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른 곳이 마음에 쏙 들 때
오늘은 열세 번째 날입니다. 또다시 짐을 싸서 체스키크룸로프를 떠나는 날이 이에요. 거의 모든 지역에서 2박을 했고, 크로아티아 풀라에서만 3박을 했기 때문에 이제 짐 싸는데 거의 달인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ㅎㅎ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정말 기대했던 마지막 도시로 가기 위해 졸린 눈을 떠 봅니다.
이틀째 먹는 조식입니다. 이번 여행 중에 체스키크룸루푸에서만 조식이 나오는 숙소였거든요.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빵과 커피 정도로 해결하거나 과일을 조금 먹거나 했었어요. 그러나 이 집은 유럽 치고는 조식맛집... 저는 커피와 토스트, 요구르트와 과일 정도로 아침을 시작해 보았습니다. 저는 어느 나라를 가도 토스트와 요구르트,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해요. 왜냐하면 일어나서 바로는 밥을 잘 못 먹기 때문에...ㅎㅎㅎ
숙소를 운영하는 부부와 작별인사를 하고 저희는 이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떠났습니다. 저희가 거쳐온 도시들이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 위주이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도시였다면 마지막 비엔나는 관광객도 많고, 웅장한 건축물도 많은 곳이라 더 기대가 되었던 것 같아요. 가는 길에 만난 마지막 자연풍경... 당장 비엔나에서 또 곧 한국에 가면 그리워할 것 같아서 사진을 남겨보았습니다.
그런데 운전대를 잡은 지노그림 작가님, 그 옆에 타고 가던 지금사진 작가님께서 새로운 도시에 쓱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 도시가 예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한 번 둘러보고 가자고요. 이 도시는 체코의 마지막 도시 노베흐라디 라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도시는 아주 작았는데 생각보다 아기자기하고 예쁘기도 해서 제 마음을 흔들어 버렸습니다. 햇살도 너무 따뜻해서 더 마음에 쏙 들었어요.
그런데 이 도시는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도시는 아니었나 봐요.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둘러보니 다 이 도시에 사는 분들 같더라고요. 저희는 그래도 이 도시에 왔으니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고 가기로 했죠. 얼른 광장에서 가까운 카페를 검색해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마셨습니다. 커피 맛이 매우 좋았어요.
커피를 한잔하고 나와서 도시를 걷다 보니 성당이 보였어요. 성당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안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저는 발길을 옮겼는데요. 문이 닫혀있는 거예요. 창살 안으로 보이는 성당이 매우 색다른 분위기를 주고 있어서 들어가 보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한참을 창살에 매달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내려와 문을 열어주는 거예요. 제가 매달려 있는 모습을 CCTV로 봤대요. ㅎㅎ
이곳은 실제로 매주 미사가 드려지는 성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수도원이 같이 운영되고 있었고요. 그래서인지 이 성당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엄숙해지지만 아주 편안해서 누구든 쉬었다 갈 수 있을 것 같은 공기가 가득했죠. 그렇게 그분의 안내를 받으며 내부를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촛불에 불도 켜고 기도도 하고 나왔습니다. 이 글을 볼 수는 없겠지만 문 열어주신 관리자분 감사해요.
위의 사진은 실제 성이었는데요. 제가 잘 찍지 못해서 실감 나진 않지만 이곳에는 요새가 있는 아주 커다란 성이 있었어요. 주말에는 관광객도 많이 오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는 성을 한 바퀴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생각지도 못하게 만난 장소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의 마트에서 남은 체코 돈을 다 탕진하고 가기로 했습니다. 바로 와인을 사기로 한 것이죠. ㅎㅎㅎ
제 기억으로 와인을 4병 정도 더 산 것 같은데요. 와인을 들고 나오는 지금사진 작가님의 해맑은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다음번에는 체코에 훨씬 더 오래 머물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이죠. 소박하지만 멋이 있는 나라가 체코인 것 같아요.
저희는 부지런히 달려 드디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했습니다.(오는 길에 주유소에서 빵과 음료수로 점심을 때웠는데 맛이 없었다는 것은 안 비밀...) 오스트리아에서는 호텔에서 묵게 되었는데요. 지금사진 작가님은 체크인을 하고, 지노그림 작가님은 차를 반납하고, 저는 쉬었습니다.ㅎㅎㅎ 그리고 바로 호텔 맞은편에 있는 지하철 역에 가서 이틀 동안 마음껏 쓸 수 있는 교통패스를 구입하고 지도도 들고 나왔어요. 이제 저희는 뚜벅이가 되었습니다.
