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풀어놓고 키워야 제 맛
열째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여행이 하반기로 달려간다는 생각에 괜히 우울한 아침이었는데, 창 밖을 보는 순간!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모든 우울함이 사라졌습니다.
오스트리아 고사우는 한국에선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아요. 고사우는 알프스 산맥의 끝자락이기도 한데요. 할슈타트 근처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는 고사우 호수를
보기 위해 늦은 아침을 먹고 천천히 출발했어요.
드디어 고사우 호수를 다 내려다볼 수 있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동양인은 별로 없었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이미 와있어서 위쪽 주차장은 자리가 없었고, 조금 걸어야 하는 아래쪽에 주차를 하고 올라왔습니다.
사실 높은 곳까지 트레킹으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는데요. 저희는 주저 없이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습니다.ㅎㅎ 걸어 올라가는 것은 노 플리즈!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내려다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저는 또 기분이 한껏 업되고 말아 버렸습니다.
해발 1473m에 도착했습니다. 세상에나. 올라오는 길에 생각했어요. 지노그림 작가님은 이 높은 곳을 지금 걸어서 올라가 보는 것도 좋겠다고 한 것인가? 오 마이 갓!! ㅠㅠ 아주 높고 길게 뻗은 길들을 보며 저는 다음에 또 오더라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올 것을 굳게 다짐해 봅니다.
케이블카에 내리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은 이번 여행 중 제가 1등이라고 말할 만큼 너무 아름다웠어요. 이렇게 넓은 초원에 소와 말들이 자유로이 뛰어놀고 있는 것만 봐도 한국에서 가져온 나머지 걱정들이 다 사라지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는 케이블카 티켓을 구매할 때 정상에서 점심 식사까지 할 수 있는 티켓을 함께 구매했기 때문에 정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지금사진 작가님은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기에 담느라 바쁘셨고, 지노그림 작가님은 여기저기 어떻게 걸어서 갈 수 있는지를 알아보면서 우리를 인도했죠.ㅎㅎ
위의 사진에도 보이지만 정상에서 만난 송아지들을 보면서 송아지들과 동심으로 돌아간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신기한 것은 한 마리의 송아지가 계속 저를 따라오면서 제 엉덩이를 핥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ㅎㅎ 송아지가 예뻐서 더 같이 놀고 싶었는데 나중에는 너무 전투적으로 저를 따라와서 무서워서 도망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행복했던 찰나를 지노그림 작가님께서 예쁘게 그려주셨습니다. 물론 정상에서도 저의 인생샷을 남겨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셨죠. ㅎㅎ 이때부터 지노그림 작가님은 아이폰에 있는 시네마틱이라는 기능으로 동영상을 찍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동안 이 기능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했는데 이때부터 동영상 촬영의 마니아가 되어버렸답니다?ㅎㅎ
정상에서 한참을 걷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송아지들과 놀기도 하다가 드디어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지금사진 작가님은 오스트리아의 맥주도 한 잔 하고, 오스트리아의 전통 음식도 먹었습니다. 맨 첫 번째 사진인 콩으로 만든 스튜는 정말 생긴 것과 다르게 너무 맛있었어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먹지 못하고 남겼습니다.
점심을 먹고 여유를 즐긴 뒤에 저희는 호수 가까이로 내려와서 또 한참 동안 각자의 방법대로 사색을 즐겼어요. 저는 이 동네에 사는 꼬마아가씨와 한참이나 장난을 주고받았고요.ㅎㅎ 알프스의 끝자락이라 그런지 사진에도 보이시겠지만 아래는 화장하게 맑은 날씨이고, 산 위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아서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장관이었습니다.
원래는 고사우 호수에 갔다가 숙소에 가서 조금 쉬다가 잘츠부르크에 가기로 했었는데요. 고사우 호수에서 좋은 기운을 받고 갑자기 텐션이 올라간 우리는 바로 잘츠부르크에 가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는 아주 가까운 곳이에요.
잘츠부르크에 갔더니 이탈리아 와인과 음식을 길거리에서 행사처럼 판매하고 있었어요. 저는 이 거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선물할 와인을 하나 샀습니다. 맛을 본다고 했던 것이었는데,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생겨서 잔 와인도 1잔, 와인도 1병 받게 되었어요. 이 와인은 지금사진 작가님이 맛있게 드셨습니다.
