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파위에서 숨고르기, 나의 취향 다이어리 쓰기
아이를 돌보는 것과 집안일, 요리, 청소, 빨래가 전부였던 시절. 나는 점점 우울해 졌다. 매일 반복되는 행동들 속에 하루가 쪼들리듯 바쁘기만 했다. 나의 모든 관심과 행동은 아이에게 집중되어 ‘엄마’라는 사람에 최적화되어 갔다. 그 하루들 속에 나라는 ‘여자’, 나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엄마와 주부’인 나만 존재하고 있었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비록 아이들이 어린이집, 학교에 가서 잠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있다고 해도, 그 일상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걸. 처음엔 (하루 중 단 10분만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의식조차 가지지 못했다.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그저 쉬고만 싶었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 생각, 아무 걱정하지 않고 잠만 자고 싶었다. 이대로 하루만 자고 일어난다면, 일어났을 때 깨끗하게 정돈된 집안이, 잘 먹고 잘 씻은 아이가 웃으며 놀고 있었다면, 나는 아마 당장 전쟁터에 나가서 세상을 구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어디 그렇게 할 시간이 있는가. 아침 출근 전쟁을 끝내고 아이를 보내고 집에 들어오면 전쟁이 훑고 지나간 집안이 눈에 밟힌다. 자고 일어난 모습 그대로의 이불들, 벗어놓은 잠옷, 쓰고 던져진 수건, 어지러진 화장실, 제자리를 이탈한 드라이기와 바닥에 흩뿌려진 머리카락들, 밥 먹고 치우지 못한 식탁, 쌓여있는 설거지들. 치워야할 집안의 흔적들은 집에 홀로 남겨진 나의 몫이었다. 어느 날은 정말 지치고 지겨워 그냥 모른채 쇼파에 누워버리기도 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내가 육아와 청소와 빨래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이 느껴진다. 그런 우울한 기분이 나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하찮게 만들었다. 그 우울함에서 벗어날 나만의 방법을 찾기 전까진 그냥 그렇게, 그 암울한 생각속에 나를 내버려뒀다. 너무 힘들어 그랬는지, 방법을 몰라서 그랬는지 이유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마냥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선 안되는 거였다. 내가 나를 일으키고 나는 괜찮다고, 다독였어야 했다.
지금도 가끔 그런 날이 있다. 그때는 우울한 생각이 드는 그대로 잠시 나를 내버려 둔다. 마음에 파도가 치는 상상을 한다. 지금 내 마음에는 태풍이 지나가고 있고, 엄청난 파도가 일어났다. 우울한 느낌과 부정적인 생각, 불만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잠깐 시간을 준 뒤, 쇼파에 누워 눈을 감고 숨쉬기에 집중한다. 먼저 숨을 내쉬는 것에 집중하면서 내쉬는 숨에 나를 절망적이게 하는 생각들을 몸 밖으로 밀어낸다.
‘나는 집안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휴~우’
‘나는 세상에 존재가치가 없는것 같다. 그렇지 않다. 휴~우’,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 아니다. 내가 나를 도우면 된다. 휴~우’,
‘오늘은 마음이 너무 지친다. 누가 나를 위로해줬으면 좋겠다. 아니다. 내가 나를 위로하면 된다. 휴~우’ .
이렇게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나씩 떠오르는데로 흘려보내면서 몸 밖으로 밀어낸다. 내 마음속에 드는 불만을 내가 들어주는 거라 생각하며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 낸다. 그리고 그 끝에는 남들이 아닌 내가, 나에게 어떤 해결책을 주고 싶은지 생각한다.
더이상 불만이 떠오르지 않으면 이제는 마시는 숨에 집중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마음에 담는다. 숨을 들이쉴 때는 ‘괜찮아. 그런 기분도 괜찮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하지만 나는 귀한 존재고 특별한 사람이야. 이 집안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지. 내 가족은 나를 의지하고 있고, 나는 내 가족들을 사랑해. 오늘은 새로운 날이야. 마음도 새로워질 수 있어’ 라는 생각으로 맑은 공기를 채워준다. 조금씩 마음이 진정된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나를 위해 오늘을 다시 새롭게 만들자’라고 결심한다. 의지의 주먹을 불끈 쥐고 쇼파에서 몸을 일으킨다. 오전 일과를 시작한다.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를 틀어주면 금상첨화다.
