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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Aug 29. 2023

[세계여행] D+60 메데진

7일간의 희망의 도시 메데진 여행기

예상과는 달리 살렌토에서 메데진으로 가는 직행 버스가 있긴 했지만 아침에 정류장에서 마주한 버스는 대여섯 시간을 달리기에는 너무나도 작아 보이는 마을버스 정도의 크기였다. 전 날 가장 먼저 예약을 했는지 제일 앞 혼자 앉는 조금이나마 편안한 자리를 받았다. 메데진에서 살렌토로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공사 중인 구간이 많아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느라 10시간 넘게 걸렸다는 얘기를 듣고 1시 30분이었던 도착 예정시간에 맞춰 제 때 도착하는 건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실제로 메데진에 도착한 시간은 탑승 후 8시간이 걸린 4시 조금 넘어서였다. 예약해 놓은 호스텔 앞에 바로 프로축구 경기장이 있고 마침 이 날 경기가 있어서 축구를 볼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했다. 터미널에서 숙소 근처까지 가는 시내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일단 터미널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Bandeja Paisa라는 메데진 지역이 특히 유명한 콜롬비아 전통 요리를 주문했는데 터미널 음식이 늘 그렇듯 부실하고 맛도 별로였다. 밥을 먹고 다시 나가서 10분 정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우버를 불렀다. 


숙소에 도착하니 경기 시작 전인 5시 50분이었다. 서둘러 체크인을 하고 조금 늦더라도 경기를 보겠다는 생각에 바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에서는 티켓은 온라인 앱 결재가 원칙이라며 방법을 알려주었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다른 데서는 잘만 되던 하나카드가 해외결재를 거부했다. 결국 6시 20분쯤에 결재앱도 막혀버렸고 직원이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암표를 사는 방법 말고는 없다길래 그냥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콜롬비아에서 축구를 무조건 보고 싶다는 건 아니고 그냥 한 번 봐도 재밌겠다 정도의 생각이었어서 별 미련 없이 돌아섰지만 짜증 나는 상황은 맞다. 3시간이나 오래 걸린 메데진행 버스, 오지 않은 시내버스, 뜬금없이 튕기는 하나카드, 카드결제밖에 안 받는 축구 구단의 완벽한 합작품이다. 



다음 날은 본격적으로 메데진 여행을 시작하려 워킹투어를 신청했다. 지난번 라파즈 워킹투어의 기억이 좋아서 대도시는 웬만하면 워킹투어를 하며 도시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고 돌아다니려고 한다. 미팅포인트인 보테로 광장이 위치한 시내로 걸어가는데 치안이 좋은 숙소가 위치한 마치 유럽 같은 동네를 벗어나 시내로 향할수록 많은 노숙자, 부랑자, 창녀, 마약상, 심지어 길에서 알몸으로 씻고 있는 사람들까지 썩 유쾌하지 않은 광경들이 펼쳐졌다. 중앙 광장에는 펜스가 둘러져 이들의 진입을 차단하는데 나중에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새로운 시장이 안전을 위해 도입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정책이라고 한다. 늘 이런 지는 모르겠지만 영어 워킹투어 참여자가 30명에 달했다. 가이드에 의하면 원래 메데진 센트로 지역은 치안이 좋지는 않지만 관광객, 현지인, 잡상인들이 어우러지는 복잡하고 활기찬 동네인데 이 날은 공휴일이라 비교적 한산한 편이라고 했다. 워킹투어가 시작하는 광장에는 모든 걸 뚱뚱하게 그리는 스타일이 유명한 메데진 출신의 화가 보테로의 조각들이 들어서 있다. 한두 개만 저렇게 만들었으면 크게 눈길이 가지 않았겠지만 조각상 몇십 개를 같은 스타일로 만들어 나열해 놓으니 광장 자체도 개성 있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지만 단조로운 작품 스타일에 거금을 벌어들인 후 조국이 아니라 모나코에 거주하는 점 등을 이유로 콜롬비아 예술계에서는 호불호가 강한 인물이라고 한다. 


