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와인이 맛있는 나라
벌써 열두 번째 날입니다. 믿어지지 않아요.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다니요. 하루가 쏜살같이 가버려서 너무 아쉽고 소중한데, 잡을 수 없어서 더 애틋한 것 같아요. 이렇게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또 하나 깨달은 건 여행을 하면서 무엇이든 내가 준비되어 있어야 주어진 시간을 효과적으로 쓰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번 여행은 너무 준비 없이 떠났는데요. 그래서 누리지 못한 것들이 제법 많더라고요. 반성을 하면서... 그럼 열두 번째 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위의 사진은 체스키크룸로프의 숙소에서 찍은 것이에요. 숙소 바로 앞에 큰 나무들이 만들어준 그늘이 있는 나무의자가 참 편안하고 좋더라고요. 요기 앉아서 두런두런 수다를 떨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ㅎㅎ 숙소에서 내려다보이는 체스키크룸로프의 구시가지 모습도 담아보았습니다. 여행하면서 매번 다음번엔 꼭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도록 공부해서 와야지 하는데 사진도 사실 센스라서... 타고나야 하는 것 같아요. ㅎㅎ 그리고 저희에겐 지금사진 작가님이 있기 때문에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 ㅎㅎㅎ 넘사벽 멋진 사진을 남겨주시기 때문이에요.
오늘은 다른 도시나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고 하루종일 체스키크룸로프에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탕진잼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조식을 먹고 조금 더 쉬었어요. 그리고 점심 먹을 시간보다 살짝 일찍 숙소를 나서 나왔습니다. 햇빛은 아주 따뜻하지만 바람은 차가운 참으로 이상한 도시 체코. 골목과 거리가 아주 예뻐서 마음에 쏙 들었던 도시입니다. (여자들이 특히 좋아한대요.ㅎㅎ) 도시를 관통하면서 블타강이 흘러서인지 더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노을 질 때 블타강 근처에 있으면 그렇게 예쁘더이다. ㅎㅎ
특별한 목적지 없이, 특별히 정한 것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골목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는데요. 마트만 보이면 일단 들어가고 보는 저희들.ㅎㅎㅎ 신기한 것은 체코의 아주 작은 도시에서도 한국 라면이 아주 인기가 많다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외국인들이 불닭볶음면을 사가지고 가는 것을 몇 번이나 목격했답니다. 저는 매워서 불닭볶음면은 아직 다 못 먹겠더라고요. 이럴 때 애국심이 뿜뿜 한다고 해야 할까요. K푸드가 더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 좋겠습니다.
저녁엔 동양인이 거의 안보이더니 낮엔 한국인 관광객도 제법 보였습니다. 거의 패키지여행으로 아주 잠시 들렀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팀이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체스키크룸로프는 도시가 아주 작고 구시가지도 작아서 이곳에서 1박을 하는 관광객은 많지 않았습니다. 잠시 거쳐가는 곳일 뿐이죠. 우리는 이런 곳에서 2박을 했던 것이죠. ㅎㅎ 고사우에서 하루 더 지냈어야 하는데 말이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서인지 괜히 좋았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사는 거 너무 질리고 뻔하고 싫기 때문이에요. ㅎㅎ
유럽에서는 아주 흔하게 보이는 음악가들. 이 분은 다리 위의 한가운데서 버스킹을 하셨는데요.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저도 다음번 여행에는 원지님처럼 단소라도 배워서 들고 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지 뭐예요.ㅎㅎㅎ 뭐든지 즐겁게 즐기고 노는 것에 진심입니다. 정말 다음번 여행에 무언가 하나는 꼭 들고 가리라 다짐해 봅니다. 신난다 신난다!
조금 걷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져서 점심을 먹으러 갔어요. 원래 가려던 식당에 갑자기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우르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저희는 급히 다른 식당을 찾았고, 지노그림 작가님께서 예전에 여행 왔을 때 갔던 레스토랑에 다시 가보기로 했습니다. ㅎㅎ 그랬더니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좌석도 그때 앉았던 자리에서 두 테이블 떨어진 곳에 착석해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골고루 시켜서 나누어 먹었는데 맛있었고요. 맥주도 아주 시원하니 맛있었어요. 유럽에서 낮마다 낮맥을 마시다 보니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점심에 맥주가 없으면 서운해요. ㅜ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우리는 또 가보지 않은 골목을 따라 걷기 시작했어요. 많이 걷지 않기로 했는데 오늘도 그 약속은 어김없이 깨지고 맙니다. 허허허. 그러다 사진에 보이는 성에 올라가면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지노그림 작가님이 저를 슬슬 꼬십니다. 저는 절대 넘어가지 않고 근처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놀고 있을 테니 다녀오라고 했어요. 어차피 지금사진 작가님은 사진을 찍으러 올라갈 것이니.ㅎㅎ 결국 지금사진 작가님 혼자 사진을 찍으러 올라가고, 저와 지노그림 작가님은 주변 카페를 찾아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합니다.
