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나온 플랫화이트를 마시며
소금초코 휘낭시에와 로제타가 그려진 예쁜 플랫화이트를 앞까지 가져다주신다. 오잉. 나는 라떼를 주문했다. 밖으로 이야기 하지는 않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주문할 때 소통에 오류가 있던 것 같다. 발음도 완전히 다른 이름인데 허허. 이곳에선 거의 매번 플랫화이트를 마셨었다. 사장님이 내 얼굴과 내가 자주 시키던 메뉴를 기억하시고 원래 마시던 걸 마실 거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셨나보다. 확인도 하셨을 텐데 내가 사장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하고 그냥 맞다고 대꾸한 것 같다. 라떼나 플랫화이트나 크게 상관없긴 하다. 늘 두 메뉴를 번갈아 마시지만 아직 차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보통 라떼는 불투명한 잔에 나오고 플랫화이트는 투명한 잔에 나온다는 것, 그리고 라떼가 조금 더 우유 맛이 난다는 차이 정도. 오랜만에 찾았는데도 나를 기억해 주셨다는 생각에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따뜻한 하트 나뭇잎을 보며 감사함이 작게 피어난다. 한가로이 혼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으니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일에 유쾌한 감정이 드는 것이 참 신기하다. 사실 요즈음 일하면서는 초긍정과 초예민을 마구 오갔다. 평소 낙관적인 성격인데-‘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다 ‘ 하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요사이 쉽게 기분이 더웠다 식었다 했다. 계절을 많이 타는 스스로가 참 마땅찮다. 내 힘으로 내 기분 하나 조절 못하는 게 어른인가. 결국은 벌써 이렇게 날씨 기운이 옮아왔구나. 추워지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쉽게 짜증스러운 내가 참 못나게 느껴진다.
직장에서 진상이 늘었다. 찾는 사람이 늘었으니 그 비율도 느는 게 당연하다. 그저께는 어떤 아줌마 환자가 나에게 “아이씨”라고 했다. 콧잔등을 아주 사납게 구기면서. 우리 사이에서 주의해야 하는 분으로 비치던 분이다. 당연히 글러브를 끼고 있었는데 촉감이 맨손 같았는지 신경질적으로 장갑 안 껴요? 하던 분. 하지만 나는 그분이 싫지 않다. 나쁜 사람은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아파서 본인도 모르게 그러신 것이다. 무서워하는 공간에 와서 예민해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잘못된 행동이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편안할 수는 없다. 기술이 나날이 늘어도 주사는 여전히 따끔한 것처럼 환자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내가 조금 더 능숙하게 했다면 하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다. 이러나저러나 타인에게 I see를 내뱉은 건 부적절했다. 꽤 많은 상황을 겪고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고 생각하는데도 면전에서 욕을 들으니 순간적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최대한 침착하게 아팠던 이유를 설명하고 사과를 드렸다. 대답은 없었다. 휴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그렇게 일분일초가 길었던 시간이 지나고 환자가 체어에서 내려오면서 눈을 보고 고마워요 라고 한다. 약간 새침하지만 누구보다 진심인 표정과 함께. 아놔, 이 아줌마 츤데레 끝판왕이구나. 고맙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아까 내가 무례했던 건 미안해요, 너 잘못이 아니에요 라고 여러 가지로 바뀌어 들린다. 1초 만에 기분이 가벼워졌다. 왠지 이 아줌마 다음에도 내가 맡아서 들어가고 싶다. 첫맛이 쓰더라도 결국엔 부드러운 인상을 남긴 플랫화이트 같은 아줌마.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 순간적인 기분에도 큰 책임이 따르는 경우는 수두룩하다. 하지만 우리는 다 실수를 하고 여러 환경적인 것들에 힘을 못 쓴다. 어른스러운 어른들은 단호히 그래도 그건 네가 감당해야 할 문제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약해빠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그나마 태도가 이미 되어버린 기분을 가능한 한 빨리 알아차리는 건 용서 가능한 범위 아닐까. 다른 이에게 저지른 실수에는 머뭇거리지 않고 사과를 한다면, 그 사람도 그 나약함을 어느 정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누군가 나를 화나게 해도 냉큼 사과를 하면 거의 다 풀린다. 이번에도 고맙다는 말을 듣고 바로 마음이 풀리다 못해 녹아내린 것처럼. 오늘도 불편한 현실을 다 덮어놓고 자기 위안을 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조금은 넉넉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짜증이 많은 나야, 미안해 나를 용서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