이후에도 메데진 산업화의 역사를 기록한 벽화, 메데진 최초의 성당, 폭탄테러의 흔적이 남아있는 광장과 빛의 조형물이 설치된 다른 광장을 돌며 메데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확실히 센트로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곳이고 투어 그룹 없이 혼자 다니기에는 좀 껄끄러운 곳이지만 어두운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메데진에 대한 설명을 듣기는 최고의 장소였다. 메데진은 30년 전까지만 해도 마약 카르텔과 게릴라 단체가 활개 치며 정부가 사실상 통제를 포기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 하나였다. 특히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활동한 본거지이기도 하다. 하도 치안이 불안하다 보니 가이드의 나이 많은 친척들이 당시 집 앞에 장을 보러 나갈 때 언제나 지금이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에스코바르가 사살된 후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부터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며 지금은 보고타보다도 훨씬 안전해져 콜롬비아 관광의 중심지가 되었다. 가이드도 계속 어두웠던 과거와 안정을 찾은 현재를 비교하며 변화의 의미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강조했다. 



워킹투어가 끝나고는 혼자 지나온 길을 거슬러 광장으로 돌아와 가이드와 콜롬비아 친구 모두가 추천했던 안티오키아 박물관을 방문했다. 1층과 2층에는 주로 콜롬비아의 현대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대부분은 복잡하고 아픈 콜롬비아의 현대사를 다루고 있었다. 탐미주의자로서 복잡한 역사를 가진 나라의 예술가들이 대체적으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에 갇혀있는 듯한 현상이 이해는 되면서도 안타까웠다. 3층에는 다수의 보테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광장에서 느낀 바와 같이 누군가는 너무 간단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스타일을 모든 그림에 적용해 놓으니 하나하나의 그림보다 전체가 주는 통일성의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종교화에서까지도 예수나 성모, 천사와 악마를 모두 뚱뚱하게 그려 놓은 걸 보며 자칫 조롱으로 느껴질 수도 있음에도 본인의 스타일을 고수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미술관 관람 후에는 구글지도에서 도시 전망이 잘 보인다던 Pueblito Paisa라는 곳으로 향했다. 언덕을 조금 오르면 있는 마을이라는 정도만 알고 갔는데 도착해서 보니 정말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샵과 식당밖에 없는 인공적인 마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게다가 언덕이긴 하지만 높게 자란 나무에 가려져 도시의 전망도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침 마을에 오르니 비가 와서 비를 피하느라 위에 좀 머물렀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바로 다시 내려왔을 실망스러운 곳이었다. 


저녁시간이 임박해 숙소가 위치한 라우렐레스 지역으로 돌아왔는데 동네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메인 거리는 식당들에서 틀어놓은 음악소리로 시끄럽지만 곁가지로 들어가면 조용한 주거지에 식당들이 군데군데 들어선 느낌이었다. 칼리 숙소 뒷동네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내가 좋아하는 유럽 도시의 한적한 동네의 느낌이 났다. 너무 좋은 숙소 위치와는 별개로 호스텔은 별로였다. 일단 숙소 자체가 늦게까지 음악을 크게 틀어놔 시끄러웠고 도미토리의 사람들도 10시가 넘어서 뻔히 자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불을 켜 대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근데 확실히 군대와 호스텔 여행을 거치며 예민하던 잠귀가 많이 둔해지긴 했다. 시끄러운데도 누워 있으면 어느 순간 잠들어버리고 중간에 방에 누가 들어와도 깨지 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확실히 몸이 피곤하면 잠귀고 뭐고 그런 거 없다. 



