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
나는 전업주부이다. 하지만 ‘주부’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내게는 긍정적이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옛날 어른 남편들은 아내에게 “집에서 놀고먹으면서 뭐가 힘이 들어? “,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청소하나 제대로 못하냐?”, “대체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 은연중에 흘려들은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서 인지 ‘주부’라는 직업은 ‘집에서 놀고먹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들이 지겨웠고, 왜 나만 그 모든 일들을 도맡아 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으며, 피곤했고, 하소연할 곳 없는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주부’라는 게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서, 어떤 신청서를 작성하든 ‘직업’의 답은 ‘전업주부’였다. 다른 특정 직업이 없는 한, 나는 전업주부인 것이다.
은행에서 그 반갑지 않은 ‘주부’에 체크하고 집에 돌아온 날. 별안간 휴대폰을 집어 들어 ‘주부’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과연 저 ‘주부’라는 단어는 나를 정의하는 말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표준국어대사전] ‘주부’ - 1.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가는 안주인. 2. 한집안의 제사를 맡아 받드는 사람의 아내.
표준국어대사전 2번의 해석에 대한 ‘주부’는 배제했다. (저 의미의 주부라면 당장 사퇴하겠다.) 1번의 의미를, 마치 수능에 나오는 영어 지문을 해석하듯 천천히 곱씹었다.
‘한 가정의’ - 음. 그렇지. 나의 가족과 우리가 사는 이 집을 말하는 거겠지.
‘살림살이를’ - 매일매일 집안 살림하는 걸 말하는 거겠지.
‘맡아 꾸려가는’ - 살림을 맡는다… (내가 맡고 싶어서 맡았나? 그럼 주부는 집안일의 전적인 담당자라는 건가? 요즘 시대에?… 꾸려가는? 엉겁결에 전적으로 담당하게 된 살림이 잘 굴러가도록 꾸리기 위해서는 나의 노력과 의지를 불태워야 한다는 말인가?)
‘안주인’ - 집 안의 주인이라는 말이겠지. (이 단어는 마음에 드는데… 한편으론 책임이 따르겠다. 주인이니까.)
단어 해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주부’는 과연 나를 정의하는 단어가 될 수 있는지 내 기준에서 검증에 들어갔다. 그러다 ‘맡아 꾸려가는’이라는 대목에 멈췄다. 이 부분을 해석하며 드는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는데, 지금 내 심경을 말해주는 듯했다. 지금의 나는 내 ‘살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딘가 헝클어져있는 이 살림이 다 내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살림을 맡아서 하고 있지만 잘 해내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 더 싫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sns에 나오는 깔끔하고 멋들어진 집들처럼, 내 집을 내 힘으로 그렇게 만들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 결여된 자신감이 결국 ‘주부’라는 정의에 부정적인 감정을 드리운 것이다. 단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내 심리상태의 문제였다.
‘살림’은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을 뜻한다. 옛 단어 ‘살님’과 ‘하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단어인데, ‘살님’은 ‘살다’에 사동 접미사 ‘-이-‘가 결합되어 ‘살리다’가 되고, 여기에 명사 파생 접미사 ‘-ㅁ’이 결합하여 ‘살님’으로 되었다가 20세기 들어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형태인 ‘살림’이 되었다. 결국 살림은 사는, 살아가는 일을 말하는 건데, 나는 ‘살리다’라는 부분에 시선이 멈췄다. 생명을 살리는 일. 영혼을 살리는 일. 몸과 마음을 살리는 일. ‘살리다’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회복력, 이전보다 새로워지는 기운이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쓰러져 가고, 죽어가고, 무언가 부족해서 사그라져가는 것에 필요한 부분을 채워서 다시 생생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일. 살리다. 그렇다면 주부는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내가 살리는 대상이 나의 가족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런 의미라면 나는 당연히 내 가족의 ‘주부’가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랜 생각 끝에 내 생각을 버무려 ‘주부’라는 단어를 정의했다. ‘내 가족과 내 집을 살리는 일을 맡아서 꾸려가는 집안의 주인’. 이제야 마음에 들었다. 이런 뜻이라면 ‘주부’는 나를 대변해도 좋은 단어이다. 비록 지금 내 살림 실력이 비루하기 짝이 없지만, 내 가족을 살리는 일을 담당한다면 매일의 살림이 더는 지겹지 않게 다가왔다. 가족 한 명 한 명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채워주고, 건강한 식재료들로 정갈한 음식을 차리고, 집을 살린다는 마음으로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한다면. 어쩌면 나는, 내가 꿈꾸던 그런 주부가 되어있을 것이다.
글을 쓰다 잠시 집 안을 훑어보는 나의 눈길이 달라진 게 느껴졌다. 청소든 빨래든 요리든, 집 안에서 하는 나의 모든 일에 ‘살리다’라는 의미가 더해진다. 집을 살리기 위해 깨끗이 청소하고 싶고, 깨끗하고 단정한 옷, 아이들이 너무 행복해하는 보송보송한 이불을 주고 싶어 빨래에도 더 신경을 쓰고 싶다. 세상에서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맛있는 엄마 밥을 먹지 못하면 살 수 없으니 엄마가 외출하는 것도, 여행 가는 것도 싫다고 말하는 아들을 위해 건강해질 수 있는 간식과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나의 달라진 시선과 마음가짐이 내가 꾸린 살림을 누리는 내 가족에게 행복을 더해줄 것 같다.
14년째 해오던 일이 오늘 첫 출근하는 사람처럼 설렌다. 콩닥콩닥 심장도 뛴다. 내가 하던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과 자신감이 채워진다. 새로워지는 마음. 매일의 살림에 오늘부터는 ‘살리는 마음 한 스푼’을 담겠다. 앞으로 나의 살림은 정성스러워질 것 같다. 얘들아. 엄마 잘할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