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그림자

by 김밍키

남편과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

추어탕 하나, 돈가스 하나 주문했다. 추어탕과 돈가스의 조합을 처음 메뉴판에 올린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서로 다른 계열의 맛을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나란히 앉혀놓는 감각. 알맞게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둘을 아우르는 눈. 분명 천재일 거야.

들깨가루를 더 쳐서 국물을 한 숟갈 뜬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지나며 속을 덥힌다. 목구멍의 때를 벗기는 듯했다.


교회에선 새로운 소그룹을 배정받았다.

첫 모임에 나갔다. 다른 분들은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나까지 셋뿐이었다. 간단히 예배를 드리고 한식 뷔페에서 밥을 먹고 카페까지 갔다. 권사님은 따뜻한 라떼를 드셨는데 일자 커피스틱을 입에 물고 고개를 휘휘 돌리며 거품을 빨아 마시는 모습이 귀여워 집사님과 같이 웃었다. 거품으로 무언가 조각해 내는 예술가 같았다.


이 교회에서 나는 남편과 함께 가장 어린 장년이다. 아직 결혼해서 올라온 청년들이 없어서 사십 대 초반의 셀에 들어갔다. 셀장님은 나와 띠동갑. 큰 언니들 사귀는 마음으로 나갔지만, 편치 않은 마음도 어쩔 수 없었다. 비슷한 나이의 친구를 만나 낯선 곳과 자연스레 친밀해지기를 기대했으니까.


그래도 이사 온 후 동네 사람들과의 만남은 처음이라 왠지 모를 세계와의 연대의식마저 느껴진다.

남편이 아닌 다른 이와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가 고팠던 걸까. 나도 몰랐던 내 안의 허기진 외로움이 가라앉았다. 언제는 사람멀미 증세를 느끼며 혼자만의 오랜 독대를 꿈꿔왔으면서. 집에만 널브러져 있으니 마음에 알게 모르게 더께가 쌓였던 걸까. 그저 무구한 큰 언니들과의 이야기가 즐거웠던 것일 수 있다.


"MBTI는 뭐예요?"

통성명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질문이었다. 남편은 외향형, 나는 내향형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그게 제일 이상적인 것 같아요. 누군가는 밖으로 이끌고,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 말을 들으니 늘 나를 부드럽게 밖으로 끌어내줬던 남편에 대한 애정이 피어올랐다. 어떤 감사의 말을 장황하게 나타내고 싶지만 도무지 정확히 표현이 안 되는 그런 사랑 같은 감정이. 권사님의 시선은 돈가스 추어탕 조합을 찾은 발명가 같았다. 알맞게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둘을 아우르는 눈.


“머리 색 자연이에요?”
집사님이 문득 주제를 휙 돌리듯 물으셨다. 미용실에 가면 거의 빠짐없이 듣는 말이다. 본인 미용 인생에서 이렇게 밝은 자연갈색은 처음 본다고. 하지만 일상의 사람들과는 그런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섬세하게 바라봐주지 않으면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집사님과 권사님은 그걸 놓치지 않으셨다. 과하게 놀라시면서까지 말이다. “너무 예쁘다”를 연발하셨다. 부끄러우면서 기분이 좋았다. 그들의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씨가 고마웠다.


누군가의 맑은 시선에 비치면 내 마음도 함께 닦이는 순간이 있다. 때마침 그날 하늘에 걸린 보름달도 비에 씻긴 유리창처럼 맑다. 시력이 좋았다면 절구를 찧는 토끼도 보였을 것 같다. 하루아침에 완성되진 않지만 천천히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공동체와 한 덩어리가 되는 일. 흐리고 이지러졌던 달이 어느새 밝고 꽉 찬 보름달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옆에 있는 달그림자 같은 남편이 달빛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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