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의 가르침 - 양말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by 정연하게


깻잎논쟁이 핫하다. 내 애인이 같이 밥 먹는 내 친구의 깻잎을 잡아주면 된다 안된다로 논쟁을 벌인다. 이 논쟁의 포인트는 깻잎을 잡아주는 행동이 아니라 그 이면, 즉 내 애인이 나의 친구에게 어느정도의 관심과 친절을 베풀어도 되는지, 그리고 나는 그것이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지에 대한 것일 거다.


나에게도 오래된, 나 혼자만의 양말 논쟁이 있었다. 맨발의 아이들에게 양말을 신긴다 vs 아니다. 그건 아이들에게 필요한거다 vs 아니다. 라는 혼자만의 소리없는 전쟁.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먼저 양말부터 신는다. 발바닥 쪽이 두툼한 두꺼운 양말. 늘 발에 한기가 서려있는 나는 맨발로 찬 바닥을 밟을 때 더해지는 한기가 싫어 꼭 양말을 신는다. 발이 시려우면 왠지 온 몸이 다 추워지는 느낌. 아는 사람은 알지 않을까.

한여름에 양말을 신고 운동화를 신어도 크게 답답하지 않고, 에어컨을 켜면 또 양말을 신는다. 이 정도면 나의 양말 라이프가 어느정도인지 감이 올거라 믿는다. 내겐 숨쉬듯 당연한 양말.


발이 시려운게 싫기 때문에 겨울에 스키장에 가서도 스키는 타지 않는다. 딱 한번 난생 처음으로 스키를 탄 적이 있는데, 그때 신발에 스며든 눈에 양말이 젖고 발도 젖었다. 시린 발가락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은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무리 두꺼운 양말과 천하무적 방수신발을 구해준다해도 스키는 타기가 싫어졌다.


내가 이렇기에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침마다 아이들 발에 주섬주섬 양말을 신겨줬다. 애미로써 내 새끼들이 추울까봐 미리 따뜻하게 해주고픈 마음에서. 맨발은 내 눈에 추워보인다.


근데 이게 문제다. 아이들은 발에 열이 많은 편이다. 오죽하면 차만 타면 신발부터 벗는다. 신발에 갇혀 있던 열기 때문에 발이 덥단다. 단 5분 거리를 가도 신발은 벗겨져 있다. 나는 출발 하기 전, 꼭 잔소리를 해야 한다. ‘신발 벗지마. 금방 내릴거야.’


가끔 유난히 추운날은 아침을 먹으러 식탁에 앉은 아이들의 발을 먼저 살핀다. ‘또 양말을 안신었네.’ 속으로 생각하는 순간 이미 내 몸은 아이들 방에서 양말을 꺼내 오고 있다. 그리곤 식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큰 아이, 작은 아이 발에 주섬주섬 양말을 신겨준다. ‘발이 차가우면 온 몸이 추워. 감기들면 안돼. 양말 신고 있어.’ 라는 잔소리와 함께.

시큰둥한 아이들의 반응은 못내 서운했다. 내가 미리 알아서 챙겨주는데도 고맙다는 말한마디 없다니. 쳇.


채 한 시간이 지나기 전,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엔 벗겨진 양말이 뒹굴고있다. 식탁을 벗어 나면 양말도 벗어 제끼는 거다. 꼬깃꼬깃 뒤집혀 널부러진 양말을 보면, 가끔 속이 상했다. 나는 너희들 추울까봐 챙겨주는데, 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니. 하는 약간의 원망, 추워서 감기들면 어쩌려고 저러는거야 싶은 걱정.


혼자만의 불만이 말없이 쌓여 갈 때 쯤, 북금곰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다가 차가운 얼음 위를 걷고 있는 북금곰 사진을 보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양말을 강요하는건, 마치 북극곰에게 얼음은 차가우니까 맨발로 다니지 말라고 조언하는 격이라는 걸. 얼음과 차가운 물에서 생활하는 북극 곰은 발바닥에 얼음이 닿아도 익숙하기에 추운걸 느끼지 못할 거다. 오히려 양말이나 신발을 신으면 갑갑하고 생활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데 보는 내가 추워보이니 ‘너 맨발로 다니지 말고 양말 신어’하면 북극곰은 나한테 뭐라고 할까. 우리집 큰 아이 말투마냥 ‘킹받네’ 라고 할지도.


쓸데없는 걱정은 기우라고 했다. 그동안 차가운 발의 나는 뜨거운 발의 소유자들에게 쓸데없는 기우를 퍼부은 것이다. 맨발에 추운건 나의 이야기지, 그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대로 익숙하게 맨발로 발의 열을 식히고, 찹찹한 느낌이 좋아 맨발로 바닥을 밟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발이 뜨거우면 짜증이 난다는 사람들에게 굳이굳이 양말을 신겨 주는 내가 오히려 답답했을거다. 나같으면 진즉에 짜증 났을텐데. 왜 내 맘대로 가만 놔두질 않냐고. 싫다는데 왜 자꾸 그러냐고.

뜨거운 발의 소유자들은 나에게 ‘발 시원해지게 양말 벗어.’ 라며 강제로 내 양말을 벗긴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 생각이 드니 그동안 강제 양말 신김을 당한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립된 생각이 타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때도 있다. 나의 경험이 너의 경험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나의 상황과 너의 상황은 다르다. 그러니 내가 이러니까 너도 그럴거야 넘겨짚으면 안된다. 내게 적합한 친절을 베풀어 놓고선 너는 왜 고마워하지 않냐고 서운해해서도 안된다. 그 사람에게 필요하고 적합한 친절을 베푸는 것이 옳다.


북금곰의 가르침을 계기로 나는 더이상 아이들에게 양말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며 ‘발 시렵지 않나?’ 고개를 갸우뚱 할 뿐이다. 내 차가운 발만 챙기면 되지, 뜨거운 발의 소유자들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내 선입견과 몹쓸 과한 친절을 거두어 들였다. 선택은 그들의 몫이다. 괜히 편안하게 잘 쉬고 있는 그들의 발에 양말을 씌울 필요는 없는거다. 추운건 나지 그들이 아니다.


지금도 맨발로 대리석 바닥을 걸어다니는 아이를 보며 순간 움찔거리는 시선을 애써 딴 곳으로 돌려본다.


에휴. 추우면 알아서 신겠지.

양말이 얼마나 따뜻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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