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도 트래픽이 있어요
유럽여행을 시작한 지 아홉째 날입니다. 오늘은 풀라를 떠나는 날이기도 해요. 그래서 아침 일찍 커피와 가볍게 빵 한쪽과 먹어치워야 할 시리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제가 산 오틀리... 어떻게든 최대한 먹어보려 했지만 저 시리얼을 끝으로 오틀리는 버리고 다음 도시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ㅠㅠ) 저 빵은 마트에 갔는데 어떤 여자 아이가 모조리 쓸어 담길래 정말 맛있는 빵인 줄 알고 저희도 하나 골랐는데 실제로는 아무 맛도 안나는 그냥 빵... 그저 빵...이었습니다. ㅎㅎㅎ 그래도 저는 잼을 발라서 맛있게 먹었어요.
제가 참 좋아했던 풀라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드디어 블레드 호수로 출발! 하는 줄 알았는데... 원래 피란을 가기로 했었는데 못 갔던 게 아쉬웠던 지금사진 작가님께서 어차피 가는 길에 피란이 있으니 잠시 들리자고 하여 슬로베니아 피란으로 경로를 변경했습니다.ㅎㅎ 그런데 하필이면 주말이라 차가 막히더라고요. 유럽에도 트래픽이 있다는 걸 이때 처음 알게 되었죠. 하지만 저희는 지노그림 작가님의 기지로 굉장히 빠르게 피란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이거 너무 웃긴 에피소드인데... 지노그림 작가님의 저작권이 있어서 여기서는 패스하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유럽은 어딜 가나 구름이 정말 예쁜데요. 저렇게 예쁜 구름과 초원을 보면서 달리면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지더라고요. 걱정도 사라진달까요. 아무래도 사람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시각적인 것도 무시할 수 없고요. 한국은 정말 좋은 나라인데 이젠 어딜 가나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푸르른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서 더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드디어 피란에 도착했어요. 이곳은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의 촬영지이기도 했어요. 글을 쓰면서 보니까 한국 드라마가 유럽에서 촬영한 것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피란 역시 슬로베니아의 작은 항구도시인데요. 일몰이 너무 아름다워서 방파제에 일몰을 보러 몰려드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합니다. 저희는 오전에 갔는데도 주말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엄청 많았어요.
피란은 우리가 갔던 로빈과 굉장히 닮아있기도 했는데요. 둘 다 항구도시이고, 일몰이 예쁘고, 휴양지라는 것이 공통점이었죠. 제가 로빈과 피란이 좋았던 이유는 아마도 동양인이 없었다는 점 때문일 거예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동양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들은 물가도 비싸고, 이들이 가진 고유의 친절함이나 특성을 알기 어렵게 될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한국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 잘 가지 않는 곳으로 여행 가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성벽에 올라가면 피란의 도시가 한눈에 다 보이는데요. 너무 아름다워요. 그리고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역사를 지키고 알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피란만 해도 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할 때 어떤 색으로 할지까지 모두 컨펌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전 것들을 파괴하지 않고 유지하기 위함 때문인 것 같아요. 이런 점들은 우리나라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한민국만의 고유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너무 높은 건물, 신식건물만 올리기보다는 옛것의 문화를 살리는 미가 필요하다고 느끼거든요.
피란은 현재는 슬로베니아에 속한 나라지만 이전에는 베네치아공화국,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건축과 음식문화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매우 비슷하고요. 신기했던 점은 피란은 시내의 광장, 공공장소, 식당, 카페 등에서 무료로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유럽과 다르게 화장실이 무료예요. 보통 다른 도시들은 작게는 50센트에서 많게는 1.5유로까지 내야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거든요. 관광객들을 위한 이런 작은 제도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재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지노그림 작가님은 피란에서 조금 체력을 아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지금사진 작가님만 살포시 사진을 찍으러 성당 위로 올려 보내고, 저희는 내려와 광장 카페에서 먼저 커피를 마시고 있겠다고 했죠. 유럽에서 만난 두 번째 아이스커피! 관광지라 그런지 아이스커피가 있었습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일단 주문주문! 원래는 블레드호수에 도착해 점심을 먹기로 했었는데 지금사진 작가님께서 조금 더 편하게 사진을 찍으시라고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저와 지금사진 작가님은 주저 없이 햄버거, 지노그림 작가님은 리소토를 시켰는데요. 여기 주방장이 실수로 파스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ㅎㅎ
리소토가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같은 느낌. 어쨌거나 성격 좋은 우리 지노그림 작가님은 허허실실 웃으면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냥 먹겠다고요. 그랬더니 웨이터가 가격을 디스카운트해주겠다는 게 아니겠어요?ㅎㅎ 우리 지노그림 작가님은 이럴 때 기지를 발휘합니다. 디스카운트는 됐고, 물 한 병을 그냥 서비스로 주겠니? 그랬더니 웨이터가 알았답니다.ㅎㅎ 저희는 그래서 물 한 병을 공짜로 받아먹었어요. 사실 유럽에서 제일 아까운 것 중에 하나가 물 값이거든요. 물이 비싼 곳도 있고요.