3일 차는 과거 슬럼이었지만 지금은 메데진 최고의 관광지로 탈바꿈한 코무나 13에 방문했다. 예전에 한 유튜브 영상에서 상당히 인상 깊게 보며 메데진이라는 도시를 처음 알게 된 계기가 된 곳이다. 오늘도 역시 정보를 들으며 구경하면 좋을 것 같은 곳이라 워킹투어를 신청했다. 투어 가이드는 미국인이었는데 1년째 코무나 13에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을버스를 타고 동네에 도착한 후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본격적인 관광객들이 방문할 수 있는 구역이 펼쳐진다. 동네 댄스팀의 브레이크댄스 공연을 보고 첫 번째 사진에 나오는 운동장으로 이동했다. 코무나 13은 원래 시골 거주지에서 갱들의 세력다툼을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메데진 외곽 산에 미승인 건축물들을 지으며 만들어진 지역이라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게릴라 단체들이 정부군을 피해 들어오게 되고 정부는 진압이라는 명목으로 우파 무장단체를 투입시키면서 몇십 년 동안 총성이 끊이지 않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위험한 구역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인프라 구축으로 치안이 많이 좋아져 '과거에 세계에서 가장 위험했던 구역'으로 브랜딩을 하며 관광산업이 전체 수입의 85%를 차지한다고 한다. 사진의 운동장은 달동네의 거의 모든 집에서 보이는 장소로 과거 게릴라 단체들이 공개처형을 하는 데 사용한 곳이라고 한다. 게릴라군이 소탕된 후 정부에서 이 장소를 운동장으로 조성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희망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코무나 13은 건물들도 다양하게 색칠되어 있고 곳곳에 상징적인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예외적으로 승인을 받는 경우가 아니면 이곳 출신 작가들만이 벽화를 그릴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코무나 13의 사람들은 예술과 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예술을 통해 어두운 과거를 넘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얻고 교육을 통해 실질적인 발전을 이룬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코무나 13을 돌아다니다 보면 '아이들은 길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꿈속에서 일해야 한다'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곳에 비해 길거리에서 구걸하거나 물건을 파는 아이들의 수가 현저히 적었다. 벽화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언덕을 오르다 보니 세 번째 사진에 나오는 유명한 에스컬레이터들이 나왔다. 이 에스컬레이터들은 2010년대 초반에 정부에서 설치한 것으로 윗동네와 아랫동네를 연결해 주민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범죄율도 획기적으로 낮췄다고 하며 역시 또 다른 희망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곳의 분위기는 활기찼고 관광객이 다니는 거리들은 음식점, 카페, 갤러리가 가득한 많이 관광지화 된 모습으로 역시 달동네를 관광지화 시킨 부산 감천문화마을 같은 느낌도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과거를 극복하고 희망찬 미래만 남아있는 곳 같겠지만 어두운 부분도 아직 존재했다. 과거 무장세력이나 정부군에게 희생된 민간인들이 암매장된 묘지가 마을 멀리 뒷산에 보였고 관광객들이 지나가지 않는 현지인들의 집은 이제는 수도와 전기 공급에 문제가 없다지만 많이 열악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또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아직도 암암리에는 갱단의 세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이드가 여기 사람들도 잘 말하지 않는 것이라며 해 준 얘기에 따르면 아직도 갱단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주에 13000페소, 투어 회사는 200000페소씩 상납하고 있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워낙 지역경제에 중요한 터라 갱들도 절대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건드리는 사람들을 가만 두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좋은 치안이 유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뭔가 씁쓸한 이야기였다. 콜롬비아도 마찬가지다. 모든 도시에서 진행한 투어나 박물관의 주제는 어두운 과거를 극복하고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아마 가장 안전한 지역에서만 묵어서 그런지 오히려 콜롬비아가 돌아다닌 나라들 중 가장 안전하고 심지어는 선진국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 있었을지라도 관광객이 보고 느낄 수 없는 어두운 부분이 아직 나라 곳곳에 많이 존재할 것이다. 



