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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Jul 09. 2023

[세계여행] D+10 바뇨스, 쿠엥카, 페루 국경이동

별 것 없는 소도시들, 버스지옥으로 에콰도르를 마무리하다

킬로토아 트래킹을 바치고 땀범벅이 된 채로 바로 버스를 타고 도착한 바뇨스는 에콰도르를 방문한 관광객은 레저를 위해 한 번씩 모두 들러간다는 곳이다. 그만큼 호스텔도 차고 넘치기에 따로 예약을 하지 않고 가서 찾아보기로 했다. 바뇨스는 관광산업으로 먹고사는 도시인만큼 치안이 매우 안정되어 있어 밤에 돌아다녀도 큰 문제가 없기에 머무르는 이틀 동안 해가 진 후에도 저녁을 먹으러 부담 없이 나갈 수 있었다. 동행들이 고른 호스텔로 가 보니 루프탑바가 있는 시끌시끌한 분위기였고 가격도 최저가 호스텔보다 3.5달러나 더 비쌌기 때문에 나는 동행들을 놔두고 다른 호스텔로 향했다. 사전예약을 하지 않아 부킹닷컴 커미션도 붙지 않은 하루 6달러짜리 호스텔에 2박을 묵기로 하고 방에 들어가 보니 킬로토아 트래킹부터 종종 마주쳤던 미국인 1명도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바로 다음 날 자전거를 타고 폭포투어를 한다길래 나는 다리 상태 보고 같이 할지 정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 손빨래를 하다 트래킹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기에 처음으로 호스텔에 빨래를 맡겼다.


다음 날 시간도 아깝고 몸상태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같이 자전거 투어를 가기로 하고, 그전에 자기 친구들이랑 아침이나 먹자길래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같이 한 친구들은 누가 봐도 속칭 '인싸'같은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의 대화 내용이 마약을 먹고 여자친구랑 뭘 어떻게 했다는 둥 너무 저질이라 금방 정이 떨어졌다. 그리고 가뜩이나 같이 다니고 싶지도 않은데 아침도 가격대가 있는 카페에서 먹고 자전거도 5달러면 빌리는걸 10달러 주는 집에 가자고 하니, 핑계를 대고 잠깐 숙소에 들렀다 와야 한다며 너희들 먼저 가라고 하고 도망쳤다. 목적지가 같아서 나중에 계속 마주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빠져나왔다. 잠시 숙소에 들러 재정비를 하고 자전거를 빌려 폭포의 길(Ruta de las cascadas)을 따라 달렸다. 바뇨스는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기에 고속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면 여러 작은 폭포들과 마지막으로 유명한 악마의 가마솥(Pailón del dibolo) 폭포를 마주하게 된다. 



학부생 때 자취할 때 이후 3년 만에 타는 자전거이고 길도 대부분 내리막이다 보니 신이 났지만 어쨌든 고속도로 위의 대형 트럭들 옆에서 타는 것이다 보니 속도를 조절하며 자전거를 몰았다. 또, 평지를 걸어 다닐 때는 괜찮은 듯했지만 가끔씩 나오는 오르막에서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아서 고생을 좀 했다. 아무래도 이 날은 통째로 쉬고 다음 날부터 다시 돌아다니는 게 맞는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바뇨스는 현지인, 관광객 모두에게 액티비티로 유명한 마을이기에 목적지로 향하는 중간에 계곡을 따라 번지점프, 짚라인, 출렁다리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런 것에 관심이 없던 나는 그냥 목적지만 보고 달렸다. 1시간이 조금 넘게 달려 도착한 악마의 가마솥 폭포는 내려가는 길부터 지금까지 고산의 지형과는 달리 정글에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놀이공원에 있는 정글 컨셉이 실재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멀리서부터 엄청난 굉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폭포 가까이로 들어서니 사방으로 물도 튀고 있었다. 미끄러운 계단과 네 발로 기어야 하는 좁은 통로를 지나면 마침내 폭포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데 동영상이 차마 시각, 청각, 촉각으로 동시에 느껴지는 폭포의 거대함을 담아내지 못한다. 폭포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 아쉬운 발걸음을 떼고 탐방로의 끝으로 이동하면 식당이 나오는데 그 위에서는 뜻밖에도 폭포의 아랫부분까지 전경을 관람할 수 있다.