잘츠부르크에서 아주 유명한 미라벨궁의 정원입니다. 너무 넓어서 사진에 다 담기지도 않아요.ㅎㅎ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아이들이 도레미송을 부른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죠. 고사우는 산 위에 있어서 그런지 약간 추웠는데요. 잘츠부르크는 한여름을 바로 경험하게 해주는 아주 덥고 후덥지근한 날씨였습니다. 미라벨궁의 정원을 다 돌아볼 생각은 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뜨거운 햇살을 피해서...
바로 젤라토를 사 먹었습니다. 너무 더워서 아무 데도 가기 싫었어요. 지금 보이는 그늘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좀 쉬고 싶었는데, 사실 이번 잘츠부르크는 제가 가보고 싶던 곳이 몇 곳 있어서 힘을 내어 움직여보기로 했습니다. (은근히 박물관, 전시관, 인물들의 생애, 미술관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늘에 몸을 잠시 숨겼다가 찾은 곳은 바로 모차르트의 집이었어요. 모차르트가 7년 동안 살았던 집은 박물관으로 변해있었고, 작곡가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을 전시해 놨다고 합니다. 그런데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저희는 들어가진 않았어요. 그래도 이렇게 귀여운 캐릭터도 보고, 기념품 샵도 잠시 돌아보고 나왔습니다. 한 사람이 살았던 곳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닌데 잘츠부르크에는 모차르트의 집도 있고, 생가도 있어서 2개나 보존이 잘 되고 있다는 게 대단하게 생각됐어요.
잘츠부르크의 아름다운 다리를 건너 반대편의 명품 골목, 광장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서 움직였습니다. 잘츠부르크의 다리에도 어김없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열쇠들이 끼워져 있네요. (저도 저런 열쇠를 끼워 볼 날이 올까요...? ㅎㅎ 이런 거 잘 안 믿는 편이라 아마 없을 것 같네요.) 버스킹 하는 음악도 듣고, 다뉴브 강도 바라보고, 더운 날씨도 이겨가며 열심히 걸어 반대편으로 넘어왔습니다.
잘츠부르크에서 나름 유명하다고 하는 카페에 아이스커피를 마시러 들어왔어요.ㅎㅎ 정말 저희가 여행하는 날 중 이 날이 가장 뜨겁고 더웠던 것 같아요. 우리는 아이스커피를 시켜서 마시며 잠시 더위를 피했어요. 쉬어가는 타임이니 수다도 떨고요. 유럽에서 느낀 것인데 아이스커피는 우리나라가 가장 맛있는 것 같습니다. 유럽에선 에스프레소와 콘파냐 이런 것들을 충분히 느끼는 것을 추천!
커피를 다 마신 저희는 명품거리를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잘츠부르크의 골목도 아주 예뻤는데요. 특히 간판들이 특색 있게 디자인되어 있는 것들이 인상 깊었어요. 마지막에 보이는 맥도널드 간판도 아주 멋졌고요. 다만 저희가 갔던 날이 일요일이나 명품거리의 식당과 카페 빼고는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서 그 부분이 아쉬웠습니다.ㅠㅠ
한편으로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주말에 문을 열 법도 한데 자신들이 만든 워라밸을 지키고, 삶의 균형과 규칙을 찾는 것을 유럽에 와서 거의 모든 도시에서 보다 보니 제 삶에 대한 규칙, 워라밸 등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 한번 적립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것들을 정확히 지키기가 어려운 부분이 더 많지만 요즘 들어 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조금씩 나이를 먹으며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가치 적립이 더 중요한 것임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에요.
저희가 거닐었던 골목에서 아주 반가운 태극기도 만났습니다. 태권도를 가르치는 곳이었는데요. 당연히 쉬는 날이라 문이 닫혀있어 가볼 수는 없었지만 태극기를 보고, 한국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반가워서 사진을 남겨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신기한 태권도 학원은 아래의 저녁 식사 이야기에 또 나올 예정이에요.ㅎㅎ)
예쁘고 아름다운 거리들을 지나 잘츠부르크 음악종 탑 앞에 왔습니다. 이곳엔 광장처럼 아주 넓은 공간이 있어서 관광객이 많았고요. 조금만 더 아래로 내려가면 모차르트 광장도 있습니다. 음악종 탑 안으로 들어가면 또 새로운 공간들이 나와요! 단점은 매우 덥고, 매우 넓다는 것.ㅎㅎㅎ
음악종 탑 앞에서 현악 4중주로 버스킹을 하는 청년들을 보았습니다. 음악이 듣기 좋아서 두 곡 정도 감상한 것 같아요. 저도 잘 다루는 악기가 있다면 버스킹을 시도해 보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상상을... 하지만 잘 다루는 악기가 없다는 것이 함정. 이럴 때 조금 아쉬운 것 같아요. (할 줄 아는 악기가 있긴 한데 버스킹 할 만큼이 안된다는 것이ㅠㅠ) 잘츠부르크는 음악의 도시답게 어딜 가든 버스킹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음악종탑 안으로 들어가면 성당도 있고, 박물관도 있고, 관공서도 있습니다.ㅎㅎ 저는 눈으로 구경만 하고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음악종탑 안은 공사 중인 곳도 있었고요.
