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이야기의 시작
사실 내가 앞서 올린 한 편의 글과 그림, 그리고 앞으로 올리게 될 글과 그림의 일부는 이미 내가 써놓은 것들이다. (일부가 될지 아니면 대부분이 될지는 향후 내가 얼마나 더 추가적인 글과 그림을 생산할 수 있을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단순히 컴퓨터에 쓰고 저장해놓기만 한 것이 아닌, 책의 형태로 만들기까지 했다. 정식 출판은 아니라서 독자는 비록 나와 극소수의 가족 및 지인 뿐이었지만 이 경험은 나의 글쓰기 여정에서 큰 도약이 되었음엔 분명하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 이 이야기를 먼저 하고자 하려고 한다. 아울러, 나에게 '쓰기'행위가 가지는 의미까지도.
내가 글이라는 것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 건 직장생활을 하면서였던 것 같다. 급한 성격에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쳤던 나는 어려서부터 글보다는 말이 친숙한 아이였다. 또한,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는 새로운 지식에 탐닉했던 것일 뿐, 글이라는 매개 자체를 선호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내가, 어쩌다 보니 매우 크고 보수적이며, 보고서로 모든 것을 전달해야 하는 조직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말로 하면 금방인 사안도 얼마간의 쓰기 노동을 거쳐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쓰기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유사한 형식 하에서 써내려감에도 불구하고 모든 보고서들은 비슷하지만 달랐고 읽고나면 쓴 사람의 사고과정, 개성, 열정이 보였다. 어떤 단어를 쓰는지, 어떤 형식으로 논리를 전개하는지, 어디에 힘을 주는지, 어떤 변수까지 고려했는지 등등. 쏟아내면 흩어지는 말이 아닌 실체가 남아있는 표현이라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직접 써보니 더 확실하게 와닿았다. 단순히 몇 장 쓰는데도 생각을 하고 또 하면서 논리적 하자가 없는지, 표현이 정확하고 정밀한지 검증하고 수정하면서 많은 시간을 쏟았다. 신기한 건 내가 쓰고 다시 읽으면서 내 생각이 다듬어지고 정교해지고,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보고서는 내게는 내 영혼의 파편 같았다. 그 때부터 나는 그 사람의 글은 그 사람의 존재와 닿아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글로써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임신', '출산', '육아'였다. 두 아이를 아이를 품고,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가치관, 삶과 경험에 대한 해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여전히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들은 바쁜 일상속에서 바람처럼 스쳐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기존'으로 명명될 터였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임신!출산!육아!)과 함께 맞이한 이 변혁을 그냥 머릿속에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한가지 더, 아이를 낳은지 얼마 안되어 읽은 책의 영향 덕분이었다. 영어교육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펼친 남수진 저자의 "새벽달 엄마표 영어 20년 보고서"라는 책에서, 의외로 엄마의 성장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공개된 글쓰기와 모닝글쓰기를 강조하는데, 실제로 저자는 2006년부터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으며, 아이들 관찰 일지, 어록, 그림책 이야기, 엄마의 자기계발을 위한 독후 기록까지 차곡차곡 블로그를 채워왔다. 또한 모닝글쓰기(아침에 일어나서 수기로 3페이지를 쓰는 것)를 꾸준히 실천하면서 자기직면과 성찰, 치유와 목표실현, 이이디어 발굴까지 효과를 보았다고 말한다. 아래는 당시 내가 책을 읽고 남겨놓은 메모의 일부이다.
< 공개된 글쓰기(블로그 등)에 대하여 당시 남긴 메모 >
'나는 언제부터인가 독서와 글쓰기(생산)에 대한 내밀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글쓰기. 나는 회사에서 쓰는 보고서에도 나의 영혼의 조각이 담겨있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는 나의 지적 허영심에서 기인한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 허영심에서 비롯된 완벽주의 때문인지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읽는 다는 것이 너무 싫기도 해서 SNS나 커뮤니티에 글을 거의 올리지 않는다. 글을 쓰더라도 나만의 공간에 나만 볼수 있도록 쓰고 있다. 그런데 저자의 스토리를 보고 나도 생각이 많아진다. 나의 생각과 일상,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꾸준히.'
< 모닝글쓰기에 대하여 당시 남긴 메모 >
'모닝글쓰기라는 것을 처음 들어봤는데, 매우 해보고 싶다. 내가 가장 바라는 효과는 자기직면과 치유효과이다. 육아를 하면서 내가 왜 힘든지 모르게 감정적으로 힘들때가 있다.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고,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는데, 어쩌면 모닝글쓰기로 이를 바라보고 스스로 치유하여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기록의 힘을 믿어보자'라는 다짐을 마음 한 켠에 두고 글 쓰기를 시작하려고 했다. 블로그도 다시 재정비를 했고, 모닝글쓰기도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자타공인 이불 속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에게 모닝글쓰기는 너무나 도전적인 과제였고, 그렇게 아침시간이 흘러가버리면 자기 직전까지 온통 육아에 몰두되어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중, 25년 7월경에 우리동네 도서관에서 한 팜플렛을 보게 된다. '길위의 인문학' 공모사업(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으로 전국 각 지역 도서관·문화재단 등에서 진행)에 당선된 "엄마가 되어가는 나의 이야기(강사 : 임은혁 / 인스타 : @daummgrim)"프로그램의 신청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약 4개월의 기간 동안 주1회(2시간) 수업에 참여하여 엄마로서 나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마지막에는 이를 엮어 나만의 그림 에세이 책을 만들어준다고 하였다. 당시에는 '이런것도 있군'하고 스쳐 지나갔으나, 이후에 같은 또래 아이를 양육중인 친구로부터 함께 수업을 듣자는 제안을 받아 이를 수락하면서 내 쓰기 여정의 전환점이 시작되었다. 아울러 그림 그리기의 여정까지도.
