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당은 어딜 가도 에피소드를 만들어요
오늘은 여행을 시작한 지 열하루째 날이에요. 오스트리아 고사우를 떠나면 이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숙소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부터 남은 음식을 열심히 처리했습니다. 한국에선 아침엔 커피 한 잔이 전부인데 여행을 하면서 오히려 하루 세끼를 잘 챙겨 먹기 때문에 건강해지기도 하고, 살도 통통하게 올랐습니다. (한국 가면 다시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ㅠㅠ)
오늘은 고사우 숙소를 떠나는 날이기 때문에 얼른 아침을 먹고 짐을 빠르게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비우고 비운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우리의 짐은 왜 이리도 많은지...ㅎㅎ 어쨌거나 짐을 챙겨 3층의 숙소에서 1층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고사우의 숙소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으로 무거운 짐을 들고 날라야 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고 맙니다. 허허허...
유럽은 보통 1층의 현관문도 열쇠로 잠가야 문이 잠기는 구조입니다. 무거운 짐들은 지노그림 작가님과 지금사진 작가님께서 들고 내려가고, 그래도 아직 남은 짐이 몇 개나 있었어요. 저는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제가 들 수 있는 만큼 가방을 들고 1층으로 따라 내려갔죠.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1층 현관문이 철컥하고 닫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평소와 소리가 조금 다른 거예요.
평소에는 아무리 세게 닫아도 열쇠로 잠그지 않으면 잠기지 않았던 현관문이... 세상에나... 그냥 잠겨 버린 것이죠. 그런데 우리 셋... 남은 짐이 있기 때문에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고 야무지게 3층에 그대로 열쇠를 두고 나온 것이었어요. 아무도 먼저 챙길 생각을 안 했던 거죠. 왜냐면 열쇠로 잠그지 않으면 안 잠겼으니까요. 허허허. 세상에나.
제가 마지막에 나왔으니 제가 살폈어야 했는데 괜히 도와주려고 했다가 문이 잠겨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야 말았습니다. 하필이면 바로 뒤에 사는 집주인 할아버지도 어딜 갔는지 차가 보이지 않더라고요. 우리는 옆집의 아기 엄마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집주인 할아버지의 연락처를 아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전화를 직접 걸어주시더라고요. 집주인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병원에 갔다가 오고 있으니 조금 기다리라고 합니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거, 지금사진 작가님은 마을 주변에 사진을 찍으러 다니시고, 지노그림 작가님은 집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 저는 다 돌아보지 못한 마을의 예쁜 사진을 남겨봅니다.
드디어 집주인 할아버지가 오셨어요. 이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오셨습니다. 할머니의 다리가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녀왔대요. 지노그림 작가님은 할아버지와 언어가 통하지 않는 대로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집주인 할아버지는 독일어만 할 줄 알고, 지노그림 작가님은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ㅎㅎㅎ 어쨌거나 유쾌한 할아버지에게 우리 또 만났으면 좋겠다, 고맙다는 인사를 유쾌하게 하고 고사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고사우에 와서 수제비와 김밥장사를 하며 살고 싶은 꿈이 생겼어요. 이 이야기는 다음번에 에피소드로 길게 다뤄볼게요.