체스키크룸로프에서 가장 핫한 카페에 가보았어요. 오랜만에 아이스라테와 레몬치즈케이크를 주문했습니다. 사진에는 블루베리케이크로 보이지 않나요? 그래서 종업원을 불러 물어보았는데 레몬치즈케이크이라고 우기기에 그냥 알겠다고 했습니다. 안에 레몬치즈가 들어있다나 뭐라나.ㅎㅎ 뭐 또 까칠하게 따지는 성격은 아니라 그냥 먹습니다. 맛있었거든요.
그렇게 저는 키보드를 꺼내 글을 쓰고, 지노그림 작가님은 스케치북을 열어 그림을 그리다가 제가 그만 또 빙구짓을 하고 맙니다. 커피를 키보드에 다 쏟은 것이죠. 흑흑ㅠㅠ 역시 저는 빙구가 틀림없습니다. 어째 이번 여행에서 사고를 많이 안친다 했더니 어김없이 치고야 만 것이죠. 다행히 빠르게 티슈를 가져다주어서 처리를 잘했는데요. 키보드에 커피를 너무 많이 쏟았는지... 다음 날 켜보니 키보드가 작동되지 않아서 이번 여행에서는 정들었던 블루투스 키보드와 작별을 고하게 되었습니다.ㅠㅠ
여행을 하면서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이 있는데요. 여행 초반에는 지노그림 작가님이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면 제 표정이나 포즈가 굉장히 어색했어요. 뻘쭘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서로 친해지고 편해지기 시작하면서 제 표정과 포즈도 편안해지더라고요. 또 시키는 대로, 주문하는 대로 척척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빙구 같은 모습도 찍히면서 서로에게 웃음을 선물했던 것 같아요. 위 그림은 지노그림 작가님께서 저를 찍어주신 사진을 그대로 그림으로도 그려주셨네요. 역시 저는 뒤태 미녀임이 틀림없습니다. ㅎㅎ
평소에는 다른 도시로 이동하거나 이것저것 보러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항상 시간이 쫓겼었는데 이번 여행 처음으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천천히 도시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점심도 먹고 도시도 둘러보고 글도 썼는데 시간이 남아서 이번엔 가지 않았던 반대편 길로 걸어보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에곤쉴레가 살았던 집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세상에! 반대편으로 넘어와보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갈 뻔했던 것이죠. 사진에 보이는 성은 성 비투스 성당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또 산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걸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을 가득 받으며 돌아다녔으니 젤라토 하나 먹어줘야겠죠? ㅎㅎ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젤라토 가게에서 망고 젤라토를 선택! 저녁을 예약한 시간까지 아직도 시간이 남아서 광장에서 젤라토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요. ㅎㅎ 젤라토 하나에 행복을 느끼는 걸 보면 사실 세상 살면서 그렇게 심각할 일도, 내 인생을 뒤 흔드는 일도 전부 내 마음에서 만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조금 더 마음을 가볍게 살기로 했어요.
드디어 어제 미리 예약한 식당에 꼴레뇨와 모둠구이를 먹으러 왔습니다.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았는데도 꼴레뇨는 아주 부드럽고 아주 맛있었어요. 왜 그렇게 줄 서서 예약하고 오는 줄 알겠더라고요. 생각보다 가격도 저렴했고요. 체스키크룸로프에 가신다면 꼭 한 번 가보시기를 강추합니다. 이 꼴레뇨와 함께 어제저녁에 먹었던 흑맥주도 한 잔씩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좌석이 좁지 않았다면 조금 더 있다가 왔을 텐데 좌석이 좁고 불편해서 얼른 먹고 일어났어요. 아쉽...ㅠㅠ
저녁을 먹고 나니 체코는 다시 추워졌습니다. 저와 지노그림 작가님은 빠르게 숙소로 복귀를 했는데요. 지금사진 작가님은 노을 지는 사진과 야경을 찍고 돌아오시기로 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영상도 보내주셨는데 용량이 너무 커서 추가가 안되네요, 너무 아쉽ㅠㅠ 이 사진은 지금 저의 휴대폰 바탕화면이 되어있습니다. 일을 하다가 힘든 날 문득 이 배경화면 사진을 보면 힘이 나더라고요. 지금사진 작가님의 사진 속에 체스키크룸로프는 아주 예쁜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인가 봅니다. 감성 듬뿍...
지금사진 작가님께서 숙소로 복귀하고 난 뒤, 우리는 잔뜩 산 와인을 마시기 위해 방에 모였습니다. 한 병만 먹자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2병이나 마시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체스키크룸로프에서의 마지막 밤을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마무리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번 여행에서 낮에는 매일 맥주, 저녁엔 매일 와인을 마셨네요. 이번 여행 중에 먹은 맥주와 와인 중에 어디가 제일 맛있냐고 물어본다면 단언컨대 체코예요! 맥주도 와인도 체코가 제일 맛있었습니다. 체코 알코올 만세! ㅎㅎ
지노그림 작가님께서 신난 저의 뒷모습도 예쁜 그림으로 남겨주셨네요. 노을 지는 햇살의 색과 저의 옷 색이 데칼코마니인 것은 안 비밀. 이제 저희는 내일,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떠납니다. 체코 체스키크룸로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