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풍물시장
갯벌의 아름다운 일몰과 아시아 최대 길이의 루지.
저마다 강화도 하면 떠오르는 게 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강화는 뭐니 뭐니 해도 밴댕이다. 작년에 강화풍물시장에서 처음 맛본 밴댕이에 깊이 빠져들고선 첫사랑 그리워하듯 밴댕이를 그리워했다. 집과 거리가 꽤 있어서 또 먹으러 올 기회가 쉽게 생기지 않다가 약 1년 만에 드디어 강화풍물시장에 다시 오게 되었다. 맛은 가물가물 할 수 있어도 그때의 감동은 잊지 못한다. 왜 나는 이걸 이제야 맛본 것인지, 어떻게 구이와 무침, 회의 한상이 이토록 조화로운지. 그 감동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두근두근 설렜다. 그리고 밴댕이는 기대에 부응하고 만다.
여기로 들어오라는 부름을 몇 번 지나치고 지난번에 먹었던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아는 곳으로 가는 게 실패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식당 앞에는 대기 줄이 길게 있었다. 아마 인터넷에 후기가 많은 집이라 딴 데보다 사람이 더 몰리나 보다. 배가 많이 고파서 기다리면서까지 먹고 싶은 의지는 없었다. 괜찮은 기운이 풍기는 다른 곳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느낌이 이끄는 곳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젊은 사람은 우리뿐이다. 최소 50대 이상의 손님밖에 없었다. 젊은 층보단 나이 드신 분들이 전통시장을 더 즐긴다는 건 익숙한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나이대의 불균형이 심한 광경은 처음 본다. 요즘 어느 모임에 가든 언니 오빠보단 동생들이 더 많았어서 이제는 나도 나이로는 잘 안 진다고 생각했는데 빼도 박도 못하게 한참 막내가 되고 나니 얼떨떨하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신생아 수준이다. 잔도 무거울 것 같은 연약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팔로 할아버지들이 낮술을 즐기신다. 소주와 막걸리 상관없이 다양한 종류로다가. 그 사이에서 신생아 둘은 보리차인지 둥굴레차인지 모르겠는 따뜻한 물로 목을 먼저 축인다. 진정한 맛집은 물부터 맛있다는 믿음이 있는 나는 생수가 아닌 차를 주는 식당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
차를 마시면서 눈을 이곳저곳 돌리며 사람 구경을 하다 보니 금세 한상차림이 나왔다. 작년에 먹은 곳과 다른 집이지만 정식 차림은 다 비슷비슷한가 보다. 반찬들도 거의 다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밴댕이무침 위에 인삼 같은 게 올려져 있다는 것쯤이다. 참기 힘든 비주얼에 재빠르게 사진을 찍고 허겁지겁 젓가락을 들었다. 먼저 밴댕이 무침을 집었다. 그리고 그 인삼뿌리 비슷한 것과 함께 입속에 넣었다. 순간 입 안에서 밴댕이가 축제를 여는 것 같았다. 새콤달콤하고 짜릿했다. 차를 리필해 주실 때 그 인삼뿌리 같은 것의 정체를 여쭈니 삼채라고 알려주신다. 세 가지 맛이 나서 삼채라 불리며 어떤 효능까지 있다는 짧은 설명까지 해주셨다. 삼채 하나로 밴댕이무침의 풍미가 짙어졌다. 작은 차이 하나가 큰 변화를 만드는구나. 새로운 채소 지식까지 터득하니 재미있다.
그다음 밴댕이 회를 상추에 싸 먹었고, 또 그다음 구이를 먹었다. 구이가 마지막 순서인 건 이유가 따로 있다. 지난번 먹었던 밴댕이구이의 기억이 별로이기 때문이다. 무침과 회는 정말 맛있었지만 구이는 간을 아예 안 한 것인지 아무 맛도 나지 않고 비렸다. 그래서 맛을 보고는 그 후로 손을 대지 않고 나왔었다. 그런데 웬걸, 여기는 구이가 주인공인 것 같다. 전혀 비리지 않고 짭조름해서 밥이랑 먹으니 찰떡궁합이다. 옆에서 실제 밥도둑인 돌게장이 질 수 없어한다. 메인이 아닌 것을 먹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는 편인데 돌게장을 맛보고는 돌게장에 빠져 한참을 돌게장만 먹는다. 리필도 한 번 했다. 처음 접시보다 1.5배 가까운 양으로 채워 주셨다. 덕분에 밥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밥도 조금 더 달라고 부탁드렸다. 갓 나온 밥에 참기름을 두른 고소함은 이성을 잃게 했다. 그대로 밥만 몇 번 퍼 먹었다. 하나하나 맛이 없는 게 없으니 순무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식사 마지막 즈음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순무를 하나 먹었다. 역시는 역시였다. 특산물이라는 자격은 그냥 막 주어지는 게 아니구나. 맵지도 짜지도 않은데 싱겁지도 않다. 너무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식감이다. 뭐든 중간이 제일 어려운 세상에 이렇게나 중간을 잘 유지한 맛이라니.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밴댕이를 이 정도로까지 펑펑 즐기고 나니 문득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밴댕이 내장이 워낙 작아서 속 좁은 사람을 두고 하는 그 말.
하루를 완전히 행복하게 해 준 밴댕이의 이름을 누군가를 낮잡을 때 쓴다니 왠지 기분이 찝찝하다. 착하고 순한 내 친구를 누가 건든 느낌이랄까.
자신의 일부분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밴댕이는 얼마나 억울할까. 억울한 감정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나로선 괜히 더 미안해진다. 마음보가 정말 나쁘면 인간에게 이렇게 맛있는 맛을 선사할 리 없지 않나. 밴댕이처럼 속이 깊은 물고기를 단단히 잘못 생각했다.
남은 밴댕이를 마저 씹으며 나는 그동안 누군가의 하나만 보고 전체를 판단한 일은 없었나 기억을 곱씹어본다. 아무쪼록 오해해서 미안했다, 밴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