드디어 고사우에서 약 20분이면 도착하는 할슈타트에 도착했습니다. 할슈타트는 많은 관광객들이 꼭 방문하는 곳으로도 유명하죠. 저희는 푸니쿨라를 왕복으로 탑승하기로 했어요. 저 높은 곳까지 걸어간다면 오늘 하루는 굉장히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죠.ㅎㅎ 무엇보다 날씨가 굉장히 더웠습니다. 푸니쿨라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지만 그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 같아요. 티켓을 끊을 때 소금광산에 가는 것까지 한 번에 끊을 수도 있는데 저희는 소금광산은 가지 않기로 해서 푸니쿨라만 결제했습니다.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면 정상에서 할슈타트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정상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여러 스폿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줄을 서야 할 만큼 관광객이 많았어요. 물론 동양인도 자주 보였습니다. 안 맞아, 안 맞아. 역시 동양이 많이 가는 곳은 저희와 맞지 않는 여행이라고 생각했어요. ㅎㅎ
정상에서 내려다본 할슈타트 호수는 너무 아름다웠어요. 아주 깊어 보이는데 잔잔하기까지 하다니. 나도 이 넓고 깊고 잔잔하고 묵직한 호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저는 자주 욱하고 자주 분노하고 금방 즐거웠다가 금방 슬퍼지는 일희일비의 아이콘이기 때문이에요. ㅎㅎㅎ
할슈타트 정상에서는 독일에 사는 아주 귀여운 8살 꼬맹이 필립스를 만났는데요. 사진을 찍는 정상에서 제 옆에 서더니 슬쩍슬쩍 제 옆에 오더니 먼저 말을 걸어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ㅎㅎ 그러더니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나이도 물어보고, 이름도 물어보고,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도 물어봤죠. 짖꿎은 지노그림 작가님께서 저와 결혼하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옆에 있던 아빠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노!라고 외쳤죠. 하지만 필립스는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하더라고요. 아주 개구쟁이 같던 필립스의 천진난만하고 멋진 웃음이 여전히 가끔 생각나고, 그때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제 마음에 동심과 행복이 같이 몰려오더라고요.
지금사진 작가님께서 스폿에서 천천히 여유 있게 사진을 찍도록 두고, 지노그림 작가님과 저는 정상에 있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셨습니다. 음식은 맛이 없다는 평을 봤기 때문에 저스트 커피만 마셨죠. 아주 깊은 향이 매력적이었던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어요. 그 사이 지금사진 작가님도 오셔서 같이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다가 할슈타트를 끼고 있는 동네를 보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죠.
다시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유럽의 특징 중 하나는 아주 높은 곳으로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푸니쿨라, 케이블카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 우리나라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빠릅니다.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았어요.ㅎㅎ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오면 할슈타트 호수와 소금광산을 대표하는 기념품을 파는 샵이 있어요. 저희도 이 샵에서 처음으로 아주 조금 쇼핑을 해 보았습니다. ㅎㅎ 사진에 보이는 것은 할슈타트의 맥주입니다. 사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미 술이 많아서 패스.
할슈타트 호수를 끼고 조성된 마을에는 관광객이 더 많았어요. 사실 전망대 위로 올라가지 않아도 이 마을을 가로지러 가면 호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도록 볼 수 있는 장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전망대보다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이제 슬슬 배가 고파진 우리, 마을을 둘러보며 식사할 곳을 찾아봅니다.
이번 유럽여행을 통틀어 가장 맛이 없었던 식당입니다. 저희는 음식을 고르거나 주류를 고를 때 실패한 적이 없었는데 딱 한 번, 바로 할슈타트였어요. 굉장히 밍밍하고 맛없고 심지어 가격까지 비싼 음식이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억지로 먹었던 기억이...ㅎㅎㅎ 심지어 스프라이트를 시켰는데 솔드아웃 되었다고 해서 추천해 달라고 해서 먹었던 음료는... 오스트리아의 대표 탄산음료였는데 약초맛이 나는 탄산음료... 정말 별로였다는...ㅠㅠ 하지만 할슈타트 딱 한 번 빼고 저희는 정말 음식과 주류 선택에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ㅎㅎㅎ
할슈타트에서 점심 먹는 제 모습을 지노그림 작가님께서 이쁘게 그려주셨어요. 이번 여행 중에 생긴 유행어가 또 있는데요. 바로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예쁠 수 있습니다."입니다. 지노그림 작가님이 그려준 제 모습, 그리고 사진, 영상들이 실제 저 보다 훨씬 예쁘게 나와서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정도였으니까요.ㅎㅎㅎ 이런 기술은 어디서 배우는 건지 궁금합니다.
