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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이 Jun 09. 2024

10년 후 나에게

유물

아무 생각 없이 넘겨보던 이메일 더미 속에서 10년 전, 학부의 한 교양과목에서 리포트로 작성했던

'10년 후 나에게 편지 쓰기' 내용을 발견했다. 스물다섯의 김진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고 했더니 이랬구나.




[10년 후 나에게]


안녕? 10년 후 김진희.

10년 후면 너는 나이를 서른다섯이나 먹었겠다. 세상에...

나는 네가 10년 뒤에는 영어교육분야에서 굵직한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 스스로가 자부심을 느낄 만큼 멋진 일을 해내고 있을 것 같고, 꼭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네가 살고 있을 그 10년 후를 위해서 내 시간 전부를 공부에 쏟고 있거든. 이 시간이 헛되어서는 안 되지.


서른다섯이면 결혼도 했겠지? 지금이야 결혼 따위 관심 없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하게 되지 않을까? 어떤 남편을 만났을까?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돈도 많고, 똑똑하고, 센스가 넘치나? 다른 건 몰라도 널 뛰는 너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주면서도 자신의 감정에는 큰 요동이 없는 그런 평온한 사람을 만나면 좋겠어.


돈도 많이 벌고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대체 사람은 얼마를 벌어야 많이 버는 걸까? 지금 생각엔 무언가를 구매할 때 금액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큰 스트레스 없이 가질 수 있는 딱 그 정도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엇보다 10년 뒤의 너는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니, 적어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사람이면 좋겠다. 성향이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가면 쓰고 긍정적인 척하지 말고, 진짜로 긍정적인 사람. 될까?


지금의 나에게 미래의 네가 고마워할 수 있도록 나는 여기서 최선을 다할게.

10년 뒤의 너도, 20년 뒤의 너에게 고맙다는 소리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해. 이런 편지는 좀 오글거리지만  나는 오늘도 수고했고, 먼 미래에 이 편지를 다시 꺼내 읽어 볼 너도 오늘 하루 수고했어. 원한 적은 없다만, 태어나버렸으니 열심히 살아보자.




피식피식 웃으며 글을 읽어 내려갔다. 나도 참 나구나.

그래 정말 스물다섯의 김진희는 '공부만' 하고 살았었지.  이를 악물고 장밋빛 미래를 그리면서.

지금이야 뒷방 늙은이 노릇하고 있지만 그 시절의 나는 나름 총명했다.


서른다섯이나 먹었... 겠구나라고 했지만 난 이미 마흔이 되었고. (세상에...)

영어교육분야에서 (굵직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잘 자리 잡고 살고 있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서른다섯에 결혼을 하지는 못했지만 2023년 9월, 39살이 되는 해에 결혼을 했고

다행히 남편은 네가 상상했던 장점을 가진 사람인 것은 맞는 것 같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야 많이 버는 거냐는 25살의 내가 내린 정의가 많이 버는 거라면

그렇다. 많이 벌고 있다. 참 다행이다.


행복했으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정말 나는 40년째 한결같이 행복과 긍정을 부르짖고 있구나. 나도 참 징하다.

인생 그냥 사는 거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별로 없고, 긍정적인 건 뭐.. 때에 따라 다르다.

10년 전 네 말대로 그냥 태어났으니 최선을 다하고 사는 것뿐.


10년 전 나의 예상대로 나는 10년 전 나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청춘을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희생(?) 한 결과로 나는 무지막지한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요즘 나는 현재 기준 10년 뒤의 나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들을지 못 들을지 잘 모르겠다.

10년 전만큼 내가 현재 치열하게 살고 있나?

생각해 보면 그렇지는 않다.

체력도 떨어지고, 총기도 사라졌고, 나의 욕심보다 우선시 되어야 것이 지금 나에겐 너무도 많다.

그래도 오늘 하루 수고한 것은 맞다. 수고했다. 나 새끼.


10년 후 나는 쉰 살이 되어있을 텐데, 이 편지를 읽은 김에 10년 후 나에게 다시 한번 편지를 써본다. 10년 전처럼 길게 쓰고 싶지도 않다 사실. 그럴 에너지도 없다.



[10년 후 나에게]


안녕? 50살 김진희.

미쳤다. 50살....

건강하니?


너 설마, 요즘도 일하니?

쉬엄쉬엄 살자.


그때쯤 되면 쉬엄쉬엄 살 수 있게 지금의 내가 좀 더 힘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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