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이야기의 시작
아이가 태어난 지 1년.
물리적으로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나는 마치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빠르게 ‘엄마’로 ‘전환’되었다. 나의 24시간은 쌍둥이인 두 아이 위주로 돌아가고,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 대부분이 아이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나의 기쁨과 슬픔도 거의 아이들에게서 기인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는 현재의 내 삶이, 일상이 퍽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쓰게 될 이야기들은 밝고 유쾌하리라 단언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엄마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희의 존재가 엄마를 어떻게 행복하게 했는지, 이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대부분의 엄마라면 공감할 수 있는 ‘엄마’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첫 글을 쓰면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결코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없을 것 같은 우중충한 글이 나왔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엄마들이 이런 내 어두운 마음에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고민했다.
‘내가 생각한 방향에서 너무 벗어나는 것 같은데,,, 다시 쓸까...?’
‘조금 더 즐겁고 유쾌하게…? 밝고 사랑스럽게 쓰면 어떨까...?’
결과적으로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아이들을 재우는 시간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결론으로 이어진 덕분이었다. (이 시간은 암흑 속에서 미동 없이 보내는 잡생각의 시간이다)
‘나는 엄마이지만, 나라는 사람이 엄마가 된 것 뿐이고, 이 세상에 엄마는 많지만, 나 같은 엄마는 결국 나밖에 없잖아. 내가 우리 아이들을 태어나 만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듯이, 우리 아이들도 나라는 엄마를 받아들여야지 뭐, 별 수 있나. 그리고, 내 이야기가 다른 엄마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엄마’ 이야기가 아닌 건 아니지. 어쨌든 나는 엄마가 되었고, 내가 되어보니 이 ‘엄마’라는 건,,, 뭐랄까. 직업이나 직책 같은 게 아니어서 이제는 그 어떤 순간에도 엄마가 아닌 존재가 될 수가 없더란 말이지. 결국 지금 내가 보고 느끼고 쓰는 모든 건, 엄마의 시각이고 엄마의 이야기야. 설사 그 이야기에 아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울러, 나는 내가 써내려갈 글들의 목적을 지극히 원초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두기로 했다. 그간 억눌러 온 자기표현의 욕구 해소와 외면홰왔던 내면 직면으로. 그렇게 나를 솔직하게 마주하고 진솔하게 써내려가다 보면, 누군가가에게는 공감과 위로을,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지 않을까.
.
그렇게 초저녁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이런저런 자기 합리화 끝에, 나는 그냥 지금의 ‘나’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든 쓰기로 했다.
생각나는 대로.
대신, 솔직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