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12
수고했다.
오늘 어쩌면 교사로서 마지막일지 모르는 학부모 공개 수업을 했다. 전교생 12명의 작은 시골 분교이기에 전체 세대수를 다 합쳐도 여덟 가구 밖에 되지 않는다. 전교생의 학부모님이 모두 오셔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 학교. 그런 학교에서 내 생애 마지막일지 모르는 학부모 공개 수업을 마쳤다. 교사는 수업으로 말한다고 했던가. 아이들과 행복한 성장을 하는 수업을 위해 학교의 선생님들과 수업 전 협의회도 여러 번 하면서 수업에 대한 준비를 열심히 했다.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더 욕심내고, 조금 더 잘하고 싶었지만 항상 아쉬움은 남는 게 수업인 듯하다.
오늘 수업은 기존의 한 반을 데리고 하는 평범한 40분의 수업이 아닌 열 두명의 전교생을 세그룹으로 나누어 네명씩 모둠을 만들고 네명의 선생님들이 미래교육과 관련된 수업을 하면서 순환식 수업을 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분교의 특성이 한 반에 네명, 다섯명, 세명 정도로 이루어진 소인수 학급이면서도 복식 수업이다 보니 일반적인 한 반을 대상으로 40분간 이루어지는 수업은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있기도 하고 한 가정에 학생들이 형제, 자매인 경우가 많아서 열두명이 한 가족처럼 지내는 문화가 더욱 자연스럽기도 하여 선생님들과 사전 협의를 하며 결정하게 되었다.
수업공개를 하게 되면 선생님도 긴장하게 되지만, 부모님이 와 계신다는 부담감에 아이들에게도 약간의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오늘 내가 준비한 수업은 미래에 살아갈 아이들이 배워야 할 코딩의 기초단계인 햄스터 로봇을 조종해 보고 협력하는 내용을 준비하였는데 스마트 패드를 활용하여 작은 햄스터 로봇을 이리저리 조정하여 축구 경기를 하는 경험이 나름 재밌고 흥미로웠나 보다. 아이들은 저마다 신나게 경기를 하며 환호성을 질러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수업이 되었던 것 같다.
요즘의 공개수업이란 것이 예전의 보여주기 수업이 아니라 평소 보여주고 싶었던 내용, 아이들이 흥미 있어하는 내용, 요즘 이슈에 관련된 내용들을 선별하여 수업을 하게 되는데 평소 항상 말이 많고 발표를 잘하던 우리 반 친구들이 긴장을 했는지 선생님의 질문에 ‘몰라요’ ‘기억이 안 나요’를 반복해서 살짝 당황하기도 하였지만 다른 확산적 발문과 주변의 것들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니 아이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순환식 수업을 하다 보니 세 모둠이 네 가지 수업 활동을 돌아오게 되어 중간에 한 타임 쉴 수 있는 시간도 있었는데 분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저마다 열심히 수업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고 교사로서 제일 멋진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공개를 준비하여 아침부터 교장선생님께서도 오셔서 수업에 대한 준비 내용들을 확인하시고 학부모님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시며 미래교육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분교가 몇 안 되는 학부모들이기에 교장선생님도 매주 오셔서 학부모님들과 편하게 이야기 나누시고 학부모의 요구는 무엇인지, 학교에서 학부모님이 해주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늘 대화를 하셔서 절로 학부모 교육이 되고 있다. 시골이긴 하지만 학부모님들은 여기서 계속 자라고 생활했던 분들 보다는 도시에서 살다가 아이를 낳고 시골로 이주하여 살게 되신 분들이 많은데 나름 분교 교육과정과 수업에 대하여 애정을 갖고 지지를 해주시는 편이라 교사들도 힘을 받고 더 열심히 교육에 힘쓰게 된다.
학부모님들은 저마다 수업 참관록을 써주시고 가셨는데 항상 부족한 모습이지만 긍정적으로 봐주시고 아이들의 사랑이 담긴 내용을 적어 주셔서 조금 더 노력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은 참 힘든 일이다.