비엔나에서 선택한 저녁은 감기기운으로 고생하는 지노그림 작가님을 위한 일식이었습니다. 약간 한식 같기도 하고 퓨전 같기도 했는데 아주 맛있게 잘 먹었지요. 무엇보다 여기 맥주도 너무 맛있어서 호로록 한 잔 원샷 해버렸지 뭐예요.ㅎㅎ 감기기운이 있는 지노그림 작가님만 맥주를 마시지 못했습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드디어 트램을 타고 구시가지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차를 렌트해서 다녔기 때문에 트램을 탈 일이 없었거든요. 처음 타는 트램에 신이 나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해외에 나오면 이 트램만이 주는 묘한 감정이 있잖아요. 여전히 저녁을 먹고 시간이 꽤 지나도 유럽은 밤 9시가 넘어야 해가 지기 때문에 사진에서는 낮처럼 보이지만 7시 정도 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트램에서 내려 처음으로 마주한 잔디 위에는 음악의 도시답게 높은 음자리표가 꽃으로 수놓아져 있었습니다. 저는 저 잔디밭에 앉아서 사진을 열심히 찍었어요.ㅎㅎ 이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포즈를 취하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이곳은 호프부르크 왕궁인데요. 정말 화려한 보르크 양식의 인테리어가 한눈에 봐도 딱 보이죠? 이 안으로 들어가야 구시가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정말 웅장해요. (이 말은 너무 넓고 커서 많이 걸어야 한다는 뜻^^)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에 있다가 정말 큰 건축물들이 있고 사람이 많은 도시에 오니까 정신이 없어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궁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말을 타고 이 주변을 도는 관광상품도 있습니다. 실제로 옆에 가면 냄새도 많이 나고, 충분히 걸어서 돌 수 있는 거리라서 이런 문화는 없어지면 좋겠다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말들이 다른 곳을 보지 못하도록 양 옆의 눈을 가려놨는데 그것도 안쓰러워 보였고요. 어쨌거나 웅장한 건물 다음에 또 웅장한 건물, 그 뒤에 또 웅장한 건물의 연속입니다. ㅎㅎㅎ
드디어 구시가지 골목에 들어왔어요. 명품 상점들이 많았고요. 관광객들도 많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아직 도시를 좋아할 나이인데 너무 사람 없는 대자연에 있다 와서 그런지 그런 곳들이 더 익숙해져버렸나 봅니다. (어릴 때 나는 곧 죽어도 불빛 반짝이는 도시에 살겠다고 말한 1인...ㅎㅎㅎ 나이가 들면서 취향도 변하는 것 같아요. 이젠 사람 많은 곳이 싫거든요. 부담스럽고.ㅠㅠ)
구시가지를 돌아보다가 예쁜 성당이 보여서 들어가 보았는데요.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간 것도 있었어요. 마침 음악회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비엔나에 오기 전 우리 모두 음악회 한 번은 봐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보통 이런 곳의 음악회는 티켓을 미리 예매해야 하기도 하고 드레스코드를 맞춰가야 해서 포기했었거든요. (거창한 드레스코드는 아니어도 재킷을 걸쳐야 하는 정도는 매너로...^^) 그런데 현장에서 티켓을 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얼떨결에 음악회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음악회는 현악 4중주로 이루어졌는데 성당이라는 공간이 주는 공간감, 울림이 음악의 소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아요. 첫 곡을 들었을 때의 울림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다음번에는 꼭 미리 예매해서 좋은 자리로, 오페라하우스에서 꼭 한 번 음악회를 듣고 싶다고 느끼게 하더라고요. 또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우리가 잘 아는 클래식 곡들이 연주되어서 듣는 내내 지루하지 않고 편안했어요. 이번 음악회 성공!
사진에 잘 담지 못했지만 비엔나에서 정말 유명한 성당이죠. 슈테판 대성당입니다. 음악회가 끝나고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내부에 들어가지 못했는데요. 지하에 묘지가 있고, 보물 박물관이 내부에 있어서 들어가 보고 싶었거든요. 내일 다시 이곳에 오기로 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저의 바람은... 이루질 수 없었습니다.ㅎㅎ 그러니 여행지에서는 가고 싶다면 눈앞에 보였을 때 바로 실행에 옮기셔야 해요.ㅎㅎ)
음악회를 다 보고 나오니 밤 10시가 다 되었는데요. 쌀쌀해진 날씨와 감기기운이 있는 지노그림 작가님을 위해 맥도널드에서 따뜻한 티를 사고, 저와 지금사진 작가님은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화장실도 잠시 들렀습니다. 맥도널드 화장실도 0.5유로를 내야 들어갈 수 있었는데 신기하게 저렇게 영수증을 줍니다. 그리고 주문할 때 가져가면 주문한 메뉴에서 0.5유로를 깎아줍니다. 메뉴로 리펀드를 해주는 것이죠. 다시 돈으로 주지는 않아요. 결국 저희는 미리 주문을 한 관계로 리펀드를 받지 못하고 저 영수증을 고이 한국까지 가져왔습니다.ㅎㅎ 다음에 가면 꼭 써먹을 거야...ㅎㅎㅎ
구시가지에서 돌아오는 길은 지하철을 타기로 했어요. 슈테판 성당 바로 앞에 지하철역이 있었고, 한 번에 숙소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비엔나의 지하철은 친절하지 않아서 역을 놓치지 않도록 집중하며 와야 했습니다. 언제나 해외에서는 트램보다 지하철이 더 어려운 것 같은 느낌스. 마지막 사진은 저희 호텔이 있는 역의 사진이에요. 저희가 숙소를 아주 잘 잡아서 비엔나 중앙역에서 지내게 되었죠. 비엔나 중앙역은 지하철, 트램, 유레일, 공항철도까지 다 연결되어 있어서 이동하기 아주 편리했어요.
숙소로 돌아와 그냥 잠에 들 수 없으니 우리는 또 방에 모여 와인을 마셨습니다.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 아까 체코에서 산 와인으로 1병만 마시고, 음악회 이야기도 하고, 내일 어딜 갈지 이야기도 나눈 뒤 잠에 들었어요. 마지막 도시에 오니 이제 정말 여행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커져만 갑니다. 아쉬움이 클수록 또 떠날 생각을 하게 하겠죠? 그래서 여행은 그 자체로 매력이 넘치는 것 같아요. 그럼 저는 내일의 이야기를 가지고 또 찾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