그리고 또 하나의 에피소드. 지금사진 작가님은 사진을 찍다 조금 늦게 카페에 도착해 저의 아이스카페라테를 보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더랬죠?ㅎㅎ 그런데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따뜻한 커피잔에 얼음만 몇 개 넣어서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사실상 미지근한 아메리카노... 지금사진 작가님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는데 이로써 아이스아메리카노에게 당한 두 번째 상처.ㅎㅎㅎ 어쨌거나 무던한 작가님들의 성격 덕분에 해피하게 마무리된 우리의 점심식사.
피란도 로빈 못지않게 골목이 아주 예쁩니다. 사실 일몰이 이쁜 도시라고 해서 저는 일몰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다음 행선지와 숙소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떠나야만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광장에서 열린 플리마켓을 구경하다가 저는 또 동양인 호구가 되어 와인을 맛보다 사고야 말았습니다.ㅎㅎ 어쩌다 엮인 지금사진 작가님은 그라빠를 사버렸고요. 우린 확실히 동양인 호구가 맞지 말입니다. 와인을 팔던 할아버지와 기념사진도 찍었는데 사실.. 우리가 꽤 많은 양을 사서 와인 할아버지는 오늘 팔아야 할 양을 다 끝낸 홀가분한 표정이었습니다. 우리로 인해 한 명이라도 행복했다면 그걸로 만족.ㅎㅎㅎ (와인이 맛있기도 했어요!) 그렇게 골목을 조금 돌아보다가 다음 행선지인 블레드 호수로 이동을 했습니다.
블레드 호수 가는 길에 만난 주유소, 그리고 편의점. 유럽에서 이동하는 거리가 꽤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유소를 생각보다 많이 들려야 했는데요. (저희가 렌트한 차가 하필이면 한 번 주유할 때 350km 정도밖에 못 간다는 점도 있었고요.) 그 김에 간식도 사 먹고, 화장실도 들리고 괜찮았던 것 같아요.ㅎㅎ 저는 이번에도 커피를 사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평소에도 커피를 워낙 좋아하는데 유럽에 가면 그 나라에 있는 다양한 커피들을 맛보고 싶어 지더라고요.
드디어 도착한 블레드 성입니다. 이 성에 올라가야 블레드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해서 도착하자마자 성에 올라가기로 했어요. 이 성도 입장료가 있습니다. 1인당 15유로. 유럽에 오면 거의 모든 건물은 입장료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데 생각보다 입장료가 좀 세서 당황한 적이 많았어요.ㅎㅎ 이런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관광지들의 입장료가 싼 편인 것 같기는 합니다.