매일매일 수업을 하지만 어떤 날은 아이들과의 소통도 엄청 잘되고 반응이 좋아서 나도 신나고 아이들도 재밌는 수업을 하기도 하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아무리 열심히 알려주고 설명하고 발표를 시켜도 아이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만 꿈뻑꿈뻑하고 있는 날도 있다. 매일매일 실패하고 매일매일 성공하는 것이 수업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나름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한 시간도 허투루 허비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초임 때는 수업공개가 전 교사들에게 의무가 아니었다. 동학년 체제에서는 학년 업무의 하나로서 수업공개가 있었기도 했고 보통 학년의 막내가 수업공개를 맡아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대표수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동학년 선생님들과 수업 안에 대한 협의와 연구가 무척 많이 이루어졌고 교실환경, 수업자료, 수업준비등을 동학년 선생님들이 열심히 도와주어 한 시간의 수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교원능력개발평가가 생겨나고 전교사가 학부모에게 수업공개를 함으로써 교원평가의 자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책이 변경되면서 모든 교사가 학부모공개수업과 동료수업 공개수업이 어떠면 일 년에 한 번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초임교사 때의 수업공개 에피소드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첫 번째는 과학실험 대폭발 사건이다. 6학년 과학의 산소발생 실험을 학부모 수업공개로 할 때였다. 아마도 교사가 되고 2,3년 차 때 일이었던 것 같은데 무슨 깡이었는지 초등 과학 실험 중 가장 난도가 높은 산소발생 실험을 사전 실험도 하지 않고 덜컥 당일날 ‘지도안 대로 잘 지도하면 되겠지’ 하면서 안일하게 수업을 진행해서 정말 말 그대로 ‘대폭발, 대환장’의 수업이 된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렇게 글로 쓰고 있지만 그 당시는 6모둠 정도로 구성된 실험조 모두가 산소발생 재료인 이산화망간과 과산화수소수를 반응시키는 과정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사방에서 ‘펑펑’ 소리가 나면서 실험 플라스크와 책상 위에서 연기와 거품이 튀어나오던 생각이 난다. 또 과산화수소수가 농도가 진했는지 학생들의 손에 묻어서 백화현상이 일어나 손이 하얗게 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물로 씻어도 씻기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몇 명의 여학생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뒤에 수업공개로 찾은 학부모님들의 흔들리는 동공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찌어찌 수습을 하고 수업을 마무리했지만 그 뒤로 수업 전에는 항상 그 수업 시 발생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사전 준비와 리허설을 꼭 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과학 실험 수업은 더더욱 그렇다.
두 번째 기억나는 수업공개는 다른 학교 체육관에서 체육수업하기다.
지금은 사라진 정책인 수업실기대회에 참여했을 때였다. 그 당시 나는 체육전담교사로서 수업실기대회에 지원해 수업공개를 하는 것을 준비하였었는데 체육수업을 할 당시 체육관이 없었던 학교인 탓에 비가 오면 무척 어려움이 있는 문제가 있었다. 수업실기 자체가 대회이고 평가가 있는 것이기에 심사위원이 학교로 직접 방문하여 수업자의 수업을 보고 평가점수를 매기는 시스템으로 진행된다.
수업실기는 보고서부터 학교 내 공개수업, 수업 심사관에게 수업공개 등 다양한 수업공개를 하게 되는데 운동장과 운동장 한편의 네모난 정자에서 수업을 준비하였던 나에게 심사 당일 비가 온다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심사위원 방문시간은 다가오고 일 년간 준비한 수업 실기를 포기해야 하나 하고 있을 때 그 당시 교감선생님께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체육관이 있는 학교에 연락하여 체육관을 섭외해 주고 학생을 이동할 수 있도록 빠르게 지원을 해주셨다. 부랴부랴 수업 자료들을 챙겨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남의 학교 체육관에서 체육관을 처음 이용하는 아이들과 함께 신나고 즐거운 체육수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던 기억이 난다. 그런 고생 덕분이었는지 그 당시 수업 실기에서 1등급을 받기도 하여 고생한 보람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교사가 가르치는 것과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하지만 학생의 배움이 의미 있도록 하는 것은 분명 교사의 잘 준비된 수업이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수업으로 말한다’라는 말처럼 요즘의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아이들과 소통하며 배움이 있는 수업을 위해 노력하는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알찬 배움으로 인재를 키워내는 우리 선생님들,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