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by. 양귀자
현실과 몽상 사이에서 우리는 늘 고민한다.
주인공 안진진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머니를 불행하게 만든 자신의 아버지와 닮은 몽상가 김장우, 부유하지만 재미없는 남자 나영규.
이 두 남자 사이에서 안진진은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안진진이 김장우를 사랑한다는 것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있다.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무엇, 부딪쳐 깨지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장렬한 무엇. 그 무엇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힘이 사랑이라면,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의 손을 잡았다."
안진진이 김장우를 떠올렸을 때 하는 생각이다.
사랑하지 않고는 절대 할 수 없는 표현들.
그래서인지, 나는 안진진이 김장우를 선택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였다면.. 그래, 나였다면 어땠을까.
책을 읽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김장우를, 그는 나영규를 택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나는 몽상가 기질이 다분했고, 내가 보았을 때 그는 지독하게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해 헤어졌으니.
나는 사랑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딪쳐 깨지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장렬한 무언가' 그러한 다소 맹렬한 감정으로 달려들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이며, 결혼은 그 감정과 그 대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런 몽상가적 낭만만 가지고서는 사랑을 유지할 수 없다고.
"낭만 좋지, 좋은데, 모닝에서 우는 것보단 벤츠에서 우는 현실이 낫잖아? 그런 현실도 생각해야 해"
참, 재미없다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나 또한 결국 그때의 그 사람처럼, 현실을 좇으며 살아가고 있고, 현실적 조건을 갖춘 사람을 만나기를 원한다. 참, 아이러니하지. 우리의 가치관이 달라서 끝을 냈음에도 결국엔 같은 방향을 보며 가고 있는 게..
사실 나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낭만만 바라보며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어쩌면 이 소설 속 주인공마저도 다 알고 있었다.
다만, 내가 그의 '현실'이기 이전에 그의 '장렬한 무언가'가 되고 싶은 욕심이 앞섰던 것일지도.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가.
이제 더 이상 몽상을 꿈꾸지 않는다.
그와의 이별이, 바뀌어버린 해가, 잘 살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바꾸었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나에게 김장우처럼 강렬한 끌림을 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럼에도 난 나의 김장우를 외면하고 나영규 같은 남자에게 가게 될까.
사랑이라는 몽상을 꿈꾸던 나는, 사랑이라는 몽상에 취하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모순덩어리 인간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