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기저귀갈이대가 배송됐다. 남편이 뚝딱뚝딱 조립했고 완성 후 자리에 위치시켰다. 예꽁이의 첫 가구라고 할 수 있었다. 중고거래를 할까 고민했지만 그냥 질러버렸다. 짧은 기간밖에 쓰지 못하는 물건이라 해도 우리 아기한테는 어연번듯한 것들만 주고 싶다.
수입은 없고 사야할 건 산더미이다. 경제적인 것들을 내려놓고 이 기간을 온전히 즐기자 다잡지만 마음이 자꾸 옆길로 샌다. 돈이 불안을 주무르고 빚어낸다. 오랫동안 쉬지 않고 일하다가 처음으로 오랜 쉼이 주어지니 관성이 작용하는 걸까. 수나롭게 진행되는 것 같다가도 이렇게 한 번씩 턱에 걸려 삐그덕댄다.
요즘의 복병은 뭐니뭐니 해도 머니다. 한밑천 잡아 좋다는 아기용품들로 싹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점점 욕심만 커지는 내 꼴이 내가 봐도 참 몰골사납다. 회심의 기저귀갈이대를 바라보며 씁쓸한 자조가 움튼다.
하루의 첫 행동이 나머지 시간을 지배한다고 한다. 요즘 내가 눈 뜨자마자 하는 것은 주식시장 확인. 마치 전문 투자가마냥 이 리듬이 몸에 익었다. 소소한 용돈벌이로 시작했지만 다른 일들을 방임한 채 화면 속에 빠져 있기도 한다. 별다른 지식이나 기술, 자본도 없이 뛰어들었는데 실현손익이 괜찮았다. 호황을 맞은 주식시장 덕분에 많은 이들이 행복해 했고 나도 그중 속했다. 우상향으로 오르는 층계참에서 욕심이 피어났다.
암막커튼 때문에 오전인지 오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끄느름한 방에서 불도 켜지 않고 휴대폰을 들여다 본다. 바깥은 지금 단풍이 절정이라는데, 내 왼쪽 눈 흰 자에는 주름 같은 세로 선만이 담겼다. 눈이 건조하다는 걸 경고하고 있었다. 목에는 목걸이 같은 주름들이 짙어졌다. 적절한 지점에서 멈출 줄 알았어야 했다. 매수 타이밍을 헛다리 짚은 종목의 주가는 며칠째 추풍낙엽이다. 물론 우량주이기 때문에 반등할 거라는 믿음은 있다. 큰돈을 넣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숫자를 보며 내 마음은 쉽게 흔들린다. 인내심을 시험 당하는 것 같기도, 분수에 넘치게 탐했던 마음을 질타 받는 것 같기도 하다.
달력이 넘겨지고 또 절반에 다달랐다. 내년 다이어리를 준비하라는 광고들이 자꾸만 뜬다.
그러나 그냥 허비해버린 것 같은 하루들이 이어진다. 하루하루를 잘 완성하기 위해 이제는 첫 행동을 바꿔야겠다. 절망의 동기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안의 욕심이었다. 잎이 떨어지는 건 나무가 병들어서가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비워야 채워지는 것이 있다는 걸 가을이 알려준다.
세탁기에서 빨래물을 꺼내는데 울긋불긋한 빛이 눈길을 끈다. 철제 난간과 방충망을 뚫고 한 폭의 유화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또 나는 이런 순간을 놓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쳐 놓은 철창 같은 일상에서 잠시 걸어나와야겠다. 단풍이 손짓하는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