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없이 엄마는 살 수 없어.
내게는 큰 딸, 작은 아들. 이렇게 두 명의 사람 아이와 막내아들 반려견 꼬비가 있다.
큰 딸은 태어나서부터 순둥이여서 먹으면 자고, 혼자서도 잘 놀고
자다 깨서도 울지 않고 혼자 노는 키우기 조금은 수월한 편이었다.
4년 뒤 작은 아들이 태어났다. 예민하기가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 아이는 입이 짧아 늘 배가 고파 징징 거렸고, 잠도 오래 자지 않으며
혼자서는 단 10초도 있지 못하는 아이였다.
큰 아이를 키웠던 나의 육아 경력은 둘째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것이 딸과 아들의 차이인지, 단순한 성격의 차이 때문인 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나는 둘째를 키우는 게 버겁고 힘들었다.
그렇게 둘째와 씨름하는 사이 큰 딸은 혼자 지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졌고 항상 엄마를 그리워하는,
하루 중 대부분의 순간 엄마를 동생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포기하는 아이가 되어갔다.
나도 알았다. 점점 큰 아이의 마음이 아파가고 있다는 것을…
둘째는 점점 고집이 세지고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더 늘어갔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내가 아이를 잘 못 키우는 건가 자책하는 날이 많아졌고, 그 자책감은 마음이 지쳐가는 큰아이를 볼 때 더 심해졌다.
나의 무능력함이 아이들을 망치는 건가 싶은 생각에 매일 마음이 힘들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아동심리상담소를 찾아 두 아이를 데리고 갔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엄마를 그리워하고 엄마의 빈 공간이 아이에게 허탈함을 만들어 자존감이 조금 떨어져 가는 상태였고,
둘째는 사회성이 떨어져 공감력이 부족해 자기 고집만 세져가는 중이었다.
아이의 사회성을 기르는 데는 단체 생활이나 돌볼 수 있는 대상을 만들어 주는 게 좋다고 해서
고민 끝에 반려견을 맞이하기로 결정했다.
(당시는 반려견은 애견샵에서 돈을 주고 데려와야 했고, 유기견을 입양할 수 있다는 사전 지식도 내게는 없었다.)
아이들과 남편에게 반려견을 키울 건데 푸들이었으면 좋겠다 설명하고, 가족 모두의 동의를 얻어 애견샵을 찾아갔다.
애견샵을 가던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는데 샵까지 가는 길에 두 아이 모두 차에서 잠이 들었다.
조심히 나만 먼저 내려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잠에서 깬 아이들을 남편이 데리고 들어 왔다.
사장님은 마음에 드는 아이를 안아봐도 된다며 손을 소독하고 안아보라고 했다.
처음 안아 본 강아지는 좀처럼 안겨 있으려 하지도 않고 이리저리 꼬물거렸다. 불편한가 싶어 얼른 내려줬다.
두 번째 안아보는 강아지는 가만히 내게 안겨 있고 눈도 마주치고 코도 씰룩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내 옆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무언가 신기한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는 둘째 아이에게
강아지는 스스럼없이 내 팔 위를 꾸물거리며 기어가 자연스럽게 둘째의 품으로 들어갔다. 감동이었다.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뒤돌아볼 필요 없이 그 강아지를 선택했다. 그렇게 우리 집 막내아들이 왔다.
이름(꼬비) 짓는 데만 수일이 걸렸고, 매일매일 집에는 웃음꽃이 늘어갔다.
큰 딸에게도, 특히 둘째에게도 강아지를 대하는 방법을 매일 가르쳤다. 특히 둘째에게는 더 많이, 자주 말해줬다.
-너는 이제 형아가 됐어. 막냇동생은 형아가 잘 돌봐주고 지켜줘야 해. 동물이지만 형아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으니 비밀 이야기도 얼마든지 해줘도 돼.
같이 놀아주고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하고 싶은 건 다 해도 되지만 동생은 약하기 때문에 세게 껴안거나 때리면 절대 안 돼. 약속!
꼬비는 아이들과 무척 잘 지냈고, 아들의 어린이집 적응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큰 아이의 공부를 봐주는 동안 둘째와 놀아주면서 나와 큰아이가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낼 여유를 제공해줬다.
내가 둘째를 보는 동안엔 큰아이와 놀아줬고 그렇게 아이들은 엄마가 없어도 꼬비가 있어서 괜찮다고 직접 말해주는 횟수가 늘어갔다.
더 놀라운 것은 둘째 아이의 생활 전반에 나타나는 변화였다.
꼬비뿐 아니라 가족 모두와 깊은 감정의 교감을 주고받게 됐고, 성격이 온화하게 변해가는 게 느껴졌다.
큰아이는 예전의 그 밝은 얼굴과 긍정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24시간 나만 바라보던 두 아이가 엄마 아닌 막냇동생을 더 찾고, 더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게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마음에 작은 쉴 구멍이 생긴 듯한 느낌이었다. 남편도, 다른 누구도 해주지 못했던 육아의 짐을 반려견이 덜어준 것이다.
꼬비는 나의 육아 동지였다.
그렇게 6년이 흘렀고, 여전히 꼬비는 둘도 없는 나의 육아 동지다.
사춘기를 겪는 딸이 감정의 기복을 느끼면 말없이 꼬비를 데려가 품에 안겨준다.
그렇게 몇 분만 지나면 아이의 표정은 다시 편안해진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둘째에게는 꼬비가 최고의 기상 도우미다. 꼬비를 둘째 옆에 눕히고 ‘형아야~ 일어나~ 나랑 놀자~’ 이렇게 말하면
엄마가 수십 번 일어나라고 말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다. 둘째는 잠에 취해 제대로 눈도 못 뜨면서 손으로 더듬어 꼬비를 안아주고 인사해준다.
요즘 부쩍 꼬비가 아픈 날이 잦았다. 나는 신생아 돌보듯 24시간 잠도 못 자고 - 아니 안 자고 - 돌봤다.
이 생명체가 … 분명 지구에서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만, 그날을 할 수만 있다면 하루라도 더 늘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이런 내 마음을 꼬비가 알까.
나의 육아 동지여. 부디 건강하고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주길.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