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by 문과체질 내과의사

" 유치원 선생님이 그러는데, 우리 아들이 자기소개 시간에 아직 쑥스러워하고, 표현을 잘 못한다 그러네~ "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 아들! 자신 있게 해 봐~ 뭐 어때~? 나에 대해서 뭐든지 말해보는 거야~ 뭘 좋아하는지, 뭐가 되고 싶은지, 너한테 소중한 게 뭔지~ "


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쿨하기 만한 나의 단어와 말투 뒤에 묘한 물음표가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주 주말, 나는 학회에 참석했다.

나를 먹고살게 해주는 의사면허 갱신을 위한 작업이었다.

학회의 강의가 끝났고 늘상 하는 질문받는 시간이 왔다. 늘상 그렇듯 아무도 질문이 없었다.

나 역시 질문하지 않았다. 튀지 않게 넘어가는 건 내 반세기 인생의 관성이었으니까.


강의실엔 침묵이 흘렀다.

늘상 그렇듯 학회를 진행하는 좌장이 강의자가 뻘쭘하지 않도록 한두 개의 질문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학회는 마무리되었다.


소극적인 여느 청중이 된 나는, 아들에게 자신 있게 발표하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머리를 쥐어뜯었다!

나는 왜 질문이 없었을까.. 하루의 대부분을 진료실에 앉아 들은 내용과 관련된 일을 하는데..


나는 마치 질문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질문이 있으려면 생각을 해봤어야 하는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해 본 게 언제인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각하기 위해선 시간에 쫓기지 않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었다. 항상 목적이 있는 무언가를 하려 했다. 성과 없는 시간은 무의미하다 생각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선 그저 보고 읽고 외우기만 했었다.

돌이켜보면 대학시절 6년간 단 한 번도 손을 들고 교수님에게 질문을 한 적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나는 과연 학문이란 걸 한 게 맞을까.


궁금한 것이 없다는 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했다.

좋아하는 연인에게 궁금한 게 많은 게 당연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서 찾아보기 마련인데.


돌이켜보면 내가 좋아하기에 이 일을 택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부모의 기대에 충족하는 것, 배치표란 사다리에서 내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칸에 있는 것을 택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택하라고 해도 그게 쉬운 건 아니었다. 삶의 반이 지난 아직도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으니.


그래서 잠깐씩 찾아오는 영감과 호기심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것들을 찾기 위해선 너무 바쁘지 않게, 적당히 심심하게 지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려만 가던 관성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지나쳤는지도 모르면 너무 억울하니까.


그러고 보니 요즘 나를 찾는 환자들이 많이 줄었다.

의사의 전성기는 50대라는데... 나의 전성기는 일장춘몽처럼 왜 이리도 짧단 말인가...!

의사로서의 내 전성기는 지났을지 모르지만, 인생의 전성기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있다는 건,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학창 시절 때 아버지께 듣던 말이 있었다.

" 사람 능력이 한계가 있어서 하나를 하려면 다른 걸 포기해야 한단다. "


놀기 좋아하는 나의 귀에 그 말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빨리빨리 다 해버리면 되지..!'

그랬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전성기가 지난 것 같은 지금.

어색하기만 했던 심심함이 몸에 익어가는 지금,

아버지의 말을 다시 새겨본다.

그 말씀 그대로 모든 걸 다할 수 없는 게 삶이라면, 진료실에서 나올 때 항상 나의 힘을 남겨두기로 다짐한다.


언젠가 문득 찾아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위해서.

그리고 내게 소중한 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그때를 위해서.

토요일 연재
이전 05화알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