한시간 정도의 오전 일과가 끝났다. 이제부터는 나만의 시간이다.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는다. 간단히 피부화장을 하고 립스틱을 바른다. 시계를 차고 더하고 싶은 장신구를 걸치고 마지막으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마음에 든다. 오늘도 오케이.
특별한 약속도 없고, 어디 나갈 곳도 마땅히 없는데 굳이 화장 하고 옷까지 차려입을 필요가 있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지금은 나는 혼자지만 곧 있으면 아이들이 오고 저녁엔 남편이 돌아온다. 아이를 마중 나갈 때 예쁜 모습으로 나가면 안되는가? 남편이 올때까지 외출복을 입고 화장을 안 지운채 있으면 안되는가?
처음 내가 옷을 갖춰입고 아이를 마중 나갔을 때, 아이는 며칠을 계속 물었다. ‘엄마 어디 갔다 왔어?’ ‘누구 만나고 왔어?’ . 남편도 같은 걸 물었다. ‘오늘 어디 좋은데 갔다 왔나봐?’ ‘오늘 누구 만나고 왔나보네?’ - ‘아니. 하루종일 집에 있었는데? 내 시간을 보냈어.’ 가족들도 처음엔 왜 그러느냐는 듯 물었지만, 나를 예쁘게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아이는 엄마가 매일, 아침과는 사뭇 달라진 외모로, 자기를 데리러 나오는 걸 기대하기도 하고 좋아한다. 큰 아이는 학교 마치고 연락 한통 없이 친구를 데리고 집으로 온다. 아무때나 쳐들어와도 엄마가 잠옷차림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 부터 하는 행동이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밥을 차리다가도 바로 병원에 갈수 있다. 커피를 마시다가 오늘 문득 떠오른 구입해야할 물건이 있으면 커피잔만 정리하고 가방을 들고 나가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나를 꾸며주는 시간. 꼭 누굴 만나러 나가거나 굳이 어딜 다녀오지 않더라도, 매일 나를 보는 가족들에게 매일 조금씩 다른 버전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것. 그런 마음이 생기니 지금은 매일 옷을 갖춰입고 화장을 하고 있는게 자연스러워졌다. 부담이 되지 않는다. 굳이 새로 쇼핑을 할 필요도 없다. 내 옷장에 있는 움직임이 편한 원피스나 청바지에 잘 다려진 흰남방, 면바지에 질 좋은 니트. 내가 입는 옷은 이런 류다. 편하지만 나를 단정하게 해주는 옷. 내 취향이 반영된, 내가 좋아하는 색깔의 옷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곧 있을 나의 시간을 맞이하는 나의 준비활동이기도 하다. 굳이 옷을 갖춰입지 않더라도 나만의 시간은 얼마든지 보낼수 있다. 잠옷을 입은 채로 커피를 마실수 있고, 영화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예뻐진 나의 모습으로 나의 시간을 누리는 것은 다른 느낌을 준다. 내가 나를 대접하는 느낌과 더불어 집안일과 나의 시간을 확실히 구분지어주는 경계가 되기에 나는 나를 예쁘게 하고 나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
말끔히 치워진 거실로 나온다. 오전 일과를 끝낸 휴식의 시간이다. 얼음 가득 채운 아이스커피를 만들어 좋아하는 자리에 앉는다. 하루 중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 아이들, 남편, 집안일 걱정은 접어둔 채, 내가 나 다울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 그 시간이 길든 짧든 상관없이, 푹 빠져서 즐기기를 바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나의 취향을 발견하며, 좋아하는 것을 누리는 시간이다.