블레드 성에 가기 전에 잠깐 검색한 결과, 주말에 방문하면 결혼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댓글을 봤었는데요. 저희가 주차장에 주차하고 티켓팅을 하는데, 딱 봐도 결혼식에 온 것 같은 사람들이 막 내리는 게 아니겠어요? ㅎㅎ 드디어 외국에서 결혼식 하는 장면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식은 아니고 뒤풀이 같은 것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혼하는 커플도, 결혼식에 참여한 커플이나 가족들도 너무 멋있었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요. 아름다운 장면이라 사진을 몇 장 찍어보았지만... 제 사진실력으론 분위기가 안 담기는 것 같고, 지금사진 작가님의 사진을 나중에 받는다면 공유해 드릴게요! 분위기까지 담아내는 지금사진 작가님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으니까요! ㅎㅎ
한참 동안 결혼식에 온 사람들도 구경하고, 블레드 호수도 바라보다가 성에도 들어가 봤습니다. 블레드성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인데 알부인 주교가 1011년, 방어 목적으로 지었다고 해요. 그 뒤에 보강을 해서 이중 성벽을 만들고 성을 잇는 다리도 만들어졌는데요. 이후 지진으로 피해를 입어 다시 복구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프레자마 성은 거주의 목적도 있어서 사람들이 성 안에서 생활을 했었는데, 블레드성은 거주 목적은 없어서 내부에는 볼거리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성 안에 어딜 가나 있는 예배실. 종교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성 위에는 카페도 있고 레스토랑도 있는데요. 레스토랑은 아까 사진에서 보신대로 결혼식 중이었기 때문에 지노그림 작가님과 저는 카페로 내려와 커피를 마셨습니다. 지금사진 작가님께서 저희를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어요.ㅎㅎ 저희가 옆에 서 있으면 왠지 모르게 빨리 찍으라고 닦달하는 것 같은 느낌일 것 같아서요. 카페의 가장자리는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데요. 저희는 운이 좋게 그 자리에 앉아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왜 때문인지 이 날 많이 피곤했던 것 같은 느낌스...
드디어 호수 아래로 내려와서 호수 옆을 거닐었습니다. 조정경기를 연습하는 어린 선수들도 볼 수 있었고요. 호수의 색이 정말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색이라 더 기분이 묘했던 것 같아요. 잔디 위가 마치 자기 집인 양 편하게 앉아있던 거위(?)도 호수로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거위(?)는 물 수도 있다고 해서 가까이 가지 못했어요. 아쉽...
시간이 늦어지게 되어 블레드 호수 근처에서 밥을 먹고 가기로 했는데요. 사실상 사 먹은 음식 중 처음으로 아시안 음식인 태국음식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구글로 검색했을 때 가장 평점이 높았고, 그나마 괜찮아 보여서 고르게 돼었는데 맛있었어요. 저 롤 빼고는 다 괜찮았습니다. ㅎㅎㅎ 유럽은 식사할 때 물이나 음료를 꼭 주문하게 되는데 저는 한국에서는 잘 마시지 않는 탄산음료를 유럽에서 원 없이 먹은 것 같네요.
식사를 하고 우리는 다음 숙소가 있는 오스트리아 고사우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공사를 한다고 도로를 모두 막아놓아서 정말 주차장이 되어버린 것 아니겠어요? 막혀도 막혀도 이렇게 막히다니... 제가 2시간 정도 운전을 했는데 체감상 10km 간 것 같은 느낌... 오버가 아니라 실제 20km 정도 갔다고 하더라고요.ㅠ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고... 숙소를 예약한 주인 할아버지에게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을 벌써 두 번째 했는데... 우리 모두 막혀버린 고속도로 덕분에 애가 타고 속이 타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ㅠㅠ
우리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곳을 약 5시간이 넘게 걸려 밤 12시 30분이 넘어서 겨우 겨우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 2시간만 운전하고 아주 푹 잤는데... 밤길을 운전한 지노그림 작가님과 그 옆에서 졸지 않고 지노그림 작가님을 보필한 지금사진 작가님이 아주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내비게이션이 자꾸 지름길을 알려주어서 그 밤에 비도 많이 왔는데 가로등 하나 없는 꼬불꼬불한 길을 운전해야 했거든요.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유럽의 트래픽을 뚫고 저희는 고사우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저희가 이번 여행 중 묵었던 숙소 중에 가장 크고 넓은 숙소였어요. 방도 3개나 있었고요. 우리가 많이 늦어서 짜증이나 화를 내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주인집 할아버지는 우리를 보자마자 허허 웃으며 집으로 안내해 주셨습니다. 그 웃음 한 번에 너무 좋은 사람이구나... 느껴져서 우리도 그냥 무장해제 되어 버렸어요!ㅎㅎ 너무 늦고 힘들어서 저희는 짐만 풀고 얼른 잠에 들었습니다. 사실 숙소가 너무 크고 주변이 아무것도 안 보일 만큼 캄캄하니까 처음엔 이 숙소가 조금 무서웠는데 지내다 보니 편안해지더라고요.
제가 위에서 언급했던 지노그림 작가님의 에피소드는 여기에 살포시 언급해 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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