투어가 끝난 후 라파즈와 비슷하게 대중교통으로 이용되고 있는 케이블카를 타고 산동네를 내려다보면서 그러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메데진도 라파즈와 마찬가지로 산 위로 올라갈수록 가난한 동네인데 멀리 보이는 도시의 전경이 멋지면서도 산동네 집들의 상태를 보면 마음이 아팠다. 라파즈보다 달동네의 경사는 덜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보다 훨씬 낙후되어 보이는 집들이 위차한 언덕을 하루하루 오르락내리락하며 오직 생존만을 위해 살아갈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 보였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또 당장 나아질 수도 없는 저곳의 치안은 또 어떨지 생각하니 마냥 희망만을 논하는 것도 가혹하게 느껴졌다. 진보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날은 메데진 근교 과타페로 향했다. 여기는 댐을 건설하면서 만들어진 호수와 그를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돌 엘페뇰이 유명한 곳이다. 아침부터 터미널로 이동해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먼저 엘페뇰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매표소 근처로 올라가면 유명한 관광지답게 기념품점과 식당이 전망을 방해한다. 유독 다른 나라에 비해 콜롬비아가 이러한 경향이 심하다. 가는 관광지마다 나 관광지다 하고 소리 지르고 있는 느낌이다. 또 비교적 북미와 가깝고 물가가 싸고 여행 난의도가 낮아서 단기로 오는 관광객들이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많다. 어쨌든 저런 돌이 있는 것도 신기하고 거기를 올라가겠다고 돌 틈에 계단을 설치한 것은 더 신기했다. 정상에도 매점과 화장실이 있는 걸 보니 어딘가로 전기와 수도시설까지 만들어 놓은 듯했다. 약 700개의 계단을 올라 도착한 정상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경치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절경도 아닌 것이 통영이나 사천 쪽 다도해와도 비슷했다. 위에서 시간을 보내다 계단을 다시 내려오니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툭툭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그냥 타도 되는데 그냥 과타페로 걸어갔다. 1시간이 조금 안 걸리는데 한적한 시골길을 생각한 것과 다르게 그냥 찻길 갓길을 걸어야 했다. 마을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보행자길이 나오긴 하는데 금방 무너질 것 같은 나무다리가 나와 고민하다 그냥 태연한 척하고 건넜다. 마을 초입에 마침 철물점이 보여서 어댑터를 샀다. 여행용 멀티어댑터가 있기는 한데 이 대단하신 삼성 노트북은 정격충전기가 아니면 밤새 꽂아놔도 풀충전이 안된다. 에콰도르에서는 어찌어찌 버텼고 콜롬비아도 그러려고 했으나 도저히 불편해서 그냥 하나 샀다. 



과타페는 호수에 접한 작은 마을인데 여기도 나 관광지다 하고 소리 지르는 느낌의 마을이다. 굉장히 알록달록하고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 카페, 기념품 가게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첫인상은 나쁘지는 않은데 딱히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물가도 싼 편은 아니라 점심을 뭐 먹을지 한참을 걸어 다니며 고민하다 그냥 길거리에 보이는 싼 식당에서 맨날 먹는 오늘의 메뉴를 시켜 먹었다. 



매진 걱정에 버스를 미리 끊을 때 마을이 이렇게 작을 줄 모르고 5시 40분 버스를 사다 보니 도저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관광객들 발길이 닿지 않는 마을 뒤편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여기가 좋았다. 마침 날씨도 이 즈음해서 해가 떠서 마을의 색감이 더 살아났다. 관광객이 없는 현지인 구역도 너무나 색감이 좋았는데 벽화와 채색작업이 모두 관광 사업을 위함이 아니고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인 듯했다. 곳곳에 거리의 예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놓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고 확실히 무채색의 도시보다 약간은 인위적으로 느껴질지라도 색깔이 가득한 것이 좋아 보였다. 버스 출발까지 어찌어찌 시간을 보내다 메데진으로 돌아와 숙소를 옮겼다. 원래는 보고타를 가기 전에 북부 해안의 산타마르타라는 도시를 갈까 생각했는데 20시간 버스를 두 번이나 도저히 탈 자신이 없었다. 마침 메데진도 마음에 들어 여유 있게 며칠 더 있기로 하고 시끄럽던 호스텔은 근처의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은 오랜만에 빨래를 맡기고 콜롬비아 친구가 추천해 준 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전에 지나가면서 봤던 한국마트에 들러서 라면을 사려했는데 개당 가격이 4500원이었다. 어이가 없는 가격이지만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 두 개를 구매했다. 현대미술관으로 한 시간 정도 걸어갔는데 확실히 메데진은 구역마다 분위기가 확확 바뀐다. 집 근처는 정말 여유 있는 부촌 거주지의 느낌이지만 강을 건너가면 정비소가 많은 약간은 무섭고 황량한 구역이 나오고 현대미술관 근처는 다시 회사 빌딩들이 가득하고 직장인들이 와플집 앞에 줄을 서 있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치안이 조금만 더 괜찮으면 달동네도 걸어 다니며 도시여행의 매력인 이런 대조를 더 느낄 수 있을 텐데 몇 명이 낮에 같이 다니면 몰라도 혼자서는 무리다.


