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마중 Oct 06. 2024

할머니가 준 품삯은 10원짜리 엿

사계절 하는 일이 다르지만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시간

“할머니, 왜 배다리야” 

“저기 산자락 앞까지 물이 찼었어. 그래서 배가 드나들어서 배다리지”

“그럼 여기는 왜 갓골인데”

“여기는 예전에 산이 많았어 깜깜한 밤이면 호랭이도 살고 여시도 살았지”

“진짜, 그럼 호랑이는 다 어디로 갔데”     


볕을 피해 처마밑에 앉아 콩깍지를 벗기는 나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좋아했다. 더욱이 할머니 일을 도와주면서 일하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 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과거, 아빠의 과거를 드나들며 호기심 가득 상상하며 듣곤 했다. 그러다가도 몸이 근질근질할라치면 할머니  앞주머니에서 바스락 소리와 함께 껍질을 벗겨 내 입에 돌돌 말은 검은 뭔가를 재빨리 넣어준다. “뭐야”하고 입을 다물면 할머니 온기에 말랑말랑해진 엿이 입천장과 혓바닥에서 살살 녹는다. 몇 번 씹고 엿을 쪽쪽 빨아먹으며 오래도록 녹여 먹는다. 다 먹어갈 때쯤이면 할머니 앞 호주머니에 시선이 가지만 할머니는 더는 주지 않는다. 콩깍지를 퇴비장에 버리고 돌아오면 할머니는 앞주머니에서 꺼낸 꼬깃한 빨간 지폐 한 장을 주며 “자, 맛난 거 사 먹어”      


천 원이면 문방구에서 10원짜리 엿 열 개, 50원짜리 뽑기, 쫀드기며 라면도 사서 부셔먹을 수 있다. 꼬깃한 지폐 한 장을 피는 순간은 뭘 사 먹을까 고민하며 무척이나 설레었다.     

아침부터 매미소리가 요란 맞다. 요란 맞은 소리에 작은언니와 나, 동생은 할머니에게 불려 고추밭으로 갔다. 한 고랑씩 들어가 쭈그리고 앉았다. 동생을 몇 개 따고는 “아악 벌레”하며 밭고랑을 빠져나가고 작은 언니와 나는 비료포대를 하나씩 옆에 끼고 빨간 고추를 딴다. 쪼그리고 앉아서 따다 보면 다리가 저려 코에 침을 세 번 바른다.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서서 따기로 하고 일어나는 순간 머리가 ‘핑’ 돈다. 더 이상 못할 것 같은 엄살은 없었다. ‘할머니 나 더 이상은 못해’라고 말하면 엿과 꼬깃한 지폐를 받을 수 없어서 나는 핑 돌았던 머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고추를 땄다. 앉았다가 일어났다가를 반복하며 밭 한 고랑을 다 따고 돌아오는 엄마를 만난다. 엄마는 내 고랑의 고추를 따주며 포대를 채워주기도 했다.      


추수한 벼를 광에 보관하려면 뽀송하게 말려야 한다. 토방이며 마당, 빈 밭까지 파란 포장을 깔고 그 위에 벼를 늘어놓는다. 할아버지는 새하얀 고무신을 신고 벼를 갈라 벼고랑을 만든다. 나도 할아버지를 따라 스키 타는 모양새로 발을 번갈아가며 벼를 가르면 발등이 어찌나 간지럽고 따가운지 모른다. 몇 날 며칠 볕에 말린 벼는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결정이 되어 담기 시작한다. 80kg 쌀가마니.     

포장 위에 벼를 한 곳에 수북이 모아 2인 1조가 되어 한 사람은 쌀포대를 잡고 한 사람은 담는다. 그렇게 꽉 찬 쌀가마니는 오빠나 아빠가 등에 업고 광으로 가져간다. 광이 채워지면 어느새 깜깜하다. 몸에 묻은 먼지를 수건으로 탈탈 털기 시작하면 몸이 가렵기 시작한다. 빨리 씻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코끝은 차갑고 땀이 식어 찬 공기와 만나 온몸이 서늘하다. 춥다.      


봄에는 모를 심은 논에 허벅지까지 신는 장화를 신고 뜸 모를 한다. 장화가 맞지 않으면 맨살로 들어가 거머리와 싸움을 해야 했고 여름에는 마늘도 캐고 고추도 따고 풀도 뽑는다. 가을이면 콩을 따고 콩깍지도 벗기며 도리깨질 후 사방으로 튄 콩을 줍는다. 겨울이면 아랫목에 앉아 밥상에 서리태콩을 펼쳐 놓고 썩은 콩과 멀쩡한  콩을 고른다. 

사계절마다 하는 일이 다르다. 그렇게 집안일을 도우며 일 년이 흘러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반성문 쓰면 달라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