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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어 Jul 12. 2024

[프로젝트 회고] SI 기획자의 상반기




PROLOGE


  이직한 회사에서 첫번째로 진행한 기획이 어느정도 끝이났다. 진짜 SI였던 전 회사와 달리 자체 솔루션과 데이터를 가지고 SI를 하는 조직에 있다 보니 기획자의 역량이 크게 요구 되지는 않았다. PM과 기획을 병행했던 기존 업무와 달리 명확하게 "기획" 포지션으로 한정되어서 역체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몸도 마음도 편해졌는데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기획만 하고 싶고, 주니어 시절을 좀 더 유지하고 싶어서 이직했는데 아쉬움을 느끼다니. 인간은 정말 아이러니한 존재다.





범위를 명확히 하자.


  첫번째로 맡은 업무는 서비스 영문화였다. 기존에 한국어만 제공되던 서비스를 영문으로도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계약 시점에서는 "일부 페이지"를 요청했다고 들었다. Kick-Off 미팅에서 우리가 "일부"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때도 별 다른 문의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프로젝트가 시작하니 범위는 "전범위"로 늘어나 있었고 고객사는 시간이 모자라다면 "부분적으로 나눠서 작업" 하자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우리가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인지, 고객사가 잘못 전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구체적인 범위를 산정하고 가지 않은 것은 명백하게 우리 실책이었다.



    1. 업무 범위 구체적으로 산정하기.

    2. 대소문자 규칙 정의하기.

    3. 반복되는 단어에 대해 통일성 갖추기.

    4.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서비스 전 범위다 보니 일단 양 자체가 많았다. 업무 난이도는 높지 않았지만 대충 보고 넘기는 습관이 문제였다. 번역한 내용과 한글의 의미가 맞는지, 같은 단어인데 문맥에 따라 다르게 번역 된 것들이 없는지, 두 개 이상의 단어가 결합 된 경우 사전에 협의한 규칙대로 적용되었는지를 하나씩 다 점검해야 했다. 꼼꼼하지 못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게으른 거였다. 귀찮다고 괜찮겠지 한 것들은 반드시 재수정 하는 대상이 되어서 돌아왔다.





양식에 글을 채워넣으려고 하지 말자.


  백지를 보면 설레기보단 무섭다. 기획안을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선배들이 작성한 기존 문서를 펼쳐놓고 본문을 지우고나서 시작하곤 했다. 형식도 어느정도 짜여 있으니 시간 측면에서 효율적이기도 하고 고민도 줄여준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고민을 줄여준다."는 측면에 있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정확하고 전달력 좋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따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이런 고민과 연습이 설득력 있는 문서를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때로는 양식을 벗어나서 페이지가 못생겨보이더라도 그게 효과적이라면 더 좋은 문서가 될 수도 있다.




기획자는 일이 되게 하는 사람.


  이번에 작업을 했던 고객사 담당자는 통제 성향이 강한 편이었다. 네이밍, 메뉴 순서는 물론 데이터 예시부터 세부적인 디스크립션까지 모두 점검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처음에는 답답하고 일이 하기 싫었다. 나는 그 이름으로 쓴 이유가, 그 곳에 배치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 회사보다 발언하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그래 을이니까, 고객사님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삐딱한 마음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고객사의 입장을 빠르게 수용해주는 게


    1. 그 방식이 고객사의 입장에선 더 적합했다. (내 논리가 '크게 더' 설득력이 있지는 않았다.)

    2. 그 말을 따르는 게 "프로젝트를 더 효율적으로 끌고갈 수 있다."

    3. 믿기 어렵겠지만 그 순간에서는 그게 좋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었다.


관점에서 이점이 있었다.



  담당자가 통제 성향이 강하고 본인의 논리가 확고한 스타일인 상황에서 내 기획안과 의도를 설득하려고 애쓴다면 고객사와 불필요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고객사의 주장이 말도 안 되는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기획자는 기획안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지만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다. 그 방법이 더 쉽고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면 프로젝트를 위해서 빠르게 자기 주장을 버리고 수용하는 것도 능력이다.


  고객사의 말에 무조건 '네'를 하는 게 좋다는 게 아니다. 사람을 대할 때는 각각의 방식이 있고 이번 담당자는 이런 성향의 사람이므로 내가 기획안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며 스트레스 받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적합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당연히 이의제기를 하고 의도를 피력해야 한다. 마냥 '네'만 하다간 이상한 구렁텅이에 프로젝트가 빠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런 방식도 '방법'이 된다는 걸 배웠다.




문서의 규격과 간격을 잘 맞추자.


  또 다시 문서 얘기. 기획자는 문서로 소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라서 문서에 대한 생각이 좀 많아졌다. 형식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즘에 고루한 생각일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생각이랑 상충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본질적으로는 궤를 같이한다.


  예쁘고 강박적으로 단정한 문서가 중요하다는 게 아니다. 페이지 변환을 할 때 움직이는 게 잦으면, 폰트크기가 들쭉날쭉 하면 청자는 무의식 중에 그 쪽으로 시선을 빼앗긴다. 청자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행위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도 오탈자가 있으면 한 글자에 순식간에 집중이 깨지고, 출판사 어디길래 교정교열도 안 보나 하며 책을 뒤적거리게 된다. 그리고 다시 집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프리젠테이션에서는 청자의 눈에 거슬리는 게 있다면 그쪽으로 집중이 확 쏠리고 발표는 뒷전이 된다. 책은 적어도 고정되어 있고 본인이 다시 집중해서 맥락을 쫓아갈 수 있다. 하지만 발표자의 내용은 계속 흐른다.


  발표자의 입장에서 문서의 형태와 관계 없이 '발표를 잘 하면 되지'는 생각해 보았어도, 청자의 입장에서 '거슬림이 없게 만들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것에 시간 쓰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입장만 고려한 것이었다는 깨달았다.







  이제 입사한 지 고작 3개월이 지났고 기존 회사와는 다른 업무 환경과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상황에 스스로 납득하려고 작성한 글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에 불만만 갖는 것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쉬운 만큼 뭐든 배우고 더 나아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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