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일해본 적이 있다. 물론 당연히 정식 직원 아니고 고객 응대 중 잡다한 일 서포트나 컨벤션 관련 업무를 보조하는 실습생, 언제든 대체 가능한 그런 일꾼으로. 그래도 잠실과 소공동에 있는 롯데호텔을 오가며 바삐 배웠다. 호텔경영학은 나름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게 나의 첫 대학에서의 전공이었다.
나에게는 컨벤션 업무가 흥미로웠어서 주로 그 일을 배우려고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는 기억나는 내용은 거의 없다.
다만 일하면서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은 생생하다.
이제는 거기서 열리는 컨벤션의 참가자가 되거나 가능하다면 그 장소에서 뭐가됐든 회의나 모임을 주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컨벤션이라 해서 꼭 국제회의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되고 이벤트성 전시회도, 정보교류를 하는 장도, 강연회도 가능하다. Why not? 20년 전에도 지금처럼 흔하진 않지만 종종 존재하던 형태였다. 베뉴 규모나 그에 따른 수용인원도 다양하니까. 사실상 그냥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것은 컨벤션일 수 있으니까. 비싸서 그렇지. 돈과 모일 사람들만 있으면 다 된다.
서론이 길었는데 아무튼
발바닥 땀나게 뛰며 일하던 곳에 고객으로 간다는 건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다.
내겐 호캉스 멤버들이 있다. 다 좋은데 우린 세명이라서 늘 엑스트라 베드를 추가해야 하고 가장 키가 작은 내가 코딱지만 한 베드를 차지한다. (아, 물론 내가 엑스트라 베드 좋아한다. 내 키에 딱 맞는, 발이 닿는 베드는 신기하니까.)
주차도 늘 객실당 2대까지만 된다고 해서 체크인하면 약간의 징징 + 진상을 부려야 한다. 이번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나라서 내가 오늘 진상 당첨.
여차저차 체크인하면 주차 등록하고 무겁지도 않은 캐리어를(잠옷과 책 한 권, 그리고 세면도구만 들어있다) 굳이 객실로 옮겨주신다 해서 로비를 잠시 서성였다.
오 벌써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리고 나의 사랑 라이언!ㅋㅋㅋ
라이언 옆에서 셀카를 찍고 싶었으나 사람도 너무 많고 해서 이제 곧 마흔 일 나는 점잖은 척을 했다. 그리곤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12시쯤 돌아와서 로비에 아무도 없을 때 라이언을 끌어안고 사진을 찍었다.
이번 주엔 유난히 부킹이 어려웠는지 예약담당 멤버가 패밀리 룸을 예약했다.
별생각 없이 멍하니 있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펼쳐진 광경(?)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근데 사실 나 이런 거 좋아함.)
로리인가 로티인가 알 수 없지만 너구리가 반겨준다. 로티겠지? 로티가 뭔가 남자 이름 같으니까.
객실 앞에서 두 번째 피식.
그래 안녕? 네가 로리구나.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또 웃어버렸다.
아... 패밀리룸.
엄마 + 아빠 + 어린이의 룸이구나.
분명히 레이크뷰라고 했는데 호수는 오른쪽으로 저 멀리 고개를 한껏 돌려야 보인다.
호수 보려다가 담 올 것 같다. 그렇게라도 호수가 보이니까 호수 뷰라고 한다.
바로 앞에 보이는 철조망 같은 구조물은 골프장이라
사실상 이 객실은 골프장 뷰다.
슬리퍼 3개 중 하나도 어린아이의 것.
가운 3개 중 하나도 초 미니 한 사이즈. 귀염 뽀짝 하다.
내가 신고 입을 수 없어서 한탄했으나 재미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멤버들을 기다리며 미끄럼틀을 타보고 싶었으나 나는 과체중이므로 부서질까 봐 시도하지 못했다. 아쉽다.
그리고 너희들은 모두 지각했으니까 침대 위에 놓여 있는 너구리 가방은 내 거다.
내 주변에 아는 어린이가 있던가? 없다. 토토나 줘야지.(토토는 가방을 메지 않는다. 물고 흔들 뿐.)
어린이용 슬리퍼와 가운을 걸칠 수 없으니 성인용으로 한 세트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는데 뜻밖에 라이언 슬리퍼 겟!
신난다!
넌 내가 집으로 가져간다.
호캉스 와서 이렇게 열심히 사진 찍어 본 적이 있던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것들은 재미있으니까.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 키즈룸 같은 곳에 올 일은 사실 거의 없지 않은가. 애들이 무지하게 좋아하긴 하겠다.
내가 어릴 땐 음.. 호텔은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호캉스라는 개념이 생긴 것도 사실상 최근 아닌가? 나는 20대가 되어서야 호텔 문턱을 밟았는데(일하러) 요즘 많은 초등학생들은 엄빠의 영향으로 취학 전부터 호캉스를 다닐 수 있다 보니 조식이니 호텔 수영장이니 체크인, 체크아웃 같은 단어들이 이 아이들에게도 익숙한 것 같았다.
마니또처럼 주고받은 선물들도 한 컷.
아, 기분 좋아지는 책은 읽고 나서 한 2시간 정도 기분 좋아진다. 그래서 자주 읽어야 한다.
한국어판도 번역이 꽤 자연스럽게 잘 되어있다 생각한다. 나야 뭐 책 쟁이는 게 취미이니 쟁였다가 선물하고 또 쟁였다가 선물한다. 선물하고 나서 다시 자연스레 같은 책을 주문했다. 내 기준에 저 책은 소장각이다.
오늘의 글은 매우 혼잡한 의식의 흐름이다.
정돈되지 못한 이 글이 마치 지금 거울 속의 나 같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