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학창시절에 그러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나는 타인에게 관대하지 못하다
'안보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맘에 안 드는 친구가 있으면, 싸울 이유가 없고 그냥 서서히 무시..하였던 것 같다
근데 내가 미성숙한 탓인지
나는 20대때도 그러하였다!
첫째, 서운한 걸 말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말한다고 해서 변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가까운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말하는 건 무섭다
가까운 사람들이 많지도 않고 내가 말했을 때 그들이 나의 기대를 져버리는게 무섭달까?
한마디로 쫄보라서 그런 것 같다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가 최근 두번 있었다.
일화1.
주말에 내가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는데,
아빠가 '조카 열심히 돌본다더니 그닥이네'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이다.
두둥
나는 매우 분노했고 일단 화내지 않고 내 방으로 갔다
근데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도 아빠 말 때문에 분노가 여전한 것이다.
이에 아빠한테 따졌다!
그랬더니 아빠가 뭘 그리 잘못했냐 그런 사소한 일로 왜 화내냐고 해서,
내가 왜 화났는지 요목조목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아빠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사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역시 아빠는 내가 서운함을 말해도 되는 존재구나
오히려 그렇게 하는게 나에게도 낫겠다
내가 말 안하면 그냥 삐진 딸이 되는거니까 ..
일화2.
내가 매우 좋아하는 친구가 어느날
다른 이야기 중이었는데 혹시 한마디 해도 되냐고 물었다.
당연히 하라고 했다.
근데 친구 왈 '~라고 칭하지 말고 ~라고 칭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음 취지는 내가 친구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학교선배이자 언니인데 내가 생각해도 종전에 내가 불렀던 명칭이 약간 동생을 부르는 느낌 같기도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친구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에게 서운함을 말해준다는게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평소 용기를 내지 못했기에 서운함을 말 안한다고 했는데, 이 친구는 나와 같은 사고의 흐름을 거쳤다고는 단정할 수 없겠으나, 어쨌든 결론적으로 '내 사고흐름에서 보면 용기를 내준 상황'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더 잘해주고 좋은 인연을 유지하자고.
좋은 인연은 그 자체로 복이다.
난 전생에 얼마나 착한 일을 했길래 이렇게 감사한 인연이 있는 걸까!
최근 본 드라마에서 그러는데 이번 생에서 만났다는 것 자체가 전생에서는 엄청난 인연이었다는 거란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암튼 그렇단다.
이상 오늘의 뻘 생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