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씨

by 김밍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갑작기 들려온 바깥의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바람이 문을 비틀 듯 날카롭게 울부짖는다. 베란다 문이 정말로 부서질 것처럼 소리가 났다. 아파트가 무너지는 건 아닐까 싶은 공포를 느꼈다. 날은 분명 맑은데 무슨 일일까. 이 기이한 소리를 영상으로 담아보려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그 순간, 바람은 마치 눈치라도 보는 듯 조용해진다.


곧이어 핸드폰 화면에 재난 알림 문자가 도착한다.

'강풍경보'.

조금 전의 소리가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고 확인 도장을 찍는 듯했다. 살면서 이런 소리는 처음이었다. 벽 너머 세상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 같은, 거대한 무엇인가가 지나가는 듯한 음압. 그리고 잠시 후 또 하나의 속보가 날아든다.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 탓에 작은 불씨 하나가 산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다는 소식.


그 순간 이건 익숙한 봄의 뉴스가 아니라고 직감했다. 해마다 봄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산불 소식과는 다른 결이었다. 규모도, 속도도, 불안의 진폭도 달랐다. 나쁜 징조를 소리로 먼저 감각해서일까. 나는 그저 무기력하게 눈을 감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비를 내려주세요. 퍼부어 주세요.”

하지만 불길이 퍼지고 산과 마을을 많이도 집어삼키는 동안, 비는 시원하게 내려주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라 불리는 이 괴물 산불은 성묘객의 작은 실수로 시작됐다. 경북 의성에서부터 하루 만에 안동, 청송, 영덕 등으로 확산됐다. 사망자가 속출하고, 문화재가 전소되었으며, 집 잃은 사람들의 절규가 뉴스 화면을 가득 채웠다.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계절 전체가, 붉게 타는 듯했다. 봄은 분명 따뜻한 생명의 계절인데, 이 해의 봄은 차갑고 거칠었다. 나무들은 불에 타 쓰러지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렸다.


시작은 작은 불씨. 작은 것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장 빨리, 멀리도 번진다. 보잘것없어 보여서 쉽게 지나친 틈 사이로,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간다. 방심을 하는 순간, 아주 작디작은 것들이 괴물이 된다.


여기저기서 이재민을 위한 성금 모금 활동이 활발하다.나도 누군가의 탄 가슴에 한 방울의 빗물이 되길 바라며, 작은 마음을 보탠다. 작은 불씨가 거대한 괴물이 된 것처럼 누군가의 불씨 앞에 무심하지 않는 온기는 언젠가 가장 필요한 때의 단비가 될 것이다.


때로는 불씨가 사람 마음 속에도 자리 잡는다. 말 한 마디, 표정 하나, 무심코 지나친 눈빛이 누군가에게는 불씨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닿는다. 숲에도, 마음에도, 관계에도, 더이상 번지지 않도록 우리는 더 민감하고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작가의 이전글텔레파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