광장에는 예쁜 엽서를 파는 곳도 있고, 음료와 젤라토, 빵을 파는 상점도 있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올리브 빵이 있어서 내일 아침으로 먹기 위해 하나를 구매했습니다. 사실 2개를 사려고 했는데 다른 종류 한 개는 솔드아웃이 됐다고 해서 1개만 구매. 굴뚝빵을 꼭 먹어보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젤라토만 먹고, 굴뚝빵은 먹어보지 못한 채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네요. 왜 때문인지 자꾸 손이 안 가더라고요. ㅎㅎ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입니다. 한참이나 잘츠부르크의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저희는 미리 봐두었던 중국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예전에 지노그림 작가님께서 왔을 때 먹었던 중국집인데 마파두부가 맛있었다고 하여 그 중국집을 제가 또 구글로 찾아낸 것 아니겠어요? ㅎㅎ 지노그림 작가님은 식당이름을 잊어버리셔가지고 ㅎㅎㅎ 그리하여 가게 된 잘츠부르크의 중국집! (이곳은 홍콩 분들이 운영 중인 식당이었습니다.)
유럽에 와서 처음 먹는 중식이었어요. 저희는 볶음밥, 볶음면, 마파두부밥, 만두를 시켜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음식이 생각보다 맛있어서 든든하게 잘 먹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곳에서 서빙하는 분과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가볍게 묻다가 이분이 아까 말한 태권도 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관장님은 51살이라는 TMI까지! 세상에나! 이런 우연이. 서빙하는 분의 말에 의하면 관장님은 굉장히 좋은 분이시고, 태권도도 아주 재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옆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던 8개월 된 아가, 로라도 생각나네요. 로라는 저를 보고 방긋방긋 웃어주던 어느 부부의 딸이었는데요. 생각보다 아가가 커서 돌이 지난 줄 알았는데 8개월이라고 해서 한 번 놀라고, 아들인 줄 알았는데 딸이라고 해서 두 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밥은 다 먹고 난 뒤에는 저랑 눈을 마주치고 장난치며 정이 들었는지 제 품에 안기기도 했습니다. ㅎㅎ
저녁도 든든하게 먹었겠다, 이제 다시 고사우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는 길에는 정말 근사하게 연주를 잘하는 버스킹 팀을 만났어요. 음악도 듣고 작지만 1유로도 넣어드리고 왔습니다. 오늘은 꼭 해가 지기 전에 고사우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던 저희들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른 출발했습니다. 어젯밤 집주인 할아버지가 내일 현금으로 숙소비를 받기로 했었거든요. 아침에 드리려고 했는데 이미 집에서 나가고 안 계셔서 저녁엔 드려야 하기에 일찍 서둘렀던 것이죠.
오늘도 어김없이 만보를 넘게 걷고, 아늑한 고사우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맥주를 사서 숙소에 들어오려고 했는데 오늘은 일요일. 모든 슈퍼, 마트가 다 문을 닫은 것이 아니겠어요?ㅠㅠ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유럽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 미리 사지 않았던 저를 원망하며 지노그림 작가님께 부탁을 드렸어요. 할아버지에게 숙소비를 드리며 미리 사놓은 맥주가 있다면 좀 얻어보라고요. ㅎㅎㅎ 그랬더니 우리 지노그림 작가님은 진짜 이 지역의 맥주를 3캔이나 얻어왔습니다! 만세! ㅎㅎ
숙소로 돌아와 씻고 다시 시작된 와인과 맥주타임.ㅎㅎ 할아버지가 주신 맥주도, 지금사진 작가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고른 와인 토카이도 너무 맛있어서 홀짝홀짝... 마지막엔 술이 모자란 지금사진 작가님은 그라빠 한잔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며 여유롭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이제 여행의 2/3가 지났네요. 이렇게 보니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렀던 것 같아요.
내일은 또 정이 잔뜩 들어버린 고사우를 떠나야 하는 날입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저희는 잠자리에 들었어요. 아래 그림은 지노그림 작가님께서 위의 그림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그려서 보내주신 그림입니다. 저는 두 개 다 좋은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