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꺼내먹어요

by 김밍키

추수감사절, 교회에 초청 목사님이 오셨다.

‘행복’, ‘은혜’ 등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CCM을 다수 작곡한 분이라고 했다. 교회 음악계에서는 유명한 분이라지만, 나는 그쪽엔 문외한이라 공지를 들을 때에도 “누군가 오시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아무런 기대 없이 긴 의자의 빈자리에 앉았다.


사모님과 가수 한 분이 함께 찬양팀으로 오셨고, 중간중간 스토리텔링과 성경 말씀을 곁들여 한 시간가량 콘서트 같은 예배를 인도하셨다. 대부분이 아는 노래였다. 전주가 나올 때마다 놀랐다.

“이 곡의 원곡자가 저분이라고?”

별생각 없이 버릇처럼 교회에 출석한 나는 졸지에 큰 행운을 받았다.


두 번째 순서의 곡이었던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으면서 울었다. 작은 나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벅차올라서였다. '어머니의 기도'가 흐를 땐 옆에서 남편이 훌쩍거린다. 슬쩍 옆을 보니 눈까지 지그시 감고 있다. 그의 순수한 영혼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다시 앞을 보고 집중하려는데 남편의 모습이 자꾸 겹쳐 보여 코허리가 찌잉해진다. 겨우 그쳤던 눈물이 또 나려 한다. 다행히 다음은 신나는 곡이었다. 울다 웃으면 안 되지만 손뼉 치며 따라 불렀다. 뱃속 꼬마 악동도 기분이 좋은지 춤을 춘다.


예배가 끝나고 보통은 내가 강요하듯 피드백을 요구한다. "오늘 말씀은 어땠어?" "뭘 느꼈어?"

건강한 대화가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초신자이고 말주변 없는 남편은 그런 질문을 늘 부담스러워했다. 당연히 그의 입술에선 억지소리만 나왔고 나는 매번 실망하는 일이 반복됐었다.


그런데 이날은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연신 너무 좋았다면서 느낀 점을 술술 얘기한다.

"이래서 민경이가 날 교회에 데려왔구나 싶었어. 신앙의 가치를 알게 됐어.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그 고백에 또 한 번 콧등이 저릿하다. 내가 가진 의도를 정확히 해석받는 순간이었다. 가을바람이 머리카락을 나부낀다. 내 안에 감사라는 낙엽이 곱게 쌓이는 것 같았다. 감사하고 감사했다. 이 장면을 외울 수 있을 때까지 되풀이하고만 싶어진다.


곡교천 은행나무길. 끝없이 늘어선 노랑 가로수를 산책했다. 사람이 많았지만 길이 워낙 길고 넓어서 방해받지 않고 인생 사진들을 건졌다. 은행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걷다 걷다 조금 구수한 부분이 한 번씩 있는 정도. 황금물결에 몸을 싣고 깊은 행복을 느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을 밟으며 떨어져도 아름다운 존재를 짐짓 확인한다. 노랑이 너울거리는 바다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음을 기억하리라 다짐한다.


주말이 지나면 임신 후기에 접어들고 추운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겨우내 꺼내 먹을 곡식을 다 모아둔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이토록 풍성한 추수가 있었던가.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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