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딸아이의 아이돌 사랑
초등학교 5학년이었나.
딸이 세븐틴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도 세븐틴 노래를 다 외웠다.
‘아낀다’, ‘만세’, ‘예쁘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설거지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냥 귀엽다고 생각했다.
포토카드(줄여서 포카라고 하더라)를 모으기 시작했을 때도, “요즘 애들은 이것도 모으는구나”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 날, 포카가 책상 아래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세븐틴 오빠들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1년 후—
작년, 진짜 사랑이 시작됐다.
이름하여 NCT WISH.
처음엔 노래로 시작하더니, 어느 날부터 택배가 늘었다.
포카, 인형, CD, 굿즈.
책장 위에는 팬심의 상징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급기야 “이건 공간이 부족해”라며 책장을 새로 들였다.
브로마이드, 인형, 포카, CD까지 진열해두고는 매일 자랑하듯 보여준다.
그리고 결정적 한 방.
대학 시절 내 추억의 아이템,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가 굿즈로 재출시된다는 소식에
그 녀석은 거금 10만 원을 들여 구입했다.
“엄마, 이거 레전드야!”
내가 “친정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라고 중얼거릴 틈도 없었다.
이쯤 되면 ‘찐 팬심’이다.
덕질 경제도 척척 해낸다.
원픽 멤버가 아닌 포카는 되팔고, 필요한 건 공동구매로 사고,
천 원, 이천 원씩 굿즈를 팔아 다시 덕질 자금을 마련한다.
나는 개발자인데, 얘는 이미 자금 운용 전문가다.
그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내 어린 시절이 스친다.
박상원.
드라마 인간시장 속, 교도소 담벼락 위에서 노래 부르던 그 장면.
그때 텔레비전 앞에서 나는 완전히 넋을 잃었다.
잡지를 사서 받은 브로마이드를 책장 안쪽에 몰래 붙여두곤 했다.
그게 내 첫 ‘성스러운 팬심 공간’이었다.
소방차의 이상원.
세상에, 그 눈웃음!
TV에서 ‘어젯밤 이야기’를 부를 때마다 심장이 덜컥거렸다.
소방차 오빠들이 춤출 때마다 거실 카펫이 내 무대였다.
엄마가 문을 열면 황급히 국어책을 펼쳤지만,
그때 이미 내 마음은 무대 한가운데였다.
그리고 유덕화.
이분은 말 그대로 내 원픽.
영화 열혈남아에서 기억을 잃고 “아화—”라고 부르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진다.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으로 필통을 만들고,
카세트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노래를 들었다.
그 시절 나는 모든 걸 몰래 했다.
공부만 허락되던 집에서,
작은 브로마이드 한 장이 나만의 비밀 우주였다.
지금 내 딸은 다르다.
관대한 엄마를 만나, 떳떳하게 덕질한다.
책장 위에 팬심을 전시하고, 나한테 멤버 이름 퀴즈를 낸다.
세상 참 좋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NCT WISH 콘서트 예매가 열린다는 소식이 떴다.
딸은 물론이고, 나도 긴장했다.
수많은 예매 전쟁을 치른 경력자(티켓, 기차표, 유희열 콘서트까지 거친 사람)로서
이번엔 나도 한몫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결과는…
헐, 4천 번대 대기.
그런데 이게 웬걸.
좌석을 클릭하면 사라지고, 또 사라지고.
결국 나도 실패, 딸도 실패, 딸 친구도 실패.
일만오천 석 중 4천 번대가 실패라니.
티켓베이를 보니 15만 원짜리가 40만 원이라니.
업자들의 매크로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딸은 울분을 토했다.
나도 속이 부글부글했다.
아이들이 봐야 할 공연인데, 어른들의 돈싸움이 되어버린 세상이라니.
“엄마, 이건 불공평해!”
“그래, 불공평하지. 나도 이해 안 돼.”
암표는 사지 않기로 했다.
우리의 덕심은 순정파니까.
그러다 한 달쯤 후, 반전이 생겼다.
롯데시네마에서 콘서트 실시간 중계!
딸은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날 밤 광클릭 전사로 변신했다.
이번엔 1분 만에 성공!
영화관 예매 성공한 사람처럼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됐다! 엄마 해냈다!!”
딸은 나를 끌어안고 뛰었다.
그날 이후 우리 집은 카운트다운 중이다.
콘서트까지 일주일.
딸은 매일 플레이리스트를 돌리고,
나는 포카 정리하는 손길을 보며 살짝 웃는다.
세상은 변했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다.
그때의 내가 그랬듯,
딸도 지금 자기 세상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덕질은 세대를 잇는다.
다만, 나는 이제 팬매니저로 전직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