주1회 2시간의 수업은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으나, 이 시간만으로 완성하기에는 나의 글과 그림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결국 나는 집에서도 아이를 재우고 나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육퇴 후 아주 오랜만에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기분이었다. 사실 대충 하려면 할 수도 있는 일인데, 일단 시작을 하면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되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새벽 1시, 2시까지 하고 있었다. 모닝글쓰기가 아닌 심야글쓰기가 된 셈이었다. '얼른 완성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내일 또 육아를 할텐데' 하는 생각에 종종 조바심이 났고, '아이들 외의 것에 이렇게 시간을 써도 되나?' 죄책감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오직 그림과 나만 존재하는 느낌, 내가 원하는 바를 표현하고 완성된 글과 그림을 볼 때의 뿌듯함은 어느정도 중독적인 즐거움을 동반했다.
나의 심야글쓰기는 내가 모닝글쓰기에 기대했던 자기직면과 치유효과도 가져다 주었다. 글을 쓰다보면 나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던 내 날것의 감정이 어느새 손끝으로 쏟아지고 있었고, 기억하고 싶지 않던 사건과 외면하고 싶던 기억도 나도 모르게 쓰고 있었다. 그렇게 써내려가면서, 그리고 수정하기 위해서 수십번 읽다보니 힘든 마음, 부정적인 감정이 천천히 누그러짐을 느꼈다. 이를 반영하듯 처음 썼던 격했던 문장들이 삭제거나 순화되기도 했고, 부정적 감정에 가려져있던 내 안의 사랑, 감사, 이해의 글들이 새로이 써지기도 했다. 후련했다. 그리고 좋았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위로하고 치유했다는 것에 자부심이 생겼다.
그렇게 글과 그림을 완성하고 완성된 책을 받았다. 더 완성도있게 작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 시간과 지면의 한계로 미처 담지 못한 글과 그림에 대한 미련, 앞으로 내 인생의 취미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로 하겠다는 다짐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게 되었다.
언젠가 내 글들이 독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유용하고 감동을 주는 글이 될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그러기를 바라지만), 아직은 나 개인의 효용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실력과 마음상태이므로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저 이 곳에 꾸준히 내 영혼의 조각을 담아볼 요량이다.
아래는 내가 글과 그림을 완성한 후에 그 과정을 돌아보며 쓴 글이다. 책에는 '에필로그'로 엮었다.
< 에필로그 >
만약 이 글을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우선 죄송한 마음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엄마가 되어가는 나의 이야기를 써보겠노라 수업에 온 첫날,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색연필과 파스텔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낯설고 난감했습니다. 끼적끼적 낙서 같은 그림들을 그리고 집에 온 다음 날, 글쓰기 첫 주제를 받았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였습니다. 역시 매우 오랜만에 해보는 질문이었습니다. 의외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써 내려갔으나 써놓고 보니 누군가에 보여주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식과 남편에게도, 엄마에게도 보여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독자가 없는 책이라니, 솔직히, 그만둘까도 고민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미숙한 글과 그림으로도 스스로 충분히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내 안의 화가 누그러지고 부정성이 해소되는 경험까지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의 목적을 내 안의 생각과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것으로 정하고, 독자는 나 한 명으로 설정했습니다. 지금의 나, 5년 뒤의 나, 10년 뒤의 나로요.
그래서 이 책은 일관성이 없습니다. 몇 개 되지 않는 글과 그림도 그때그때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온도가 달라지고 표현법도 달라졌으니까요. 좋은 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기에 편집 과정에서 노력은 해보았으나 역시 이 부분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책은 이미 저에게 좋은 책입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몰입했고, 내 안의 이야기들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는 시간의 평온을 즐겼습니다. 누구에게도 쉽게 터놓지 못했던 내 이야기를 꺼내어 쓰고, 이를 다듬기 위해 수차례 읽으면서 오히려 치유받았습니다. 그림을 그릴 땐 색깔들을 섞고 칠하며 미처 모르고 지나갈 뻔했던 내 기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해보지 않으면 몰랐을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끌어주는 임은혁 강사님과 함께하는 동료들 없었다면 이 여정을 끝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과정을 먼저 해보셨던 강사님께서 제가 주저할 때마다 칭찬과 지지를 아낌없이 주셨기에, 그리고 낯선 미술을 쉽게 접하도록 안내해 주셨기에 원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동료분들께서 각자의 이야기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저도 할 수 있다고 용기 낼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이 수업을 제공해 준 ‘길 위의 인문학’사업과 장소제공 및 행정적인 도움을 주신 도서관 측,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처음 소개해 준 제 친구가 없었다면 저는 이 여정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늘 옆에서 지지해 주고 힘이 되어주는 남편, 엄마,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이유이자 영감의 원천인 두 아이에게는 감사보다는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책으로 받은 최종 결과물.
표지는 가장 마지막에 그렸다. 불현듯, 그냥 우리끼리는 늘 같이 춤추는 마음으로 살자는 마음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