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극혐자

누구도 예상 못한 반전

by 당이


2010년 4월,

한 중학교로 교생실습 가던 첫날 나는 생각했다.

'하... 기가 막히네. 내가 학교에 또 오다니.'


내가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 현실은 학창 시절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다.


더군다나 학원을 운영할 것이라고는... 전혀.. 1도... 0.00001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다.





나의 학창 시절은 이랬다.


1. 기분이 내키면 학교에 가서 '논다'.


2. 내키지 않으면 학교를 가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친구를 만나 '논다'.


3. 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점심시간쯤 등교를 한다.


4. 구립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5. 부모님이 외출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날엔 등교하는 척했다가 다시 집으로 와서 잔다.


6. 등교하면 머리나 배가 반드시 아프니까 양호실에 가서 신체적 고통을 호소한 후 베드에 누워 잔다.


7. 등교하기 싫었는데 와서 마음도 아프니까 상담실에 가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한다.


8. 시험기간이 제일 좋다. 일찍 끝나니까.


9. 시험기간엔 무슨 과목 시험을 보는지도 모르고 등교를 해도 당황하지 않는다. (어차피 어떤 과목도 공부하지 않아서)


10. 학원비는 내 거다. 교재비도 내 거다. (학교도 안 가는데 학원은 가겠나?)


11. 타 교과시간에 영어책을 읽으며 선생님을 열받게 한다. (의도한 건 아니다. )


12. 영어시간엔 딴짓을 하다 걸려 선생님이 어떤 영어 단어나 영어 문장 해석을 시키면 틀리지 않고 곧 잘 해내서 영어 선생님을 열받게 한다. (이것도 역시 의도한 건 아니다.)


13. 영어 과목만 시험을 잘 봐서 커닝했냐는 의심을 받고 교무실로 불려 간다.


14. 공부도 더럽게 안 하면서 갑자기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서 수상을 한다. 생활기록부에 뭐 한 줄 넣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해본 거다. 생활기록부 노 관심.


15. 백일장에서 수상을 한다. 뭐라고 썼는지 기억도 안 난다.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 상 받고 싶은 욕심도 없었음. 아무래도 공부보다는 글 쓰는 게 재밌으니 그냥 씀.


16. 사과 하나 올려놓고 정물화를 그려야 하던 미술 시간엔 너무 못 그리는 나한테 화가 나서, 그리고 이 놈의거 대체 왜 그려야 하나 싶어 도화지 전체를 사과 색으로 채워 칠하다 선생님을 분노하게 했다.


17. 체육 필기시험날, 공부도 안 했는데 괜히 고민하기도 귀찮아서 모두 3번으로 찍고 잤는데 100점을 맞았다. (체육 선생님이 그냥 다 3번으로 답을 만들어두셨고,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은 답이 다 3번 일리 없다고 한 두 개 답을 고치다 틀렸더라. )


18. 장애인 복지센터와 도서관, 우체국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공부도 안 하고 학교도 안 가는 주제에 이건 왜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19. 결국 봉사활동 시간이 그 누구보다 많았던 나는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모범상 대상 기준 중에 봉사활동시간이 있지 않냐며 내게 모범상을 줄 수 있는지 여쭤봤다.


20. 봉사활동 시간 말고는 너는 모범적인 면이 하.나.도. 없어서 모범상 주기는 어렵다는 담임 선생님의 정색에도 수차례 더 찾아가 말씀드렸으나 도저히 통하지 않아 교장선생님을 찾아가서 '성적이 낮은 학생은 봉사활동을 아무리 많이 해도 모범상은 받을 수 없는게 맞냐.'며 이 상황의 부당함을 알리고 결국 모범상을 쟁취한다. (사실 모범상에 큰 욕심은 없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너무 단호하게 '안 된다'하셔서 오기가 생겼다.)


21. 모범상을 받은 날엔 친구들에겐 어이없음을, 가족들에겐 빵 터짐을 선사한다. (모범상을 집에 가져갔을 때 칭찬 대신 박장대소를 한 건 우리 가족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22. 당연히(?) 수능 점수는 엉망이고 담임 선생님은 지방에 있는 여러 대학을 추천해 주셨으나 나는 공부하기 싫으니 대학에 가지 않겠다 말하고 교무실을 나선다.



그랬던 나는, 이야기하자면 너무 기니까 결론만 말하면, 어찌 저찌 돌고 돌아 원하던 대학에 입학해서 원하던 공부를 하게 되자 그제야 '모범생'으로 거듭났다. 또 그 공부가 아주 재밌어서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과거의 열등생이 공부에 취미 붙일 줄.


나는 늘 언어에는 흥미와 재능을 보였으나

공부 자체엔 관심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그러다 보니 나의 언어 능력이나 흥미는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내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참 안타까운 파트다.


나는 공부 못 한 게 아니라 '안'했던 건데....


다음 주부터는 학원에서 공부 '안'하는 아이들을 하나둘씩 만나봐야겠다. 대체 공부 '안'하고 뭐하냐고.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진짜로 뭐하는지 궁금하다. 혹시 알아? 그들의 숨겨진 능력이나 재능을 내가 발견할 수 있을지?


남들은 간과하는 그들의 반짝임을 내가 알아챌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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