 칼리의 첫 느낌은 후덥지근했다. 볼 것도 많이 없고 콜롬비아 안에서도 워낙 범죄율이 높기로 유명한 도시라 원래는 도착 당일 바로 살렌토로 넘어갈까도 생각했는데 유심도 사야 하고 이동시간이 애매할 것 같아서 1박은 하기로 결정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충분히 당일 이동도 가능했겠지만 하루동안 칼리를 돌아본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 터미널로 와서 곧바로 유심을 구입했다. 숙소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밥도 먹어야 하고 짧은 시간 시내 구경이나 할 겸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추운 나라에 계속 있다가 따뜻한 나라로 옮기니 좀 살 것 같았다. 숙소로 가는 길에 콜롬비아의 유명한 음식인 아레빠도 먹었다. 전에 런던에서 공부할 때 친구가 가져온 것을 잠깐 먹어본 이후로 처음이다. 뻣뻣한 옥수수빵 맛으로 나쁘지 않은데 그렇다고 소름 끼치게 맛있지도 않다. 이미 늦은 오후라 숙소에 서둘러 체크인을 마치고 해가 지기 전까지 도시를 구경했다. 숙소 뒤편은 나름 부촌의 느낌으로 가격대가 있어 보이는 식당, 카페, 옷가게들이 있었다. 시내같이 한 군데에 밀집되어 있는 느낌이 아니라 Frankfurt-West end 지역같이 여유 있는 주거지 사이에 상업시설이 들어선 느낌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칼리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 긍정적으로 놀라웠다.



계속 정처 없이 걷다 보니 현지인들만 있는 상업지구 쪽으로 들어섰다. 길거리 가판대에서 처음으로 망고를 사 먹었는데 익지도 않은 망고라 달지 않고 시기만 했다. 현지인이 많은 곳은 지금까지 남미 대도시들에서 그랬듯 조금은 정돈이 덜 되어있지만 사람 많고 활기차고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도시의 느낌이라 좋았다. 주스나 음식을 파는 가판대도 많았는데 곱창을 볶는 냄새에 홀려 저녁을 대신할 겸 1인분을 주문했다. 생각보다 양이 꽤 됐는데 너무 질기고 짜서 결국 먹다 포기했다. 워낙 치안이 안 좋기로 악명 높은 칼리기에 해가 지기 시작하니 빨리 숙소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를 보지 않고 현지인 구역을 돌아다니다 보니 봉고차나 미니버스 대신 지프차를 콜렉티보로 쓰는 새로운 모습이나 다리 위가 쓰레기와 노숙자로 가득한 조금은 무서운 구역도 보게 되었다. 급하게 지도를 확인하고 숙소 쪽으로 향해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는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몇 시간 보지 못했지만 칼리는 다른 남미 국가의 도시들에 비해서 훨씬 알록달록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범죄의 도시로 치부되기에는 아쉬운 면이 있는 것 같다. 그것과 별개로 칠레에 있다 넘어오니 물가가 다시 많이 떨어져서 만족스럽다. 뭔 짓을 해도 웬만해서 하루 생활비가 숙소, 교통, 식비 포함해서 4만 원 선에서 해결된다.



다음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살렌토로 향했다. 먼저 아르메니아라는 도시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출발시간이 따로 없는 걸 보니 그냥 서 있다 손님이 적당히 차면 출발하는 듯했다. 살렌토는 정말 작은 시골 마을이라 아르메니아에서 작은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짐을 놓을 곳이 없어 무릎 위에 주배낭과 작은 가방 모두를 얹고 힘들게 도착했다. 숙소 체크인 후 점심을 먹고 전망대에 올랐다. 나름 산동네라 마을 반대쪽으로는 안데스 계곡의 모습이 보였다. 하도 멋진 산을 많이 봐서 풍경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도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조용히 쉬러 오기 좋은 곳인 듯했다. 작지만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시내 쪽은 온통 식당과 기념품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살렌토는 거의 모든 집과 건물에 칼리보다 훨씬 더 알록달록하게 색칠이 되어 있었다. 나쁘진 않았지만 나는 도시를 좋아하는지라 마을이 너무 작고 조금은 재미없게 느껴졌다. 살렌토는 또 커피로 유명한 지역이라 시내에 있는 커피숍에서 평소에 잘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마셨다. 원래 아는 맛보다는 시면서 약간은 고소한 맛이 강했는데 커피를 모르니 이게 더 맛있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숙소로 돌아와 독일 친구들과 떠들다 같이 밖으로 나가 햄버거를 사 먹고 혼자 밤에도 활기찬 마을을 더 구경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너무나 작은 마을임에도 사람들이 살렌토에 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커피투어이고 두 번째는 특이한 야자수가 자라는 코코라밸리를 구경하기 위함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커피에는 관심이 없고 마추픽추 가는 길에 수제로 커피 만드는 과정을 대충은 체험해서 나는 코코라밸리만 다녀왔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집 앞에 있던 빵집에서 아침 겸 간식용으로 빵을 잔뜩 샀다. 콜롬비아는 남미뿐만 아니라 여행했던 모든 나라들 중에서 빵이 가장 맛있다. 식사 시에 탄수화물 섭취용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같이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빵이나 단 디저트 빵도 많다. 나는 특히 콜롬비아의 튀긴 빵류를 좋아하는데 이 날 아침에 샀던 튀긴 만두 같은 비주얼과 맛의 엠빠나다 종류와 테니스공만 한 사이즈의 치즈볼인 부뉴엘로가 너무 맛있어서 출발도 하기 전에 다 먹어버렸다.