현대미술관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지금까지 가 본 미술관 중 가장 난해한 작품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현대예술은 미술사나 음악사를 공부하면 왜 이런 모습을 띄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나는 최소한의 예술의 형식도 포기한 작품들은 가치 있는 예술로 인정하지 못할 것 같다. 마치 비빔밥집에서 비빔밥 야채의 맛을 해친다는 이유로 밥과 고추장을 빼버린 채로 팔고 있어 손님들은 영문을 모르는 상태인데 업계 관계자들은 온갖 미사여구를 다 붙여가며 극찬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약간은 짜증 난 상태로 미술관을 나와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구역인 엘포블라도로 향했다. 여기도 내 숙소가 위치한 라우렐레스와 더불어 안전하고 식당이 많은 구역으로 대부분의 호스텔들도 여기에 있다. 근데 여기는 차가 너무 많고 조용한 분위기의 식당들보다는 밤문화가 메인인 느낌이라 개인적으로는 라우렐레스보다는 별로였다. 동네를 구경하며 점심메뉴를 고민하다 무지하게 짰던 탄탄멘을 먹고 근처 영화관에서 오펜하이머를 관람했다. 오랜만에 영화이 하고 티켓값도 3000원 밖에 안 해 즐거운 관람이 되었다. 물론 영화도 이름값을 하는 수작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고민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야경까지 보고 숙소로 돌아갔다. 야경은 늘 예쁘지만 나에게 확실히 남미 최고의 야경은 라파즈였다.


다음날은 휴식일로 점심에 사놨던 라면을 먹는데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맵게 느껴졌다. 갑자기 베를린에 정치컨설팅 회사들에 이력서가 넣어보고 싶어 져서 하루종일 쉬엄쉬엄 자기소개서나 몇 개 썼다. 원래 다음날 보고타로 이동할 계획이었으나 버스가 10시간이나 걸려서 그냥 하루 더 메데진을 보고 야간버스 이동을 결심했다.


메데진의 마지막 날 아침에 남은 라면 1개를 해치우고 체크아웃 후 터미널로 가서 야간버스표를 사고 짐을 맡겼다. 근처 수목원으로 걸어서 이동하는데 메데진에서 처음으로 완전 로컬 동네를 걸어서 지나게 되었다. 느낌은 그냥 서울 창신동 같았다. 대낮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위험하다는 느낌 없이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과 여유 있게 집 앞이나 가게에 나와 앉아있는 사람들이 섞여있는 일반적인 마을의 모습이었다. 메데진의 모든 동네가 밤낮 할 것 없이 이런 분위기만 되어도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목원은 별 것 없어 금방 나와서 뭘 할까 생각하다 다시 엘 포블라도 영화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환전소에서 남은 칠레페소를 처리했다. 엄청나게 손해를 본 거래였지만 2만 원도 되지 않는 소액이고 여기가 아니면 멕시코에서는 도저히 처리가 안 될 것 같았다. 오늘은 평소에 좋아하던 그레타 거윅의 신작 바비를 봤는데 오랜만에 보는 쓰레기 같은 영화였다. 이게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 감독이 맞나 싶을 정도로 허접한 스토리, 오글거리는 메시지, 다 포기한 듯한 배우들의 연기까지 장점을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는 영화였다. 전작들이 워낙 좋았던 터라 슬슬 그레타 거윅이 거장으로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나 거장 아니라고 증명하는 영화였다. 엘 포블라도 밤 산책으로 메데진 여행을 마무리하고 터미널로 향했다.


이렇게 일주일간의 메데진 여행이 끝났다. 산타마르타를 포기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너무 매력적인 도시였다. 일단 어딜 가든 녹지조성이 정말 잘 되어 있는 점이 너무 좋았다. 또, 정말 힘들었던 과거,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동시에 녹록지 않은 현실도 보여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도시였다. 나에게는 라파즈 다음으로 좋았던 도시였고 여기도 치안이 좋아진다면 나중에 돌아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고 싶은 곳이다. 이제 남미 마지막 도시인 보고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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