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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Sep 14. 2023

[세계여행] D+63 보고타

남미 여행의 마무리

메데진에서 보고타로 이동하는 야간버스가 예정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빨리 도착하는 바람에 아침 6시부터 보고타에서 돌아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잠도 잘 못 자고 힘들어서 터미널에서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죽이다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향했다. 우버는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아서 현지 택시를 탔는데 원래 가격 30000페소에서 20000페소로 흥정을 해 보려 했으나 먹히지 않아서 25000으로 이동했다. 택시기사는 원래 에콰도르 출신이라고 하고 본업은 음악가인데 생계를 위해 택시를 몰고 있다며 유튜브에 올라온 본인이 작곡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숙소는 보고타에서 가장 안전하고 식당과 호스텔이 많은 칸델라리아의 Zona G라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큰길에서 동네로 들어오는 길에는 벽돌로 지어진 집들이 많아서 영국 같은 느낌도 들었다. 


체크인이 3시라 숙소에 짐을 맡긴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보려 먼저 일요일마다 열린다는 우사켄 벼룩시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는 구할 수 없는 버스카드를 사러 조금 떨어진 정류장으로 향하며 오늘도 아침으로 아레파를 먹었다. 아침에 먹는 튀긴 엠파나다나 아레파는 질리지 않는다. 아침부터 도로에 가득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가장 빨리 눈에 띈 다른 도시들과의 차이점이었다.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잘 마련되어 있고 일요일에는 자동차 도로도 몇 개는 통제시켜서 자전거 이용 인구가 많은 듯했다. 



우사켄은 보고타의 대표적인 부촌이라고 하는데 동네는 역시 콜롬비아답게 알록달록하고 나쁘지 않았지만 벼룩시장은 볼 게 정말 하나도 없었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파는 물건들도 재미있는 골동품들이 아닌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듯 한 수공업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재미없는 곳들은 빠르게 스킵하는 게 가장 좋기 때문에 다음으로 향할 곳을 빠르게 알아보고 일요일에 입장료가 없다는 국립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국립박물관은 역시 무료입장일이라 입구부터 사람들이 미어터졌다. 대략적인 콜롬비아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역시 딱히 관심도 없고 야간버스의 여파로 몸도 너무 피곤해서 내용이 머리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박물관도 빠르게 둘러보고 점심을 먹고 체크인 시간까지 도심에서 떠돌다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어 간단하게 Zona G 동네 산책을 하고 햄버거로 끼니를 해결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레몬맛 감자칩을 샀는데 향만 살짝 날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식초에 담갔다 뺀 듯한 매우 신 감자칩이었다. 영국에 있던 식초맛 감자칩을 보면서도 생각했지만 이런 걸 왜 먹는지 모르겠다. 



다음 날은 시내 워킹투어를 위해 보고타 중심가로 향했다. 보고타의 중심가인 칸델라리아 지역 곳곳을 돌며 워킹투어가 늘 그렇듯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테러, 마약에 대한 정치적인 해법으로 실시된 다당제 개헌과 법원에 대한 게릴라 그룹의 인질극에 대한 설명이었다. 도시 자체가 아름다운 느낌은 아니지만 역시 남미의 대도시답게 정신없고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여기도 메데진 센트로와 마찬가지로 그렇게까지 안전한 느낌은 아니어서 가이드도 요주의 거리를 통과할 때마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투어가 끝나고는 바로 옆에 위치한 보테로 미술관으로 향했다. 메데진에서 작품들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었고 여기서 마주한 작품들도 마음에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확실하게 느낀 거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은 본인이 관심 없는 분야면 시간낭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유명하다고 해서 의무감에 들어가면 몸만 힘들고 나중에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그런 이유로 보고타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간다는 금 박물관도 과감하게 스킵했다. 이후 투어 가이드가 추천한 시장에서 보고타의 대표 음식인 아히아코를 먹고 시내를 산책하다 숙소로 돌아왔다.



마지막 날에는 뭘 할까 고민하다 보고타의 전경을 볼 수 있는 몬세라테로 올라갔다. 원래는 푸니쿨라와 케이블카 두 가지로 올라갈 수 있는데 케이블카는 공사 중인 듯했다. 여행 초반 같으면 무모하게 걸어 올라갔겠지만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고 경사도 심한 편이라서 그건 무리였다. 전망대로 올라오니 교회와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런데 관심이 없는 나는 한 번만 쓱 돌아주고 뷰포인트 앞에서 계속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도시는 상당히 크고 빽빽했다. 두 시간 정도를 멍하니 있다 내려와서 대학가를 구경하고 시장에서 생선요리를 먹고 공원에서 쉬었다. 해가 지고 숙소에서 짐을 찾아서 새벽 3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글에서도 느껴졌듯이 보고타 여행의 퀄리티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원래부터 관심이 있는 도시도 아니고 친구가 살고 있어 일정에 넣었는데 결국 친구와는 일정이 엇갈려서 만나지도 못했다. 또, 야간버스 이동의 여파로 체력이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메데진과는 달리 도시도 그렇게 아름답거나 생동감 있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안전문제로 인해서 너무 부촌에만 있다 보니 진짜 도시를 느껴보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라 뭘 본 듯 안 본 듯 3일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남미 여행이 다 끝났다. 별로였던 마지막 도시와는 별개로 남미에서의 두 달 반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저예산 여행이라 몸은 힘들었지만 여행의 목적이었던 이국적인 것에 대한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었고 남들은 평생 해 보지 못할 멋진 경험들을 했다. 위험하다는 사람들의 흔한 생각과는 달리 일부러 위험한 슬럼가를 방문하거나 밤에 시내에서 술 취해 비틀거리고 있지만 않으면 크게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이고 나도 나름 조심하며 여행했으니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오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계절과 예산이 맞지 않아서 가지 못한 파타고니아와 이과수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멕시코에서 2주를 보내고 유럽으로 넘어간다. 멕시코 여행은 고정동행이 함께 해서 지금까지의 여행과는 다르게 쉬엄쉬엄 돌아다닐 예정이다.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오고 싶은 여운을 남기며 이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게 여행한 남미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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