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부민

by 문과체질 내과의사

" 선생님~ 알부민이 그렇게 좋다던데 저 먹는 게 좋을까요~? "

.. 오늘도 몇 번째인가..
이 정도로 알부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알부민에 대한 인체의 신비가 밝혀졌거나,
알부민 영양제를 발명한 사람이 노벨과학상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내 병원을 찾는 대부분인 노인 환자분들에게 갑자기 알부민 영양제 열풍이 불고 있다.

알부민.. 그저 내 몸 안의 단백질이건데..
늘상 내 몸에 있던 건데..
수십 년간 과음을 하거나, 간염에 걸린 게 아니라면 그저 간에서 지금도 열심히 알부민을 잘 만들어 내고 있을 텐데..
갑자기 나의 환자들에게 만병통치약이 된 이유가 뭘까.

내가 유일하게 출근을 안 하는 소중한 일요일.
이른 출근이 몸에 배어 오늘도 눈을 일찍 뜬다. 간만의 여유를 즐기며 티비를 켜본다.
전성기를 지난 연예인 몇 명과, 흰가운을 입고 멋스럽게 방송 화장을 한 동료의사들 몇 명이 알부민에 대한 극찬을 늘어놓는다.
채널을 위, 아래로 돌리면 바로 홈쇼핑 채널이 등장한다. 친절하게 의사들이 읊어준 그 내용 그대로 알부민을 소개하며, 아침잠 없는 나의 노인 환자들을 유혹한다.
티비 중간광고, 인터넷 광고, 유튜브광고..
나도 한번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나의 환자들에게 말했다.
" 여기 혈액검사 결과 보이시죠? 어르신은 알부민이 부족하지 않아서 비싼 돈 주고 사드실 필요가 없어요~ 그거 다 광고예요.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고기나 사드세요"

...환자들은 묘한 불신의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다수의 환자를 상대하는 나는 이제 눈치 백 단이다. 그 눈빛에 나름의 해석을 해보면 이런 거다.

' 티비에 나오는 유명한 의사들이 좋다 그러고, 남들도 다 먹는데... 이 친구 뭘 알고 말하는 거야..? '

그래서 나름의 전략을 바꿨다.
환자는 말한다.
" 저 알부민이 좋다는데 먹어봐도 될까요..?"

나는 대답했다.
" 어휴. 알부민 그거 좋은 거죠~ 노인분들 단백질이 중요해서 보충하시면 영양에도 좋고, 혈액순환에도 좋아요~ 근데 여기 어르신 피검사 보시면 알부민은 부족하진 않거든요? 그래서 이미 사셨으면 드셔도 좋고, 혹시 비싸서 부담된다면 어르신은 건강 관리를 워낙 잘하시기 때문에 굳이 안 드셔도 돼요~"

환자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래.. 사람과의 수많은 대화 중에 정확한 정보의 전달을 필요로 하는 게 얼마나 있나 생각해 본다.
날씨 얘기, 사는 얘기, 살면서 힘든 얘기, 그저 시시콜콜한 얘기들. 그것들의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런 소통을 하며 그저 너도 나도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것. 화자가 필요로 하는 건 그저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지 않을까.


고혈압, 당뇨 관리를 위해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나의 환자들. 동네병원 의사인 나에게 원하는 것은 대부분 그런 시시콜콜하지만 편한 것, 큰 병이 아니라면 다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나를 찾는 노인 환자들의 건강관리에 일종의 유행이 있었다.
한때 그 유행은 오메가 3와 폴리코사놀이었다. 그것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환자들이 고지혈증 치료제를 끊고, 그 영양제만 먹게 만들었었다.


그 이후엔 전국 어르신들의 신발과 양말을 벗어 제끼게 한 맨발 걷기 열풍이 있었다. 그 열풍은 전국에 있는 공원 한켠을 질퍽한 황톳길로 만들었었다. 바짓자락을 걷고 인생과 같이 그 험난한 진흙밭을 열심히 걸어 목표에 도달하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샤워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유행은 한 번씩 몰아쳤다 잠잠해지고, 이번엔 알부민의 열풍이 불고 있었다. 그 유행에 따라 우리는 점잖이 있는 우리의 몸을 가만히 두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위장에 집어넣을 것이다. 헛헛한 마음, 미래에 대한 불안, 매일 하기 힘든 운동, 지루한 규칙적 생활 같은 것들을 그 한알이 대신해 주길 기대하면서.
그리고 알부민의 유행도 언젠가는 꺼질 것이다.

우리 동네의 많은 어르신들이 그것들을 사 먹고, 이제 더 이상 새로 살 사람이 없을 그때가 되면.

환자들의 알부민에 대한 애정을 보면, 사람의 믿음이란 참 맹목적인 것이었다.
몸속의 피를 뽑아 수치를 눈으로 보여줘도,
남들보다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경험한 속칭 전문가가 뭐라고 말을 해도, 누군가가 갖은 믿음은 쉽게 바뀌진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힘은 시간의 힘일 거란 생각을 했다. 짧은 시간 만나서 단 한마디 건네는 나의 말보다,
수많은 광고와 수십 분의 방송 노출, 그리고 주위에서 들리는 수다 속의 정보들은 훨씬 더 큰 시간의 힘을 갖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알부민과 뒤섞인 환자와의 소통과 진료를 마치고 녹초과 되어 집에 왔다. 7살 아들이 나를 반겼다. 아들의 목소리를 듣자 녹초가 된 나의 표정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 아빠~ 다녀오셨어요! 근데 내가 오늘 미술학원에서 그림 그렸는데, 이달의 그림으로 안 뽑혀서 슬펐어~ㅜ"

아들의 그림을 봤다.
색 조합이 예사롭지 않은데..

이 나이에 이 정도 디테일을 그리는 게 보통이 아닌데.. 이 그림이 안 뽑히는 게 말이 안되는데..

..믿음이란 나에게도 정말 맹목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콩깍지 씌인 믿음은 누적되는 시간의 힘으로, 갈수록 더 두터워질 거라 생각했다.
남들이 뭐라 해도 그냥 좋은 것,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것..
나만의 만병통치약 알부민은 약국이 아닌 집 안에 있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