코코라밸리로는 지프차 콜렉티보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한다. 여기도 도착하자마자 식당과 호객행위가 시작되는 완전 관광지라 에콰도르 킬로토아 트래킹 때 같이 조용하게 숲을 즐기는 분위기는 아닌 듯했다. 외국인, 현지인이 모두 많이 찾는 관광지인 것 같았다. 주차장을 벗어나자마자 산에 야자수가 수직으로 뻗어있는 특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사전에 대충 간단한 2시간짜리 코스와 숲에서 트래킹을 즐길 수 있는 5시간짜리 코스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온 터라 당연히 사람들이 많은 쪽이 간단한 코스라고 생각하고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섰다. 등산객과 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한 길로 같이 가고 매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라 말의 배설물과 진흙을 피해 걸어가는 것도 일이었다. 길 초입에 계곡을 건너야 했는데 별로 깊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건너다 시작하자마자 양말을 다 적셨다. 다 건넌 상태에서 보니 옆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나무다리가 있었다. 숲으로 들어갈수록 풍경은 사진에서 보던 모습과 달라졌지만 긴 코스라 가다 보면 야자수가 또 나오겠지 생각하며 진흙이 가득한 길을 걸었다. 들어갈수록 등산객은 줄어들고 길도 험해져 여기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영락없는 정글의 풍경이 펼쳐지고 언젠가부터 앞에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더니 한 그룹이 나에게도 코코라밸리 가는 길이 없으니 돌아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돌아가고 있는데 그 그룹이 말 3마리에 짐을 싣고 오는 현지인 한 분과 같이 다시 되돌아오고 있었다. 현지인 분께 물어보니 앞으로 가도 조금 험하기는 하지만 길이 있다길래 다시 가려던 길로 올라갔다. 얼마나 갔을까 지도상으로는 분명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 길인데 길이 닫힌 철문으로 막혀있었다. 마침 다른 투어그룹이 지나가서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그 길이 유일한 길이라 닫혀 있으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나와 같이 올라온 사람들은 길을 찾아보겠다며 왼쪽 길로 향하고 나는 빨리 포기하고 돌아왔다. 나중에 그 그룹도 같은 길로 돌아온 것 같으니 빨리 손절하길 잘했다. 시작점까지 되돌아와서 알고 보니 내가 들어갔던 길은 코코라밸리 트래킹 길이 아니라 옆의 다른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결국 다시 시작점에서 사람들이 많은 코스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여기가 내가 사진에서 보던 풍경이었다. 산의 느낌은 에콰도르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중간중간에 야자수가 있다는 게 특이한 딱 그 정도였다. 관광지 느낌으로 많이 꾸며놨고 포토스팟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어떤 블로그에서 누가 큰 양떼목장 느낌이라고 했는데 중간중간 라마나 소, 말 같은 동물들도 있고 관광객들이 넘치는 게 딱 그 모습이었다. 나는 그냥 그랬다. 전망대에서 좀 쉬다 지금이라도 트래킹 코스로 들어갈까 생각하다 풍경도 성에 차지 않는 데다 날씨도 안 좋고 슬슬 배도 고파질 것 같아 그냥 살렌토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을로 돌아와 점심으로 먹은 팟타이는 많이 별로였고 어제 들른 커피집에서 선물용 커피 한 봉지를 샀다. 숙소에서 조금 쉬다 저녁은 오랜만에 좋은 걸 먹어야겠다 싶어 15000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해 콜롬비아에서 유명한 송어요리를 먹었다. 맛은 나쁘지 않았는데 코파카바나에서의 송어가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칼리와 살렌토는 전체적으로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하고 예쁘긴 한데 딱히 재미는 없는 느낌이었다. 원래도 꼭 와 보고 싶은 여행지가 아니라 비행기 가격과 동선 때문에 선택한 곳이라 큰 기대도 없었다. 다음 행선지 메데진은 규모가 큰 도시이기도 하고 다녀간 여행자들 모두가 입을 모아 좋았다고 하는 곳이다. 여기는 원래부터도 여행영상을 통해 접하면서 콜롬비아에 간다면 한 번은 들리고 싶은 곳이었다. 물론 여기도 칼리나 보고타보다는 낫지만 시골마을처럼 밤에 맘 놓고 돌아다녀도 될 만큼 치안이 좋지는 않다. 콜롬비아 친구도 보고타와 메데진은 다른 남미 도시보다는 훨씬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했고 살렌토에서 만난 독일인도 본인과 호스텔을 같이 쓴 사람이 밤에 강도를 당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남미에서 사고사례를 들어보면 공통점은 한밤중에 혼자 술 취한 채로 있던 사람들이 타깃이 된다는 것인데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라 물론 평소에 조심은 하겠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는다. 과연 메데진이 재미없는 콜롬비아의 이미지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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