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를 어디에 놓을까?

피규어의 방향

by 당이

모래놀이치료를 꽤 오래 받았다.

진행방식은 간단하다.

원하는 피규어를 골라서

모래 판 위에 올려놓는 거다.



상담 첫날에 나는 피규어를 단 하나 골랐는데 그건 얼굴 없는 목각인형이었다. 그리고 난 그 단 하나의 목각인형을 고르는데도 20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상자 안에 펼쳐진 모래사장 위에 그 피규어를 어디에 놓을지 고민하는데 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그 목각인형은 나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내게 등을 보이고 모래에 파묻히듯 앉았다.



'이 목각인형이 누군가요? '


'이 인형은 지금 얼굴이 없는데 기분이 어떤 상태일까요? '


상담사의 질문에 나는 대답 없이 철철 눈물만 흘렸다.


지금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그건 주도적으로 살 수 없었던, 표정 혹은 의견 없는 나 자신이었을 거다.


그 후로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더 많은 피규어를 빠른 시간 안에 골라서 모래 위에 올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1년쯤 되었을까. 모래 판 위에 내가 놓아둔 예닐곱 개의 피규어들이 모두 나를 향해 서 있거나 앉아있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이 터졌다.


피규어의 방향이 실제로 의미 있게 해석되는 건지는 나도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었다.


남이 보는 내 인생이 아니라 비로소 내가 보는 내 인생의 판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놓고 싶은 자리에 피규어를 놓고, 옮기고 싶으면 옮길 수 있다.


이 모래판이 내 삶과 무엇이 다른가?

이 작은 모래판 위에 무엇을, 어디에 놓을지 선택하는 것도 고통스러웠던 나는 누군가가 '무엇을 어디에 놔.'라는 지시를 받는 쪽이 익숙해서 편했던 거다. 그래야 착한 아이니까.


놓인 피규어마저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그게 나를 위한 판이 아니었기 때문일거다 내가 원해서 그 자리에 그걸 놓은 게 아니니까. 그냥 보여주기 위한 거다. 말 잘 들었다고. 하라는 대로 한 거라고. 역시 난 착한 아이라고.


작은 모래판에서 뭘 어디에 둘지 모르겠던 내가

인생판에서 뭘 어디에 둘 것인지 알았을 리 만무하다.


결국 '어떤 피규어를 어디에 놓는가'의 문제는 내 삶 속의 크고 작은 선택들을 의미할 것이다.


선택도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지는 그런, 성인이라면 당연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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