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엄마가 되었다. 어느새, 그렇게.
임신을 알게 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보통 태명을 짓는 일일 테다.
남편과 나는 아직 성별도 알 수 없고 게다가 한 명이 아닌 아이들을 두고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의미도 있어야 하고, 흔하지도 않아야 하고, 두 이름 간에 공통점도 있었으면 했다.
그렇게 당첨된 이름은 어진이와 집현이. 나름 세종에서 만들어지고 태어나게 될 아이의 정체성과 우리 부부의 역사를 담은 이름이었다.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우리 둘 다 어진동에 살고 있었고(심지어 옆 건물에!), 이후 우리가 결혼하여 임신 당시까지는 집현동에 거주했던 것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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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태명들이 생각보다 낯설었던 것 같다. 특히 집현이는 정말 생소했는지 한 번에 알아듣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직계가족들조차 ‘태명이 그게 뭐야~’하는 반응이었다.
엄마인 나의 ‘집현이’ 고집으로 인해 태명을 개명하지는 않았지만, 나조차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으니, 우리 아이들의 태명을 사람들 앞에서 소개할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일단, 임신부로 참석하는 모든 모임에서는 나의 자기소개와 함께 뱃속 아이들의 태명이 오갔다. 나의 임신을 알게 된 친한 직장동료들도 태명을 궁금해했다.(사실 나도 누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 아이의 태명을 물어본다. 나중에 기억도 잘 못하면서 말이다.) 병원과 조리원에서는 우리 아이들을 ‘ㅇㅇㅇ님의 아기’ 대신 태명으로 불러주었다. 그때마다 항상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일일이 의미를 설명하는 수고를 겪고 나니 조금은 무난하게 지을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은 특이한 우리 아이들의 태명이 장점이 된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조리원에서였다. 그곳에 모인 신생아들의 이름이 생각보다 비슷해서, 조리원 선생님들의 아기 배달 사고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용띠해에 아가들이라 그런지 용이, 용용이, 띠용이 등등 ‘용’을 포함하는 이름이 많았는데, 다행히(?) 우리 아가들은 선생님들을 헷갈리게 할 일이 없었고 늘 내 품에 제대로 안길 수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을 태명으로 불렀던 일들이 까마득하다. 이름을 쉬이 짓지 못해 태어나서도 20일 정도는 태명으로 불렀는데도 말이다. 아, 그때는 진짜 이름을 부르는 게 오히려 어색해서 며칠 동안 입에 익도록 연습 아닌 연습을 해야 했는데... 지금은 이 마저도 먼 과거의 일처럼 아득하다.
그래도 여전히 어진이 집현이를 떠올리면 마음이 뭉글뭉글하면서도 아련해진다. 그 시절, 너희를 뱃속에 품고 어디든 함께 다니며 수시로 그 이름을 불러주고, 흑백 초음파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어떻게 성장할지 궁금해하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에 잠 못 이루던 내 모습이 그 이름에 묻어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