호수를 끼고 있는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보았어요. 분명히 오늘은 많이 걷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다짐을 했는데, 우리 어쩌다 보니 또 많이 걷고 있더라고요. 할슈타트 마을은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 관광객들에게 조심해 달라는 문구가 많이 붙어있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서로 조심하고, 피해 주지 않으려는 모습들이 보여서 제게는 이런 현상들이 굉장히 낯설지만 멋지게 느껴졌어요. 우리나라에 이런 멋진 곳이 있다면 아마 관광객들의 등쌀에 못 이겨 주민들이 살지 못하고 다 떠났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아닐 수도 있지만요. ㅎㅎ
마을을 한 바퀴 다 돌고 주차장으로 가기 전, 오늘의 젤라토를 빼먹을 수 없죠. 특별히 이곳은 소금광산이 있어서인지 소금젤라토가 있다고 했는데 지금사진 작가님과 지노그림 작가님은 소금젤라토를 드시고, 저는 제가 먹고 싶은 맛을 뚝심 있게 골랐던 기억이 ㅎㅎㅎ 관광지라 그런지 그동안 사 먹었던 젤라토 중에 가장 비쌌던 기억이... 어쨌거나 젤라토는 언제나 옳습니다. 더운 날씨 덕분에 더 맛있게 먹었던 것 같아요.
이 사진은 뭐냐고요? ㅎㅎ 무슨 티켓 같이 보이지만 사실 화장실 영수증입니다. 유럽은 어딜 가나 이렇게 화장실 영수증이 나오더라고요. 신기해서 기념으로 가지고 있으려고 가지고 왔어요. 보통 화장실 사용료는 1유로 정도 하는데 이곳은 관광지라 그런지 0.5유로였습니다. (심지어 맥도널드를 가도 이렇게 화장실 티켓이 나온다는 사실...;;;) 색다르고 좋기는 한데 종이낭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할슈타트 호수와 작별을 고하고 우리는 체코 체스키크룸로프로 이동했습니다. 제가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체코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바꾸어놓았던 코루나가 정말 많이 남아있었어서 (체코는 아직 유로를 쓰지 않아요.) 이번 여행에서 체스키크룸로프에 들려 탕진잼을 하기로 한 것이죠. ㅎㅎㅎ 체스키크룸로프의 숙소는 노란 단독 건물로 아주 예뻤어요. 하지만 언덕 위에 숙소가 위치하고 있어서 오가면서 힘듦을 토로했던 기억이ㅎㅎㅎ
언덕 위의 숙소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경치는 아주 좋죠?ㅎㅎ 내려갈 땐 편한데 올라올 땐 너무 힘들었어요 흑흑ㅜㅜ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는 구시가지로 저녁도 먹고 산책도 할 겸 내려갔습니다. 알록달록한 체스키크룸로프의 건물들은 한순간에 저를 동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죠. 우리는 또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체스키크룸로프에서 우리가 첫 식사로 선택한 것은 베트남 음식이었어요. 이곳에서 유학을 했던 지인이 알려준 맛집이었죠. 원래는 꼴레뇨를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고 해서 꼴레뇨는 내일로 예약을 해두고 쌀국수를 선택했죠. 맥주 한잔과 함께 말이죠. 이 지역을 잘 아는 분의 추천이라 그런지 아주 맛있게 식사를 마쳤습니다.
맛있는 식사를 마친 저희는 또다시 구시가지 구석구석을 산책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사진 작가님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저와 지노그림 작가님은 앉을자리를 찾아 쉬어가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죠.
그런데 슬슬 해가 지니까 체코는 추워지는 거예요. 지금 6월인데 7도라니! 우리는 미리 챙겼던 카디건을 입고 오들오들 떨며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이번 여행 중 가장 추웠던 곳은 바로 체코!
체스키크룸로프의 밤을 이렇게 보낼 수 없어서 우리는 문을 연 곳을 찾아 맥주를 마시러 갔습니다. 이곳에서는 정말 탕진잼을 하기로 헸으니까요. 쌀국수를 너무 배불리 먹은 탓에 맥주와 가벼운 햄치즈 안주를 시켜 먹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흑맥주가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너무 맛있어서 놀랐어요. 배만 안 부르면 몇 잔 더 먹고 싶었는데 배가 불러서 더 못 먹은 것이 아쉽습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예기치 못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추억이 되고, 우리는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그 힘으로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유난히 이번 여행에서는 예기치 못한 좋은 추억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아래에 지노그림 작가님의 글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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