절경과는 별개로 내내 어제 트래킹에서 회복하지 못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80대 노인보다도 못한 속도로 탐방로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자전거로 도저히 오르막을 올라 바뇨스로 돌아올 자신이 없었기에 3달러를 주고 관광객들을 위해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돌아와 주는 서비스를 이용했다. 자전거를 오랜만에 탔기에 시내를 더 돌아볼까 했지만 너무나 작은 도시라 금방 할 게 없어 자전거를 반납했다. 그리고 몸도 힘든데 마을의 유명한 온천에서 쉴 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원래 더러운 물에 들어가는 걸 싫어하는 터라 그 생각도 금방 접었다. 그래서 그냥 시장 구경이나 하며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서 쉬기로 마음을 먹었다.



첫 번째 사진의 시장이 일주일에 몇 번 안 서는 시장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서 파는 돼지 내장을 넣고 끓인 수프가 순댓국 같아 유명하다고 한다. 근데 나는 그냥 별거 없는 줄 알고 다른 시장으로 이동해 마지막 사진의 llapingacho라는 음식을 먹었다. 에콰도르는 뭘 시켜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나오는 정식 같은 메뉴가 많아서 워낙 애초에 기대치도 낮았지만 음식 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근데 밥 먹는 내내 주인아주머니가 식탁 맞은편에 앉아계셔서 좀 불편했다. 



애초에 바뇨스에는 폭포 구경 때문에 왔고 유명한 액티비티와 온천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다음 날 일찍 페루로 넘어가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쿠엥카로 이동했다. 직선거리로는 100km가 조금 넘는 두 도시이기에 아침 8시 45분 버스를 타면 점심시간 정도에 도착하고 때에 따라 야간 버스로 바로 페루 치클라요로 이동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버스가 산길로 접어들어 바로 옆 도시인 암바토까지 굽이굽이 가는데 벌써 3시간이 걸리더니 그 후에는 뜬금없이 폭도 버스 하나가 겨우 지나갈만하고 옆은 낭떠러지인 협곡의 도로로 들어섰다. 협곡을 1시간이 걸려 겨우 넘은 후에는 사방에 안개가 가득 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몇 시간을 내달렸다. 내내 옆 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았지만 이쯤 현지인 덩치 있으신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았는데 자꾸 졸면서 기대서 가뜩이나 긴 여정에 더 힘들었다. 에콰도르 버스는 운행 내내 영화를 틀어주는데 영화 6편째가 나오던 오후 6시 30분에야 목적지인 쿠엥카에 도착했다. 후에 알고 보니 원래 지나가야 하는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가 무슨 이유인지 통행이 불가해 우회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고, 쿠엥카 자체가 산에 둘러싸인 도시라 원래 오래 걸리는 것도 맞는데 직선거리 100km를 10시간이 걸려 오는 건 좀 너무했다. 쿠엥카도 야간에도 안전한 편에 속하는 도시이고 여행이 진행되면서 긴장감도 많이 떨어져 해가 졌음에도 그냥 숙소까지 30여분을 걸어갔다. 사람들도 많이 다니고 도시도 정돈된 느낌이라 딱히 무섭지는 않았다. 그런데 배가 고파 호스텔로 향하는 중 아무 데나 들어간 중국집의 볶음밥 맛이 없었고 호스텔에서도 바뇨스에 이어 또다시 2층침대가 걸렸다.