다이어리를 적어보는 것도 좋다. 해야하는 일, 한 일을 기록하는 것이 아닌 ‘매일의 나를 발견하는 다이어리’다. 막상 다이어리를 적으려 들면 대체 뭘 적어야 하나 막막할 때가 있다. 올해 나는 그 다이어리 데일리 칸에 나의 취향을 생각나는데로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나는 음악감상을 좋아한다. 책읽는 것을 좋아한다. 글쓰는 것이 좋다. 악기 연주하는 것이 좋다.’, ‘나의 음악 취향은 재즈, 댄스, 발라드이다.’ ‘나는 검정색 옷이 잘 어울린다.’ ‘나는 흰 남방을 입으면 기분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는 새우깡 매운맛이다.’ 등등. 별별 생각들을 떠오르는 데로 적었다. 한 두달 지난 뒤 처음부터 읽어 봤다.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재즈는 보사노바가 좋다.- 댄스는 누구누구의 무슨 곡이 좋다. ‘ 이렇게 모아서 보니 나의 음악 취향이 한 눈에 들어왔고, 나만의 플레이리스트가 생겼다. 청소시간이나 휴식 시간에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두면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들어있는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걸 깨달은 날 이후로 나는 매일 오전일과를 끝낸 후 커피타임에 꼭 다이어리를 들고 와 그날 떠오르는 나의 취향을 꼭 기록한다. 한달 뒤 모아서 보면 또 새로 발견된 나의 취향이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나만의 옷 취향 (색깔, 디자인, 브랜드 등), 나의 악세서리 취향, 나의 과자 리스트, 나의 독서 리스트 등을 가지고 있다. 이걸 바탕으로 나만의 시간을 즐긴다. 내가 나를 잘 아는 것 만으로도 자존감이 많이 올라갔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기를 그만 뒀다. 나는 나만의 취향이 있는 여자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기분이 우울할 때 그 우울함을 벗어나는 나만의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 나는 이렇게 나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고, 이런 내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취향도 같이 적어보면 좋다. ‘아들은 남색 옷이 잘 어울린다.’ ‘노란색 옷은 싫어한다.’ ‘딸은 검정색 반팔을 자주 입는다.’ ‘딸은 무채색을 좋아하고 튀는 색을 싫어한다.’ ‘아들이 어제 새로 만든 반찬을 잘 먹었다.’ ‘딸은 어떤 가수의 무슨 노래를 자주 듣는다.’ 이렇게 적은 걸 모아 놓고 보면 아이의 취향도 보이기 시작하고, 쇼핑을 할때나 반찬을 할때, 같이 여가시간을 보낼 때도 고민없이 바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긴다.)
나를 발견하면서 부터 조금씩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 내가 좋아하는 걸하며 행복해 하는 나를 자주 보고 싶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매번 그럴 시간적 여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그럴 시간이 생겼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할 수 있도록 미리 생각하고 있기로 했다. 엄마라는 사람들의 일상에 ‘여유’라는 단어는 쉽게 찾을 수 없으며, 엄마로서의 라이프는 그리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글쓰기에 집중하다가 아이가 배가 아파서 토했다는 전화에 바로 노트북을 덮고 달려갔다 오는 길이다.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고 해도, 일상의 변수는 항상 존재한다. 그럴 땐 ‘하아… 내 시간이 또 없어졌네’ 라고 우울해하기 보다는 ‘괜찮아. 이런 변수 쯤이야 얼마든지 지금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해보자. 내가 나에게 보내는 응원과 칭찬이다. 그쯤이야 괜찮지 않은가? 우린 엄마다. 내 아이를 지키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해 낼수 있는 엄마니까.
우울한 아침엔 쇼파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집안을 정리한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깨끗하게 할때도 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처럼.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옷으로 갈아입고 립스틱을 바르고 거실로 나온다. 좋아하는 차 한잔을 마시며 다이어리에 오늘 떠오른 나의 취향에 대해 적어본다. 그렇게 나를 알아가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시간을 이어간다. 내가 ‘나’와 잘 보내는 하루하루가 조금씩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