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트렁크를 정리하다 뜻밖의 보물을 발견했다. 토토가 어릴 때 처음으로 샀던 강아지용 바리깡과 빗이었다. 뭔가 추억을 꺼낸 듯한 기분에 들떠 집으로 가져와 빗을 먼저 살펴봤다. 그 안에 들어있을 무언가를 마주하는 순간 어떤 감정이 몰려올지 궁금해하면서. 그런데 세월 탓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늦게 발견한 탓인지, 빗에는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바리깡을 분리해 보니 그 안에 토토의 어린 시절 털들이 있는 듯 없는 듯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솔로 살살 빼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건 언제나 착각이더라.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울컥하고, 언제까지 이런 추억의 파편에 발목이 잡힐까?
너의 털은 스카치테이프에 봉인
화장실에서 한바탕 울고 나와 보니, 남편이 스카치테이프에 토토의 털을 하나하나 모아놨다. 무심한 듯 야무지게. 그 모습이 어쩐지 따뜻해서, 슬쩍 웃음이 났다. 그 스카치테이프와 토토의 유치, 토토 머리를 묶어줬던 머리끈들을 조심히 집어 유리병에 넣고 '진짜 쓸데없는 짓한다 나란 인간...'이라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김토토 참 대단한 녀석이다. 아직도 나를 이렇게 요동치게 하다니. 그 콩알만 한 녀석이 떠나고 내 세계가 거세게 흔들리더니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수용'의 단계에 다다라서도 문득 이렇게 너의 존재가 내게 강력했음을 잊지 않게 하는구나.
요즘 들어 마음이 괜찮아서, 문득 네 생각이 덜 난다는 은근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마치 내가 너를 조금씩 잊고 사는 건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기억이 무뎌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하지만 오늘, 역시나 그럴 리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잊었다는 죄책감도, 잊을까 봐 하는 두려움도 이제는 내려놓으려 한다. 너는 내가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진 줄 착각해도, 여전히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강렬하게 자리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