다음 날, 아침에 터미널로 이동해 밤 9시 페루 치클라요행 버스표를 사고 시내로 돌아와 구시가지 구경을 했다. 쿠엥카의 구시가지는 지금까지 들렀던 에콰도르 도시 중 가장 유럽 느낌이 났다. 키토와 달리 언덕도 많이 없고 도시도 격자형으로 계획도시의 느낌이 나면서 건축물은 유럽 양식이 도드라졌다. 심지어 남미의 무질서함도 조금은 덜한 듯했고 남미에서 처음 보는 트램도 다녔다. 그런데 건물 사이의 간격이 넓고 차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느낌만큼 사진은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다년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전통적 구도심은 차가 없고 좁은 도로 양 쪽에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있어야 사진에 예쁘게 담긴다.



라타쿵가에서 잃어버린 모자의 대체제를 찾기 위해 의류시장에 들어가 6달러짜리 챙있는 모자를 빠르게 구매하고 식사를 위해 옆의 식품시장으로 향했다. 족발을 넣고 끓인 수프인 caldo de pata를 먹으려 한 가게에 물어보니 그 가게에서는 팔지 않는지 옆 가게를 소개해 주었다. 음식은 나쁘지 않았지만 주인 할머니가 3달러를 받으시고 거스름돈 0.5달러를 잊어버리셨다. 음식을 먹고 주스나 한 잔 하려고 옆 주스가게에서 코코넛 주스를 시켰다. 믹서기에서 주스를 따라주시고 가격을 모르니 2달러를 드렸는데 뭔가 반응이 찜찜했다. 주스가 2달러나 할 리가 없으니 나는 당연히 거스름돈을 예상하고 있었고 주인분도 뭔가 당황한 눈치였다. 결국 잠시 어색한 시간 후 주스를 한 잔 더 주셨다. 아마 한 잔에 1달러였던 것 같다. 다들 고의는 아니겠지만 뭔가 또 눈탱이 맞는 기분을 버릴 수 없었다. 아, 추가로 저번에 라타쿵가에서 7.5달러에 샀던 슬리퍼와 똑같은 것을 쿠엥카에서 3달러에 파는 걸 보았다.


식사 후에는 전에 킬로토아 호수 동행에게서 추천받는 Pumapungo 박물관으로 향했다. 쿠엥카에서 발굴된 잉카시대 유적을 비롯해 에콰도르의 문화, 의복, 문화재, 화폐에 관한 전시인 것 같았는데 배경지식이 없고 딱히 관심도 많이 없는 주제이다 보니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해 한 바퀴를 둘러본 뒤 비가 그칠 때까지 앉아서 핸드폰이나 보며 쉬었다. 



다시 밖으로 나와 도시를 카메라에 담으려 노력했지만 역시 사진들은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마 2배로 확대해서 찍은 위 사진들이 내가 느낀 도시의 분위기와 조금이나마 맞았다. 쿠엥카의 흐린 저녁으로 에콰도르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역시 신선했고, 생각보다 다양했고, 도시는 활기찼고, 자연은 아름다웠다. 관광객이 많이 없고 전통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현지인이 많아 더욱 이국적이었다.


호스텔에 맡겨놨던 가방을 찾아 9시 차를 타고 페루로 향했다. 야간버스인 만큼 좌석이 편해 원래 움직이는 교통수단에서 거의 잠을 자지 못하는 나도 아침까지는 어느 정도 잘 수 있었다. 새벽 2시에 에콰도르-페루 국경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받았다. 내내 고산지역에만 있어 긴팔에 패딩을 입고 있던 터라 페루의 새벽 2시는 벌써 덥게 느껴졌다. 페루 출국 항공권을 혹시 몰라 가짜로 준비해 놓은 것이 무색하게 아무런 질문 없이 입국 도장을 받았다. 그리고 치클라요까지 11시간이 걸릴 거라는 버스회사 직원의 말과는 달리 12시가 되어서야 15시간의 버스 이동이 끝났다. 51시간 동안 버스에서 21시간을 보냈다. 그야말로 버스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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